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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l 10. 2020

나가자

고속버스에서 오줌이 마려울 때

나가야 산다.





버스 출발 5분 전. 


심야버스, 서울에서 진주까지 장거리 여정. 버스에 오르기 전 꼭 필요한 준비는? 음료수나 과자, 핸드폰 충전기, 이어폰, 또 뭐가 있으려나. 앗, 시간이 없다. 그런 거 말고 또 뭐가? 생각하다가 나는 바삐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저깄구나. 후다닥 뛰어 들어가니 손님이 많다. 소변기마다 두어 사람씩 기다린다. 바쁩니다. 빨리 좀 쌉시다. 이윽고 내 앞의 거대한 남자가 비켜나자 나는 주춤주춤 다리를 벌린 채 투스텝으로 다가가 지퍼를 열었다. 스르륵 댐의 수문이 개방되었다. 수위가 한계까지 이르던 차 조그만 수문 하나가 빼꼼 열린 것이다. 처음엔 나가도 되나? 하고 눈치 보던 강물이 조금씩 조금씩 그래, 이건 나가라는 게 맞다, 인지되자마자 순식간에 앞다퉈 쏟아진다. 참다가 내뿜는 배설의 즐거움이란. 방광에서 급류는 좁은 출구 앞에서 비명을 지른다. 이른바 병목 현상이다. 그동안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수압이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 줄 몰라?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알지? 그들의 아우성에 나는 답한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쭉쭉 순서대로 나오세요. 중간에 닫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기다리세요. 말하는데 가슴이 쿵쾅거린다. 정말 다 나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까. 찜찜하다. 한가로이 마냥 이렇게 서 있어도 되나. 참 버거운 기다림이다. 기다리면서 아래는 보지 않는다. 봐봐야 물줄기가 흥건한 가운데 운동화가 위치하고 운동화 주위로 물줄기가 둘러싸는. 자세히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파생된 지류가 뒤섞여 넓게 바다를 이루는데 우뚝 거대한 섬 두 개가 디딘 형태다. 되도록 파동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자칫 운동화 바닥 옆으로 파도가 치면 높은 곳까지 해일이 닿을지도 모른다. 그럼 마르든 말든 바다 냄새 나겠지. 그런 불상사는 피해야 해. 나는 최대한 천정을 본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다. 아래는 아랫동네끼리 알아서 하쇼. 내 알바 아니니. 그런데도 뜨끈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얼굴에 와 닿는 기운, 이 연기는 누구의 것인가. 앞서 거대한 남자의 것인가. 아니면 갓 태동한 나의 것인가. 어느 것이든 기운과 기운은 섞여 원래의 순결을 잃어버렸지 않나. 나는 섞인 게 싫다. 일 플러스 일은 이가 아니라 삼이나 사, 오, 육이 되는 게 싫다. 심지어 천, 만이 되어 레이저로 대지를 갈라 뇌관을 터뜨리기도 하므로 어쨌거나 싫다. 향기의 짜릿한 각인이 두렵다. 소변기에는 수천수만의 색이 지나갔다. 끊어야 한다. 나는 서둘러 지퍼를 올리고 승차장으로 냅다 달린다. 마지막 스퍼트인데 손등에 묻은 액체는 무엇인가. 넌 어디서 왔니? 




낮은 덥지만, 밤은 제멋대로다. 

특히 비 오는 밤은 더 알 수가 없다. 더러 습한 날도 있고 선선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시원한 밤, 장마철답지 않은 밤이다. 피부 표면이 깔끄럽다. 에어컨 바람이 냉랭하다. 버스 안 습기는 마지막 한 방울마저 날아갔다. 춥다. 손을 뻗어 머리 위 에어컨 구멍을 막았다. 그래도 춥다. 주위를 둘러본다. 어두운 실내 보이지 않는 구멍에서 찬 바람이 맹렬히 쏟아진다. 일어나서 하나하나 손대어 막아버리고 싶지만, 생각으로 그친다. 운전기사는 에어컨을 끌 생각이 없을까. 모두 자는데 홀로 운전대를 잡은 기사. 그는 그만의 세계에서 고독하다. 까만 도로에 쏘아진 빛을 따라 바라본다. 닮은 듯 새로운 장면이 이어지고 빠져든다. 어쩌면 등 뒤 승객들과 차단된 공간에 존재하는지도. 그러니 그는 에어컨을 줄이거나 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에어컨 바람은 늦은 밤 경부선을 달리는 고속버스 실내를 한겨울로 만든다.


