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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l 13. 2020

장례식장 무한 리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해 적량 앞바다





띵! 울적한 일요일 오후. 문자가 왔다. 직장 선배가 상을 당했고 발인은 화요일이라는 내용이다.


상갓집에 갈 때마다 아내는 소금을 뿌리고 들어오든, 중간에 화장실에 들르든 하나를 하라고 한다. 아마도 귀신이 몸에 붙어 집에 따라올까 봐 그러는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그러겠노라 성실히 대답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고 졸래졸래 그냥 들어오곤 했다. 설마 진짜로 따라오겠어? 하는 마음과 귀차니즘 때문이다. 나는 유별나게 남들 결혼식보다 상갓집 가기를 더 좋아하는데 왜 그런 취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현금을 소지하지 않는 요즘. 동료들은 저마다 돈 빌리는 전화를 한다. 내 것도 해줘. 계좌이체로 보낼게. 바빠서 그래. 사정 알잖아? 결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이가 총대를 메 봉투 쓰고 현금을 넣는다. 퇴근 후 장례식장에 몇몇 사람이 모여서 일부러 일행을 만들어 들어선다. 상을 당한 선배와 눈인사를 나누고 멈칫 여기는 어떤 스타일인가, 향을 피워야 하나? 찬찬히 보는데 마침 옆 사람이 이리 와 꿇으라 한다. 내가 꿇어 빈 잔을 들자 옆 사람이 공손히 술 따르고 나는 향 위를 세 번 돌려 잔을 놓는다. 그러고는 모두 서서 곁눈질로 박자를 맞춰 일제히 두 번 절하고 일어난다. 절할 때 손을 바닥에 놓으며 왼손을 위로 포개는지, 아니면 포개지 않고 두 손을 나란히 짚을지 순간 헷갈려서 옆 사람의 손동작을 따라 짚는다. 그러나 지금도 내 손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어서 선배의 소개로 상주와 악수하며, 상념이 얼마나 크십니까, 힘내십시오,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한다. 인사 중에 아이고~아이고~곡소리가 들리자 특이하게도 마음은 지극히 편안해진다. 때때로 슬픔은 동화되어 저 깊이 간지러운 등을 긁듯 찌릿하게 다가오곤 한다. 슬퍼도 슬픈 줄 모르고 쟁여두어, 간지러워도 간지러운 줄 모르고 쑤셔 넣었던 감정을 끄집어낸다. 왜 그렇게 쌓아두기만 했니? 이제 괜찮아. 곰팡이 펴 썩어가던 것을 쫙 펴서 햇볕에 말린다. 냉동고에서 슬픔이란 생선을 꺼내 해동하는 곳. 어쩌면 그런 곳이 바로 장례식장이 아닐까. 




밥 드릴까요? 상갓집 도우미가 묻는다. 그녀가 상을 당한 선배의 가족인지, 그냥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누가 누군 줄도 모르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다. 상갓집에서는 언제나 정형화된 식사와 반찬이지만, 상갓집만의 향냄새와 또 측은지심의 분위기가 은근히 식욕을 돋운다고 느끼는 건 나만 그건 걸까. 제사 후 음복도 처음엔 강제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먹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후 그러한 습관이, 언제부턴가 향냄새가 날 때면 남들이 평소보다 덜 먹는 거 같아서 내 몫이 많구나, 맛난 것만 골라 먹어야지, 복도 많이 받아야지, 맛난 수육과 생선,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방울토마토, 각종 꼬치전이 더 당기는 것은, 으음~ 아마도 나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 상갓집이 남해라서 그럴까. 평소처럼 방울토마토, 떡, 마른안주, 수육, 김치까지는 같은데 특이하게도 생선회와 말린 생선구이, 거기다 놀라운 건 투명 플라스틱 접시 위 큼직한 피조개가 딱 여섯 점씩, 가지런히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옷이 홀라당 까 벗겨져 부끄럼 타는 모양새로 올라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테이블 위엔 각종 찍어 먹는 장 종류라니, 간장 막장 된장 절임장 초장까지, 웬만한 잔칫상 저리 가라다. 상을 당한 선배는 우리 테이블에 올 때마다 된장이 없네, 초장이 없네, 수육이 없네, 하며 뭐가 더 필요하시오? 물었다. 그래서 피조개가 필요합니다 하니 그려 많이 드시오 한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니 얼마든지 있으니, 하고 부지런히 빈 접시를 내가고 온 접시를 내온다. 결국 6점씩 있던 피조개는 테이블에 마주 앉은 4명이 한 점 반씩, 그러니까 동작 빠른 자가 두 점씩, 날름날름 잦은 젓가락질에 접시는 덩그러니 제 주인을 잃고 방치되기 일쑤다. 이거 수출하는 거예요, 하고 누군가 귀띔하니 입맛이 더 돋아났다. 어쩐지 쫀득쫀득 짭조름하더라니. 


