가파른 오르막길 끝에서 영어 선생님에게 걸려 얼차려를 당했다. 얼차려가 끝나고 그만 들어가라는 말에 나는 무슨 생각으로, 공연히 가방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냈다.
담배 반 보루.
스승의 날 선물이었다. 나는 얼결에 선물을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영어 선생님에게 건넨 것이다. 그게 벌 받아서 당장에 용서를 빌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들어가라는 선생님의 얼굴이 돌연 인상적이어서 그랬는지 지금은 분간되지 않는다. 아니면 가방 검사를 당해서 담배가 발각되어 너 이 자식 이게 뭐야? 라는 호통에 급히 선생님 선물입니다, 라고 즉각 둘러댄 건지도 지금은 확신하지 못한다. 어쨌든 나는 선물을 영어 선생님에게 드렸다. 한창 벌주던 학생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갑자기 당황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선생님은 담임을 맡지 않고 내내 영어만 가르치며 학생들과 접했다. 스승의 날 선물은 으레 담임들이 독식하기 마련인데 자신이 중3도 아니고 중1 신입생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것이 자그마한 놀람이었으리라. 그런데 담배 한 보루도 아니고 고작 담배 반 보루라니. 담배 5갑. 하필이면 왜 반 보루였나 지금도 궁금하다. 아버지가 선생님 갖다 주라며 정말 담배 5갑만 챙겨 주었을까? 아무튼 담배의 힘은 컸다. 그날 이후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영어 선생님의 호명을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로 많이 들으며 이른바 관심사병이 되었으니.
호랑이처럼 시커먼 인상파 중년 남성으로부터 애증의 관심을 받는 것은 나름 당황스럽고 곤욕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이었으니 나는 무연히 그것을 다 받아내어야 했다. 나머지 담배 반 보루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 정년을 맞았다. 시커멓던 얼굴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세월이 훌쩍 지났다.
주목!
"책상 위에 있는 거 다 집어넣엇!"
야단 났다. 갑자기 시험이라니.
중3 초반이었다. 아직 진로가 인문계와 실업계로 갈리기 전, 영어 쪽지 시험을 봤다. 시험은 다분히 평소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즉흥적이었다. 대다수가 준비되지 않은 시험에 취약했다. 50점 미만은 모두 일어나라고 했다. 우리 반 50명 중 대여섯을 빼고 대부분 일어났다. 선생님은 말했다. 모두 옷 벗는다, 실시! 처음에 잠깐 쭈뼛거리다 누군가 우헤헤 까불거리며 옷을 벗었다. 젤 늦게 벗는 놈은 잡아낸다! 설마 했지만, 기어이 팬티까지 홀딱 벗었다. 영어 단어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모두 손 머리 위로 깍지 껴!"
팬티에 양말까지 실오라기 하나 없는 맨몸으로 아이들은 멀뚱멀뚱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뭐 어때? 여기는 남중인데, 피식피식 웃음이 번져 났다. 저마다 2차 성징을 활발히 겪는 시기. 키도 쑥쑥 컸다. 다소 늦은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 그곳이 까맸다. 널따랗게 역삼각형 잔디가 새카맣든지 아니면 듬성듬성 몇 가닥 되지 않든지 다양했는데, 그보다 문제는 크기였다. 서로 크기를 보고 자신의 것과 비교했다. 누구는 어른이고 누구는 아이였다. 왜 너는 어른인데 쟤는 아직이지? 평소 덩치나 옷 입은 이미지와 판이한 존재, 비례하지 않구나. 그것이 그때는 무척 부끄러웠다. 목욕탕이 아닌 곳에서, 처음 생성된 크기에 처음 타인에게 드러낸 실체. 게다가 그때는 수술했냐 안 했냐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는 시기. 빠른 녀석은 했고 보통의 녀석은 하지 않았다. 당시는 통상 중3 겨울방학, 고입을 앞둔 시기가 수술의 적기였으니 녀석들 상당은 아직 수술 전이었던 거 같다. 수술 전이면 여전히 꼬마다. 꼬마 주제에 키만 불쑥 커서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꼴이라니.
숙호산에 가면 이른바 '대아 동산'이 있다.