나만 추운가 싶어 주위를 살핀다. 언뜻 대각선 뒤에 앉은 아가씨가 눈에 들어온다. 슬쩍 보니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움츠리고 있다. 자신의 팔을 교차하여 가슴팍을 감싸 안아서 목과 쇠골 아래를 문지른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표정이다. 가여운 눈빛이 마치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하는 얼굴 같다. 하긴 그녀는 얇은 반소매 티 하나만 걸치고 아래는 무릎 위로 올라간 스커트 차림이다. 젊음을 과신하는가. 열정은 잠시간 타오르다가 그보다 몇 배 오래 식어야 한다. 피부 아래 뜨거운 피와 지방은 펄펄 끓다가 오래전 잠들었다. 그러면 무엇으로 버티려나. 추위를 온전히 몸으로 느낄 수밖에. 추워요. 춥다구요. 누구 저에게 옷이라도 벗어 주세요, 하지만 나는 건네줄 웃옷이 없다. 에어컨의 성능은 갈수록 위용을 떨친다. 고속버스 천정의 수많은 구멍에서 찬기운이 콰콰콰 내려친다. 그들은 서로 다른 구멍에서 태동했지만, 실내 한 공간에서 어우러져 반갑다고 낄낄댄다. 있잖아, 만나서 반가워. 우리 합치자. 내 몸은 지금 이게 다가 아니야. 계속해서 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구. 너와 내가 아니라 너희들과 우리들이야. 들과 들은 끝없이 확장되고 들과 들로 대체되지. 버스 실내에 가득 차면 차창에 부딪혀 이슬이 되고, 그러면 저세상으로 가는 거야. 그래도 문제없어. 자꾸만 후손들이 태어나거든. 태어나고 태어나는데도 멈추지 않아. 우리는 차창으로만 밀려나 죽는 게 아냐. 요 아랫사람들에게도 부딪히거든. 그러면 어떻게 되냐구? 글쎄 그건 이야기를 좀 더 지켜보자고.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공기방울은 조용히 폭탄을 제조한다. 심야의 고속버스. 모두 의자를 뒤로 젖혀 잠자거나 눈을 감거나. 승객들의 몸으로 스며들어 간 냉기는 빠르게 성장하여 터뜨릴 준비를 한다. 




버스에 오르기 전 화장실에 들렀거나 들르지 않았거나의 차이. 

들렀더라도 냉커피를 홀짝이거나 벌컥벌컥 물을 마셨거나의 실책. 버스 안 승객들은 차츰 소변이 마려웠다. 차가 가다 서다 했다. 벌써 휴게소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지만 버스는 도무지 달릴 생각이 없다. 경부선 비룡 분기점을 앞에 두고 도로 보수 작업이 밤새 진행되고 있다. 차선 절반을 막아두어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인삼랜드 휴게소까지는 아직 멀었다. 잠에서 깬 앞쪽 아저씨가 "아직도 멀었어요?"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그 뒤 아줌마가 다급히 "아이고, 사람 잡는다 카이! 오늘 고마 내를 죽일라 카나"라고 기다린 듯 외쳤다. 이번엔 중간쯤 중년의 남자가 "싸겠다, 싸겠어, 이봐요, 기사 양반! 에어컨 좀 꺼주쇼"라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좌석 등받이를 세운 사람들은 잠에서 깬 부류들이다. 그들은 버스에서 쉬 함부로 내리지도 못하고 찌뿌듯한 근육과 압박하는 방광의 고통에 시달렸다. 그에 반해 좌석에 편히 몸을 늘어뜨린 이들은 아직 수면 상태로 조용하다. 물론 그들도 지겹고 힘들겠지만 어쨌거나 긴장을 늘어뜨려 가수면 상태라도 유지하는 게 그나마 지구력의 유지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소리친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미안한 마음마저 들어 묵묵히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는 모양새다. 방광이 터지는 순서가 있더라도 일단 1순위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나도 참지 못하고 등받이를 세운 부류에 합류했다. 소변이 마려웠다. 나는 버스에 오르기 직전 다녀왔음에도 이 정도인데 중간에 텀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급한 이들이 있을 거라는 안심. 내가 급하면 나보다 급한 이들도 많다. 그러니 괜찮다? 한편 반드시 화장실 다녀온 순서대로 마려움의 순서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 떠올랐다. 똑같이 비워냈다 하더라도 금세 차 오르는 댐, 늦게 차오르는 댐, 급기야 가득 차는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도 잦다. 댐에 연결된 강줄기의 지류는 각기 다르다. 어느새 나는 하루 새 섭취한 물이 어디서부터 내려오는지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놈의 에어컨 바람이 내 피부 속을 얼마큼이나 파고들었는지도 헤아리고 있다.