선배가 보다 못해 에라 모르겠다, 여기 많으니 잔뜩 드시오, 하고 피조개 플라스틱 수십 칸을 쌓아서 내오니, 일행은 놀라 황송하여 젓가락질을 쉬지도 못하고 바삐 움직였다. 찹찹 찹찹 집어서 각기 입에다 넣고 다시금 찹찹! 그러면 후배가 빈 접시를 하나씩 황급히 테이블 밑으로 내려 차곡차곡 숨겼다. 숨겼다고 하니까 어쩐지 어감이 망측한데, 굳이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태연히, 단지 테이블 위가 복잡하니까 굳이 다른 곳에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테이블 아래 발밑으로 슬며시 안 보이게 넣어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날의 백미인 피조개를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리필하고 리필하여 더러 접시 위 마지막 한 점은 서로 간에 양보하는 미덕도 있을 법한데 한 점이라도 놓칠세라 마구마구 경쟁하듯 집어 먹었다. 피조개는 속살이 쫀득하여 굉장한 식감을 선사했다. 겉모습이 빨갛게 여물어 잘근잘근 씹다 보면 어느새 꿀꺽 넘어가는 그 감칠맛이란.




집에 오니까 아내가 선뜻 소금을 뿌렸냐고 물었다. 나는 안 뿌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는 길 중간에 화장실에 들렀냐고 물었다. 나는 안 갔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당신 어깨 위 귀신이 안 보여? 귀신을 왜 집안까지 데려왔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여기서라도 소금을 뿌리면 되지 않겠냐고 하자 아내는 바퀴벌레가 죽어서도 알을 까는 것처럼 귀신도 죽어 알 깔 수가 있다며 안 될 말이라고 했다. 내심 피조개를 싸오지 못해 미안했다. 나만 배불리 먹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아내는 바퀴벌레를 휴지에 돌돌 말아 집안 화장실에 버릴 거냐고 반문하더니 그러면 하수도관을 타고 새끼들이 기어오를 거라며, 이럴 게 아니라 아예 밖에 나가 저 멀리 던지고 와야 직성이 풀릴 거라면서 기어코 집 밖으로, 나는 한 마리 바퀴벌레라는 멍에를 달고서 쫓겨났다. 귀신은 바퀴벌레가 아니라고 속으로 되뇌는데


귀신이 말했다. 남의 상갓집에 와서 조문이나 하고 얼른 사라질 것이지. 식탐을 부려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생전 내가 제일 좋아하던 남해 피조개를 이다지 무지막지하게 먹어 치우는 인간은 처음 봤느니라. 큰 뜻으로 꼭꼭 씹어서 한 점씩만 맛보라고 내었는데, 그걸 그리도 꼴깍꼴깍 삼켜버리다니. 비싸서 입만 다시던 음식을 감히 이놈아! 제일 큰 거 수출용인데, 무엄하도다! 네 놈 먹성이 하도 괘씸해서 따라와 봤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 육지까지 붙어왔구나, 에구 내 팔자야, 밤중에 남해까지 어떻게 돌아갈지 걱정이구나. 나는 말했다. 그래도 어서 돌아가셔야 남은 몇 점이라도 드시지 않겠어요? 가지런히 여섯 점씩 앙증맞게 춤추는 그 놈이요.


동네 공용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먹음직스러운 피조개가 다시금 떠오른다. 근데 왜 이리 몸이 무겁나. 나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급히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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