동산 옆 숙호산에는 대아 중고등학교가 있다. 대아중학교 학생들은 체육 시간이면 곧잘 숙호산 동산에서 산책을 다니곤 했다. 진주시 서북단 끝의 법정동인 이현동에서 한여름 인도에 말라죽은 지렁이 떼를 피해 한참 들어가 산 밑에 짙은 그림자가 깔린 후미진 땅. 당시 35번 버스 종점 옆에서 숙호산 중턱까지 올라야 비로소 학교 건물이 눈앞에 등장하는데, 선뜻 숙호산 동산이라고 소개하려니 소소한 웃음이 터진다. 학교가 너무 구석진 곳에 있고 남중에 남고뿐이라 삭막하기 그지없는데 어쩐지 그런 이미지가 역설적으로 동산이라는 예쁜 이름을 둘러싸서 전해지니 그것은 아무래도 비웃는 뉘앙스가 다분하기 때문일 터다. 숙호산은 특별히 크고 거룩하거나, 진주 서쪽을 대표하는 산이라기보다 그저 야트막한 야산 중 하나다. 학교는 통학버스를 타도 온통 남자들뿐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형주 유도관’에 유도를 하러 가도 모두 남자, 사방이 전부 남자들의 찐득한 냄새로 가득했다. 그곳은 대아중학교와 대아고등학교가 한 건물에 붙은 소위 대아의 땅이었다.
심지어 교직원도 전원 남자일 뻔... 했지만 딱 한 사람 예외로 국어 선생님이 떠오른다. 이십대로 꽤 아리따운 분이었는데, 결혼하였어도, 치렁치렁한 머리칼은 시원스레 찰랑거렸다. 당연히 인기는 최고였고 까까머리 학생들의 여신이었다. 선생님의 입담은 때때로 뛰어나서 허우대 멀쩡한 녀석들에게 '생기다 만 녀석', '좀 생긴 녀석'이라는 촌철살인을 날려주곤 했는데 그 말은 아이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좀 생긴 녀석'이 될까 고민에 빠지게끔 할 정도였다. 중학교의 좀 생긴 녀석들은 국어 시간만 되면 일제히 집중하여 열정적으로 책과 거울을 봤다.
"그만 좀 질척거려 줄래?"
그녀는 남자 중학생, 교직원 틈에서 언제나 당당하고 우아한 여교사로 빛났다. 지금 생각난 건데 국어가 유독 어렵게 출제된 어느 기말고사에서 나는 24문제 중 24문제를 맞힌 적이 있다. (대신 다른 과목은 엉망이었다.) 선생님이 성적을 부르다가 만점은 너 혼자네, 하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선생님의 동그란 안경 속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 어찌 저를 두고 결혼하셨나요? 임신한 선생님은 카랑카랑한 인품으로 그것 또한 인생이란다, 하며 시련과 아픔을 가르쳐 주었다.
"모두 줄 서서 1반부터 5반까지 들어가 돌고 와!"
정말이지 거짓말인 거 같았다. 아이들이 우우우 야유를 퍼붓자, 이놈들이 장난인 줄 아나, 얼씨구 빵점 먹은 놈이 수두룩하네, 이 눔의 시키 웃음이 나와? 간당간당한 놈들, 어서 못 가! 알몸의 아이들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자신의 존재를 맘껏 드러낸 채 일렬로 1반 교실로 갔다. 똑똑똑, 정중히 노크하고 교실 앞문으로 들어가자 수업 중이던 선생님이 놀라 쳐다보았다. 그 반 아이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라 4반 놈들이네, 저 반 영어 쪽지 시험 봤나 봐, 하고 다들 수군거렸다. 머리 위에 손 올려서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아이들은 책상 옆을 한 줄로 지그재그 돌았다. 그러다 벌 받던 무리 속에서 야! 이 자식 내 엉덩이에 대이지 마! 하고 누군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어떻든 가리려고 앞사람과 밀착하다가 녀석의 말처럼 피부 접촉의 경멸, 굴욕, 공포가 더 큰 것을 알고 차츰 적당히 떨어져 자포자기로 흐느적거렸다. 이윽고 2반에 들어갔다. 맙소사, 2반에는 학교의 홍일점,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맨 앞에 놈이 순간 이거 들어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뒷 놈의 접촉에 황급히 들어서고 말았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군중심리가 뒤따랐다. 앞엣놈이 입장하니 뒤엣놈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뒤, 그 뒤, 그 뒤, 누군가 나도 인격이 있습니다, 라고 일어서면 인격마저 발가벗겨질 것만 같은 무력한 분위기. 그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엔 놀랐는지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하고 입을 틀어막다가 영어 선생님의 지시라고 전하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맨몸의 아이들을 보고 하하하 평소 잘난척하더니 볼 것도 없네, 라는 전설적인 말을 남겼다. 