"아, 잠깐만! 기사님! 진짜 오줌이 급해요!" 

슬쩍 보니 내 옆의 아저씨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손가락을 좌우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박자는 점점 빨라졌다. "조금만 참으세요. 다 왔습니다. 삼십 분이면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운전기사는 대답했고 승객들은 저마다 "아이고, 십 분도 힘든데"라며 자기들만의 리듬을 탔다. 나 역시 좌석 손잡이를 꼭 잡고서 엉덩이를 들어 좌우로 움직였다. 하나둘하나둘 움직이다가 한 번씩 다리를 베베 꼬아 찌잉 찾아오는 통증을 참았다. 다시 하나둘하나둘, 찌잉. 간격은 짧아졌다. 점점 리드미컬하게 변하는 동작이다. 나는 혼자만의 전투에 빠져들었다. 이런 긴장감은 마치 고백을 받았는데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먹먹히 뻐끔거리는 기분 같았다. 답답하다. 당장이라도 시원하게 나도 사랑해, 아까부터 지켜봤다고! 명쾌한 대답을 내지르고 싶건만. 휴게소는 어디인가. 인삼랜드에는 인삼이 팔까. 인삼을 먹으면 방광이 커지려나. 그러면 소변을 참는 인내력도 커지겠지. 아냐, 자꾸 커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커진다고 하니 댐에 수위가 높아져 넘쳐흐를 것만 같은 상상이 밀려왔다. 댐의 벽돌을 더 쌓아 올릴 수 없다면 바닥이라도 파자. 나는 손가락으로 의자 가죽을 벅벅 긁었다. 열심히 파자. 수위가 조금이라도 내려가게. 


문득 오른쪽 대각선 뒤에서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아가씨의 얼굴은 새카만 조명 아래서도 하얗게 바래져 영혼을 잃은 듯 보였다. 흡사 땔감이 다 타 바스러지기 직전의 재 같았다. 어떤 고통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나. 이미 나보다 몇 단계 더 앞서간 전쟁을 치르는 듯했다. 그녀도 땅을 파고 있었다. 양손을 멀리 뻗어 각각 팔걸이와 의자 뒷면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벅벅 팠다. 어디까지 팠을까. 파다가 파다가 저렇게 파는 게 진짜 땅이라면 지구의 중심에 다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찰나,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스커트 밑으로 뭔가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있어서는 안 될, 벌어져서는 안 될 참사. 차창을 통해 드문드문 불빛이 실내를 비추는데 종아리에는 기다란 미역 줄기 몇 가닥이 붙어서 구두와 바닥까지 연결되었다. 나는 잠시 꿈을 꾸는 것인가 싶어 머리를 흔들고 다시 보았다. 그녀는 눈 감은 채 불경을 외는 것 같은 평화로움, 궁극의 경지에 다다라 도로고, 버스고, 휴게소고, 땅굴이고 다 부질없노라 하며 하찮은 중생을 외면하는 표정이었다.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죄다 부정하겠다, 눈을 뜨고 있지만, 그것은 보려는 것이 아니라 눈꺼풀이 올라가 눈이 드러난 것뿐이다. 어쩌면 그녀의 혼백은 이미 육신을 버렸는지도 몰랐다. 아마 버리고 싶었으리라. 이내 그녀의 눈이 감기자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댐은 급한 대로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수위, 수압에 이르자 다시 수문을 닫았다. 곧 미역줄기가 작아졌다. 그것은 나만 아는 비밀일까. 앞뒤 바닥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액체는 어쩔 거야. 냄새는? 


차창을 보는데 드디어 휴게소 표지판이 보였다. 시간이 간다. 혹시 다 증발되길 기다리는가.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순결한 물줄기는 홀로 외롭다. 나는 절대 합쳐지길 거부하리라 마음먹는다. 마침내 버스가 서고 문이 열린다. 들입다 뛴다. 원스텝으로 다가가 지퍼를 연다. 고개를 든다.


방류 중 눈높이 창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운전기사가 대걸레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아가씨는?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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