이후 수많은 아이들은 볼 것도 없네, 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한편 선생님은 개중에 누가 봐도 놀라운, 볼 것 있는 아이들에게는 애써 고개를 돌림으로써 반응을 대신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자그마한 눈치에도 와! 소리 지르고 자기네들끼리 웃다가 그야말로 야단법석, 학교 전체가 떠들썩했다. 누군가는 그 말에 상처 받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던 나는 국어 선생님의 눈빛을 살피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제발 보지 마세요. 선생님은 하나하나 안보는 척 보다가 내 차례가 되자 흠칫 고개를 돌렸는데 돌리기 직전 0.0001초 찰나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그냥 고개 숙이고 계시면 되잖아요. 봤을까 안 봤을까, 봤는데 안 본 것처럼 고개 돌리던 순간, 안경 속 선생님의 눈동자를, 낭만은 끝났고 인생은 잔인했다. 하긴 다 떠나 선생님이신데 그리고 아이들도 결국 다 떠나 아이일 뿐이죠. 나처럼 상처 받은 녀석은 많았다. 우리 반에서 가장 키 컸던 녀석, 여느 어른보다도 큰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는데 아무래도 국어 선생님을 과도하게 의식해서일까. 그때까지 잘 지키던 정절을 한순간 잃어버렸다. 그곳이 커진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죄다 수도꼭지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혼자 분수대의 꼭지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국어 선생님도 그것을 봤다. 선생님이 별말을 하지 못한 데 반해 그 반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커졌다고! 저놈 저거 커졌다고, 똘아이, 짐승, 누구나 마땅히 두려움에 떨던, 상상조차 아찔한, 설핏 엉뚱한 생각이 스친 대가는 컸다. 커진 건 녀석의 자유의사가 아닐진대 녀석은 금방 전교생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오늘날 실시간 검색어로 따지면 1등이었고 그야말로 폭망,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키 큰 놈은 눈물을 흩뿌리며 걸었다. 앉아서 구경하는 놈들은 책상을 마구치며 괴성을 질렀지만, 키 큰 놈의 뒤를 따르던 벌거벗은 우리는 크게 웃지 못했다. 웃어도 그저 아하하 입모양만 따라 웃을 뿐, 또 다른 위기의식이 솟구쳤다. 지금 마냥 마음 놓을 때가 아니다. 자칫 제2의 큰 놈이 될지도 몰라. 긴장 풀면 안 돼. 키 큰 놈의 절규를 생생히 보았기에 어쩌면 내게도 설마, 아무려면, 혹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어떠한 느낌이 전해올지도 모른다. 아직 컨트롤되지 않아. 나도 내 것이 적응되지 않는데, 차라리 눈을 감자. 몇몇 놈은 눈을 감고 걸었다.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발, 만물의 순수한 것들이여,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라, 기도하지만 저기 대각선 코너에서 들려오는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 얘들아 선생님이 안 볼게, 긴장 풀고 돌아. 아아 선생님의 목소리는 정진을 흐트러지게 한다구요. 부디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마세요. 그렇게 어렵사리 5반까지 돌고 온 우리를 보고 영어 선생님은 아뿔싸, 그 시간 국어 선생님이 수업 중인 것을 망각했다며, 그러니 녀석들아 공부 좀 평소 열심히 하지, 그래 가지고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는데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커졌던 녀석은 영어 수업이 끝나고 종일 엎드려 울었다. 이윽고 어느 날부터 녀석의 영어 실력이 쑥쑥 올랐는데 (더 이상 옷을 벗지 않기 위해) 급기야 전교 석차를 한 자릿수까지 끌어올리기에 이르렀고 나 또한 두 자릿수까지 올렸으니 그것이 꼭 나쁜 기억만은 아니리라 어루 미루어 슬쩍 짐작해본다.
쉬는 시간은 고작 십 분.
여기는 진주 서쪽 끝 산 중턱의 학교. 쉬는 시간 안에 다녀올 만한 슈퍼나 가게가 없다. 다만 학교 매점이 존재했다. 매점이라는 특별한 공간. 학교 안에 공존하면서 합법적으로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 열네 살의 꼬마는 매점을 꼭 가보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드디어 매점에 가보리라 마음먹는데, 목표는 튀김 만두였다. 오가다 상급생들이 만두 먹는 모습을 왕왕 보았다. 만두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꼬마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지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지하 3층이었다. 건물 맨 끝단의 가장 낮은 공간. 그때 학교의 공식적 건물은 지상 5층에 지하 2층이었다. 지상 2층부터 5층까지는 고등학교, 지상 1층부터 지하 2층까지는 중학교였다. 지하 3층은 교실로 쓰지 않던 공간이었다. 중고가 함께 있던 건물에서 가장 어렸던 꼬마는 처음으로 미지의 매점에 갔다. 종소리가 울리고 대략 이십여 초가 흘렀을까. 이미 매점 앞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많아서 판매대까지 다가가기도 어려웠다. 여기저기 중고생들은 밀고 밀치고 소리치며 악다구니를 썼다. 꼬마는 중간에 끼여서 되돌아갈 수도 없이 성난 파도의 흐름에 몸이 떠밀렸다. 파도의 물결은 괴성을 질러댔다. 팥빵 하나요, 만두 주세요, 그러다 어느 순간 꼬마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생각지 못한 순발력으로 쪼르르 판매대에 다다랐다. 거기서 누나뻘 판매원에게 "만두 두 개요"라고 소리쳤다. 튀김만두는 하나에 오십 원이었다. 백 원을 내고 두 개를 샀다. 만두를 손에 쥔 채 복작복작 인파를 쉬 뚫을 수는 없었다. 일단 두꺼운 잠바 호주머니에 만두를 쑤셔 넣고 두 손을 자유로이 했다. 나가야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지상으로 올라야 했다. 신입생의 조그만 덩치로 중2부터 고3까지의 완력을 감당하기는 벅찼다. 혹시 이것들은 먹을 것을 사러 몰려온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저 밀치기 위해, 먹을 걸 산 친구나 후배들에게 빼앗기 위해 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나 하나만 줘, 한 입만 줘, 너 아까 사는 거 다 봤어. 꼬마는 나오는 과정에서 잠바의 어느 부분이 부욱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만두가 먼저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도중, 누구라도 아는 얼굴은 두려운 존재였다. 막 친구가 되었거나 같은 초등학교 출신을 만나거나, 때마침 손에 그 구하기 어렵다는 만두가 들려 있다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나눠주거나 뺏기거나 어쨌든 만두를 온전히 먹지 못한다는 것이 자명했다. 안 돼, 어떻게 구한 만두인데. 꼬마는 서둘러 지상 1층으로 올라왔다. 교실 문에 들어서는데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꼬마는 재빨리 만두 하나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만두는 큼직했다. 볼이 불룩해져서 침이 고였다. 튀김옷이 다소 딱딱하여서 씹기에 버거웠다. 그래도 선생님이 오기 전 다 먹어야 했다. 마음이 바빴다.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켁켁 교실 뒤를 맴돌며 우물거렸다. 꼬마는 만두를 먹는 게 아니라 목에 뭔가 걸렸다는 듯 연기하면서 먹었다. 드디어 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몰래 먹는 튀김만두의 맛은 감동이었다. 처음 먹는 학교 만두의 맛. 적당한 튀김옷에 당면 조각이 빼곡히 들어찬 만두, 짭짤한 간, 곳곳에 숨은 파 조각, 후춧가루, 한 입 깨물면 침이 가득 고여서 만두 옷을 서서히 녹이고 점점 풀어헤친 옷섶으로 쏟아져 내리는 만두소 덩어리가 입안 가득 짭조름한 향을 풍겼다. 만두의 형태는 씹고 씹혀서 형태가 갈라지고 침이 베여 달짝한 반죽이 되었다. 이어서 꿀꺽꿀꺽 넘어가는 목 넘김은 쾌감의 극치였다. 드디어 먹어봤다, 성공이다. 이제 꼬마는 학교 매점에서 전쟁 같은 아우성을 뚫고 직접 만두를 사 먹은 사람, 당당한 중학생이 되었다. 벌써 중학생이 되었지만, 지금부터는 만두 먹은 중학생이다. 이 맛을 아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다들 선배와 고등학생과 선생님에게 치여 학교에서 먹는 거라곤 도시락뿐인. 아, 지금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하나 남은 만두는 어떡할까. 선생님은 이미 교실에 들어왔고 영어 수업은 시작되었다. 덩치가 곰처럼 크고 얼굴이 시커먼 중년의 남자 선생님. 인상은 결코 호감형이 아니다. 고민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어떡하지. 만두를 내버려 두면 딱딱해지거나 냄새를 풍길 테고, 수업 시간에 먹자니 옆 친구나 선생님께 들킬 것만 같고 어렵게 구한 건데, 덩치 큰 선배와 고등학생 틈에서 힘겹게 쟁취한 건데, 꼬마가 슬그머니 잠바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자 덩그러니 만두가 만져졌다. 손끝에 물컹하니 입체적 감촉이 전해오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꼬마는 냅다 입안에 텁! 만두를 쑤셔 넣고 앙다물었다. 만두는 입안 가득 차지했지만, 마치 입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무표정하게 칠판을 쳐다봤다. 꼬마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원래 볼이 볼록한 것이다. 아직 젖살이 한창 여물 때가 아닌가. 젖살 때문에 그냥 다물어도 볼은 볼록하다. 게다가 동급생보다 작고 어린 티가 남았다. 단지 이렇게 생긴 것이다, 하고 선생님을 보는데 선생님은 자꾸 꼬마의 얼굴을 봤다. 오십 명 남짓 반 친구들 하나하나 눈 맞춰도 모자랄 수업 시간 오십 분인데 웬걸 계속해서 눈길을 주었다. 꼬마는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 얼굴이 이상한가? 이상하면 안 되는데 설마 내 입속을 눈치챘나, 내 입가 피부는 반투명인가, 아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분명 속이 비치지 않았다. 만두는 한 번도 씹지 않아서 형태 그대로 골격이 무너지지 않았다. 너 지금 입안에 뭐야! 결국 사람의 입가 피부는 빈 입이나 가득 찬 입이나 음영이 드러나지 않아도 무언가 들어있으면 표시가 나는가 보다. 꼬마는 볼록한 볼 피부를 원망하면서 앞으로 불려 나갔다. 이놈 자식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신성한 수업 시간에 만두를 먹어? 선생님은 꼬마 얼굴을 정면으로 보다가 왼손 엄지와 검지로 꼬마의 오른쪽 뺨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꼬마의 왼쪽 이마를 조심스레 45도 기울게 밀었다. 각도가 적당해졌다. 아직 만두는 입속에 존재했다. 이윽고 선생님의 두툼한 손바닥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꼬마는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저 손바닥은 어찌하여 올라가나. 어디까지 백스윙을 하려나. 무엇을 위해? 보다 큰 회전반경을 위해 그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주름이 최대한 잡힐 때까지. 꼬마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질끈 눈을 감았다. 번쩍! 일순 어떤 충돌이 발생했는지 적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꼬마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왼손으로 오른쪽 뺨을 꽉 쥐고 뺨 두 방을 연속하여 때렸다. 여기엔 특별한 질서가 존재했다. 으레 세 번째 마지막 뺨을 강타할 때만 타격과 동시에 손을 놓았다. 그러면 첫 방, 두 번째 방까지는 옴짝달싹 못 하다가 세 번째 방에서야 훨훨 나가떨어질 수가 있다. 그전엔 나가떨어질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꼬마는 세 번째 방이 오면 자유가 오리란 것을 무수한 학습효과로 알고 있었다. 철썩! 마침내 세 번째 방의 충격으로 꼬마는 예상한 만큼 이 미터 정도 뒤로 나가떨어져 장렬히 쓰러졌다. 매 맞기가 다반사였던 학교에서 적당히 과도한 리액션은 필수였다. 그래야 한 대라도 덜 맞았다. 들어가! 들어가면서 마침내 꼬마는 만두 씹을 자유를 얻었다. 눈물이 핑 돌지만 얼얼한 뺨보다는 체벌이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후유, 가슴을 쓸어내리는 평화를 유유히 만끽하면서 으적으적 씹었다. 만두는 맛있었다. 손에 묻은 기름기를 바지에 벅벅 문지르면서 꼬마는 옆 친구에게 만족한 미소를 내보였다. 친구가 말했다. 미친놈, 혼자 먹냐?
중3이 되자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1학기가 두어 달 지날 무렵 인문계를 갈지 실업계를 갈지 결정해야 했다. 그중 실업계를 가는 아이들에게는 야자가 면제되었다. 인문계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숫자는 각 반에 절반 정도였다. 대략 한 반에 오십 명이니 25명이었다. 저녁이 되자 교실에 남은 25명은 모두 짝지를 잃었다. 절반이 사라진 공간에서 퀭하니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다. 정말 공부를 했을까? 어떤 공부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저녁인데도 집이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게 이상했다. 야자가 시작되고 한 시간 가량 지나면 학부모님이 교실에 방문했다. 손에는 간식거리를 들고, 얘들아 공부한다고 수고가 많지? 하면서 선생님이 일러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왔다. 그러면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오늘은 단팥빵이네, 떡이네, 너네 부모님 늙었네, 하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어느 날 저녁 당직을 돌던 영어 선생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 낮에 보던 극악한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엄마 오셨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엄마가 교실에 나타난 것이다. 엄마가 왜 왔지? 그렇구나, 우리 집 차례구나. 그동안 중학교라는 특수성, 남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체벌은 가혹했다. 그래서 집과 학교라는 공간의 차별성이 극심했다. 각자 공간에서는 긴장하는 강도가 달랐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면 학교에서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고 집에서는 잘 쳐다보지도 않는 차이. 집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학교에서는 살벌하다. 살벌한 공간에서 더없이 따뜻한 존재를 만난다는 건, 지금 조심해야 하는 건가 아닌가, 경계해야 하는가 아닌가, 긴장과 행동 모양의 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지 헷갈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학교에서 보는 엄마는 예뻤다. 교탁 앞 형광등 빛이 엄마의 얼굴을 밝게 비췄다. 엄마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옆에서 친구들이, 너희 엄마라고? 거짓말하지 마, 누나잖아, 와아 너희 엄마 소개해 줘, 아가씨 같아, 따위의 말들이 쏟아졌다. 해가 이제 막 넘어간 시각, 엄마는 두 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서 교탁 위에 놓았다. 샌드위치와 음료수였다. 샌드위치 속은 햄과 달걀, 오이와 각종 채소들이 잘게 부서져 마요네즈에 버무려져 있었다. 식빵을 대각선으로 잘라 은박지로 하나하나 포장했다. 아이들은 은박지를 살금살금 벗겨내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입에 머금은 내용물은 햄과 달걀과 오이가 와그작! 마치 갓 익은 복숭아 살점 먹는듯한 소리를 냈다. 소스의 부드러운 맛은 복숭아 과즙처럼 은은했는데 그 옛날 서유기의 불로장생 복숭아를 먹는 제천대성이 부럽지 않을 맛이었다. 엄마는 집에서와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로 내 자리까지 다가와,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해, 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집에서와 색다른 엄마의 말에 으응, 하고 어색하게 대답하면서 낯설어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엄마가 이상했다고 말하니 엄마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샌드위치에 관해 물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오후 내내 아버지와 함께 손수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일이 포장하여 아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가져다준 것이다. 엄마도 내게 학교의 너도 집에서와는 또 다른 얼굴이더구나, 했다. 아들과 엄마는 서로 놀랐다. 여태껏 보았던 아들이 아니란 것과 지금껏 봐온 엄마가 아니란 것이 교차한 날.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을 그 정경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이후 간간이 부모님만의 특색 있던 레시피와 비슷한 샌드위치를 접할 때마다 나는 그날 야자 때 먹던 맛을 떠올린다. 한편 호랑이 같던 영어 선생님이 엄마 옆에서 줄곧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고 급기야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가 평소 사랑했을까. 그건 아니다. 언제나 표적이 되어 두들겨 맞던 나와 고함치던 그였다. 나는 이때 두 얼굴의 페르소나에 대해 알았고 사랑해서 때리고 잘되라고 때리는, 대체 어느 것이 진짜일지 어쩌면 전부 다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약하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각 반에서 절반씩,
25명은 야자를 했고 그 25명 중에서도 간당간당한 애들 10명씩 추려 1반부터 5반까지 모두 50명은 다시 한 반, 이른바 특수반이 되어 그들만의 야자를 또 했다. 야자는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였지만 특수반은 10시 30분이 되어도 바로 집에 가지 못하고 자정을 넘어 12시 30분까지 야자 2부를 했다. 나는 특수반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합격하고 대강하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쉽게 말해 회초리를 들면 합격이고 그냥 내버려 두면 불합격이다. 이런 애들은 이런 애들끼리 모아서 후려쳐야 한다는 게 학교의 지론이었다. 여름방학 날 야자 2부마저 끝나고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연합고사가 백 며칠 남은 시점. 특수반에서 특수하게 만난 친구들과 나는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 는 말처럼 나는 특수반에서 1, 2학년 때 친한 친구들 대부분과 만났다. 대외적인 명목으로는 이른바 야자 3부를 구태여 한다는 거였는데 선생님은 야자 3부를 금지했다.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호기심 많고 어린 날의 열정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헷갈리는 아이들은 포커 놀이에 빠졌다. 실업계에 지원했던 친구도 이 시간 포커를 위해 학교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교실 창에 커튼을 쳤다. 교실의 불빛이 새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숙직하는 선생님에게 들키면 안 되었다. 조명은 되도록 최소한으로 하여 불나방이 불에 가듯이 포커에 빠졌다. 모기가 왱 울더니 따끔했다. 문득 저 멀리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즉각 불을 끄고 책상 밑에 엎드렸다. 책상 밑에서 숨죽여 숙직 선생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포커 놀이는 여름방학 내내 이어지다가 시험이 백일 가량 남은 어느 날 선생님에게 걸렸는데,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예의 45도 뺨 때리기를 전개하며 특수한 녀석들을 집으로 쫓아냈다. 그때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을 때릴 때는 별말이 없다가 내 뺨을 때릴 때 입을 열었다. 너희 어머니가 너 이러는 거 아시냐 모르시냐, 너희 아버지가 너 이러는 거 아시냐 모르시냐. 그러곤 나만 몇 대를 더 때렸다. 나는 튕겨 나가고 다시 제자리에 서고 튕겨 나가고 제자리에 서서 뺨을 맞았다. 눈에 불똥이 튀고 뺨은 얼얼하고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는 나 지금 이러는 거 모르고 아버지도 모른다. 지금쯤 엄마는 동생과 함께 잘 테고 아버지는 술 파는 가게에서 술 팔고 있다. 나는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엄마와 아버지가 모른다는 것을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맞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장 키가 많이 큰 나날 키는 무엇으로 컸을까?
야자를 앞둔 시간, 일단 저녁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당시 임시 건물에 생긴 식당에서는 카레 덮밥을 배급했다. 정확히는 돈을 받고 팔았으니 배급이 아니지만, 꼭 배급처럼 줄 서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카레를 일정량씩 부어 주었다. 나는 돈이 없었다. 너 밥 먹으러 안 가? 물어보던 영어 선생님은 내가 우물쭈물 쭈뼛거리자 이리 따라와, 하더니 식권을 뭉텅이째 사다 주었다. 곰 같은 선생님이 어쩐 일일까 의아해하다가 얼결에 카레 받는 줄에 섰다. 이즈음은 내가 카레에 처음 맛을 들인 시기다. 스테인리스 국수 그릇에 밥을 담아 줄 서서 기다리면 조리사 아주머니는 커다란 양동이에서 국자로 카레를 퍼서 주었다. 줄 서서 먹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였다. 배식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던 시절. 큰 그릇이 넘칠 만큼 가득 담아주는데 또 그것을 앉은자리에서 뚝딱 해치우고 힐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더 줄까? 하며 처음 주었던 만큼 다시 부어주었다. 국수 대접으로 세 그릇. 아이들은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고 서로의 모습에 자극받아 다시 줄 서서 받아먹었다. 일종의 무한리필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고서 야자를 했다. 야자를 하며 공부한 기억보다는 그즈음 먹성에 놀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카레는 그때까지 집에서 먹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낯설면서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내 키를 크게 하며,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내 것이 된 음식이다. 요즘도 가끔 카레를 먹을 때면 그 시절, 학교 카레 생각이 난다. 이제는 그때처럼 많이 먹지 못하지만 먹을 때마다 카레는 내 살과 뼈를 이룬 근간이라 상기한다. 살과 뼈가 카레를 만나 쑥쑥 컸으니 어쩌면 카레가 곧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늘 카레는 짜장보다 낯설다. 카레 더 먹을래? 물으면 괜찮아 배불러 살찐다고 거절한다. 이제는 키가 더 크지 않아서일까, 아무래도 카레는 내게 키 클 때만 당겼던 음식인가 보다. 그해 겨울에만 20㎝는 컸고 이후 키는 크지 않았다. 카레도 즐기지 않게 되었다. 종합해보면 당시 카레 덮밥을 먹을 때만 키가 쑥쑥 큰 셈이다. 학교 식당에서 카레 덮밥을 세 그릇씩 뚝딱거릴 때만 마법처럼 컸다. 국수 대접에 국수가 한 그릇 가득 담긴 것만 봐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데 국물도 아닌 카레 덮밥에 고개를 파묻고는 퍼먹는 재미에 배부른 줄도 몰랐으니 카레는 어쩌면 선생님이 뿌려 준 마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연합고사는 힘들었다.
재수생도 많았고 시험도 어려웠다. 기초가 부족하여 성적의 진폭이 컸던 나는 어중간한 학급, 특수반에서 늦게까지 야자를 했다. 영어시험을 볼 때마다 영어 선생님은 너는 왜 영어 성적이 이 모양이냐며 특별 지도를 해주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가 내 영어성적이 가장 높은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나만 따로 불러내어 요즘 공부가 어떻냐 물어보곤 했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영어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공부는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그 말을 하자 선생님은 야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많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때리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는 그의 지도 덕에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모든 학창 시절을 통틀어 성적에 있어서, 중학생 때가 내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키가 많이 컸고 성적도 가장 좋았으니 말이다. 고대했던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자 선생님은 말했다. 고생했구나, 고등학교 가서도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올 거란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리라 믿어요.
언제고 성공하면 찾아뵈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태 찾아뵙지 못하고 있나 봐요. 대체 언제가 되어야 찾아뵐 수 있을까요. 나는 선생님을 떠올린 날 저녁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제법 장거리였다. 우리 집은 진주의 동쪽 끝이고 여기는 서쪽 끝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오는데 한 시간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해지기 전 도착해야 한다며 부지런히 페달을 굴렸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나는 삼십 년이 지나고서야 왔다. 선생님이 절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그나마 사람 구실 하며 사는 거 같아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학교는 막상 오니까 입구조차 바뀌어 있어서 어디로 올라야 할지 헷갈렸다. 기다란 계단을 따라 오르니 운동장에는 웬걸 멋들어진 인조 잔디가 깔려있다. 하늘은 파랗고 잔디도 초록으로 파랗다. 모현단이 학교와 운동장 사이 보여서 그제야 여기가 대아중학교가 맞구나 했다. 운동장에는 러닝 하는 청년이 두 명 있었다. 학교에 낯선 이방인이 왔건만 그들은 나를 힐끔 보고는 계속 뛰었다. 나는 야자를 하던 지하 교실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밖에서 둘러볼 뿐 차마 안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반대편으로 가보니 가파른 오르막길, 늘 등하교하던 그 길이 안 보였다. 길은 어디로 갔나. 나는 다시 운동장으로 올라가 옆으로 난 길을 찾았다. 저는 그때 미처 다 드리지 못했던, 담배 반 보루 가지고 찾아뵐게요.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찾아뵐래요. 더 기다리기 싫어요. 그러다 샛길로 내려가 보니 차 몇 대가 주차된 아스팔트 길이 나타났다. 가파른 경사를 보고 또 미끄러지지 말라는 가로 빗금을 보고 비로소 그 길이구나 했다. 길은 왜소했다. 숙호산 허리를 따라 돌아 오르는 길. 그마저도 절반가량이 날아가 단절된 풍경. 아무도 다니지 않아 아무나 주차하는 공간. 나는 이 길이 어떻게 변하였나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한 꼬마가 헉헉 숨찬 얼굴로 학교를 오는 게 보인다. 꼬마의 눈은 맑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도 오른다. 반가운 마음에 꼬마를 지켜보는데 작은 체구로 큰 가방을 메고 낑낑거리는 모양새가 웃긴다. 꼬마가 가까이 다가와 우리의 거리가 좁아진다. 꼬마가 나를 알아볼까 싶어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여 쳐다본다. 그러나 내가 꼬마를 보는 만큼 꼬마는 나를 주시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투명한 눈빛이다. 오로지 빨리 올라야 한다는 마음만이 전부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꼬마를 찍으려고 핸드폰을 떠올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급하게 쥐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놀라서 핸드폰을 줍다가 앞을 보니 꼬마는 온데간데가 없다. 왜 반 보루였을까. 연유를 몰랐는데 이제야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입생이던 꼬마의 눈에 비친 선생님의 얼굴. 꼬마는 툭툭 흙먼지를 털고 교실로 들어가려다가 뚝, 멈춰 서더니 가방을 뒤적였다.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께 드려라, 하고 챙겨 준 담배 한 보루의 겉 포장을 찢었다. 영어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영어 선생님께 다 드리면 혼날 것 같았다. 선물을 나누기로 했다. 급히 반 보루만 찢어서 종이를 고이 접어 꺼냈다.다른 선생님들은 저마다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서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영어 선생님은 홀로 화난 얼굴이었다. 꼬마의 눈에는 선생님의 눈빛이 외롭고 고독하게 보였으리라. 입학하고 두어 달, 이미 선생님에게 뺨을 몇 대나 맞았는데도 꼬마에게는 그리 보였다. 어째서 그렇게 보였을까.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인데.
다시 운동장으로 가보니 청년들은 여전히 러닝 중이다. 고개를 드니 어스름 지는 하늘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