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없는 사람들 (진주에서 죽은 이)

죽은 이의 령.

by 머피



1593년 6월 19일.

기록에 의하면, 조선 팔도에 흩어졌던 왜군은 추풍 같은 왜장의 명령에 따라 진주로 집결하였다. 여기서 추풍이라 함은 언뜻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이 아닐까 싶은데. 바람이 선선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런데 그놈의 추풍(趨風) 같은 명령 때문에. 지체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그래서 여름이 끝나고 가을 첫 바람이 불 때면 가슴이 서려왔던가. 큰일이다. 드디어 올 게 오는구나. 손에 닿으면 소름 끼치도록 시린 그들의 총탄, 그들의 칼날 때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는 했다.

왜장에게는 지난가을 진주대첩이 철천지 악몽 같은 전투였다.

그들은 김시민 장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애써 몸부림쳤다. 그리하여 9만 3천의 거대 병력은 개미 떼처럼 진주성을 기어올랐다. 무려 9만 3천은 1차 진주대첩 때 진격한 3만의 3배에 이른다. 그날은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진주성은 버티다 끝내 버티지 못했다. 모든 게 거기까지였다. 성벽은 무너졌다. 9만 3천 왜군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곧이어 학살이 시작되고 단 한 명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구걸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구차하지 않았다.


진주성 안에는 6만 성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6만이라는 숫자,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짐작하지 못한다. 다만 나만의 방식으로 가늠해보려 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반 평균 50명이었다. 한 학년이 10반까지 있었으니 동창만 꼬박 오백이란 숫자다. 해서 나는 동창을 만나도 대개 동창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튼 고등학교는 3개 학년이 동시에 재학 중이니 천오백이다. 그런 고등학교가 40개 모여야 6만이 된다. 고등학교 40개가 모이려면 진주 같은 도시 열 개의 고등학생 전체가 모여야 한다. 또 그들이 죄다 죽어야 6만 성민이 된다. 진주는 서부 경남의 중심 교육도시다. 서부 경남 같은 규모로 따지면 전국 모든 교육도시의 고등학생이 죽어야 6만이 된다. 나는 수많은 고등학생을 죽이고 죽여보지만, 여전히 아득하여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도 계속 죽여 보려고 한다. 내 앞의 동창이 죽으러 가면 나도 따라 죽으러 가고 끝없이 죽고 죽어야 한다. 6만이라는 숫자를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가늠하지 못한다.


왜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의 코를 베었다.

왜병 한 명당 기본 세 개의 코를 가져야 했다. 코는 곧 전리품이었다. 귀는 2개니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것인가 그 수를 세는데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코는 사람당 응당 하나이니 코 하나당 한 사람의 전리가 오롯이 증명된다. 군들은 들어라. 코를 베어 돈을 벌어라, 했다. 왜병은 코를 모아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냈다. 히데요시는 그 코 더미를 보고서 상금을 내리고 품을 주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코를 얻을까. 왜군은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았다. 울부짖는 산모의 코를 베었고 잠자던 아기의 코를 베었다. 숨어서 바들바들 떨던 아이의 코를 베었고 쓰러진 노파의 코를 베었다. 진주성 인근에는 코 없는 자들이 코 없이 숨 쉬고 코 없이 밥을 먹었다. 코 없는 자들은 자신처럼 코 없는 자를 보고 울었고 자신을 보고 우는 이를 보면서 또 울었다. 코 없이 울더라도 그들은 살아남아 코 없이 죽은 이들을 땅에 묻었다. 6만 성민은 산채로 코를 잘렸고 총을 맞았고 칼을 맞았다.


나는 동창생 뒤에 줄 서서 코 잘리고 총 맞고 칼 맞는 순서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긴박하게 쳐다보며 침을 삼킨다. 친구가 죽고 또 친구가 죽고 자신도 죽을 테다. 손을 뒤로 결박당하고 무릎 꿇린 채 제 순서를 기다린다. 두려움에 아득하여 차라리 눈을 감는다. 옆에서는 아내가 입술을 깨문 채 함께이고 자녀는 영문도 모른 채 배고프다며 운다. 처자식이라도 살려주오, 고함쳐보지만 순서대로 예방주사 놓듯 코를 거두고 죽인다. 아비가 죽고 어미가 죽고 자식도 한날한시에 죽는다. 남강은 6만 성민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 끈적거렸다. 이후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코 무덤이 잔인하다 하여 귀 무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다고 코가 귀가 되지는 않는다. 귀 무덤으로 지칭된 교토의 무덤에는 코가 잔뜩 묻혔다. 코는 소금에 절여져 눈이 눈물 흘리듯 콧물을 줄줄 흘린다. 콧물은 교토에서 동경 앞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류를 타고 동해로 남해로 남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진주성 앞을 흐른다. 가을이면 개천 예술제가 열리고 남강 유등축제가 열린다. 수많은 이가 남강변에서 그들과 만나 순국선열의 피에 애처로운 마음 한 움큼씩 전해 띄운다. 가을에 죽은 이들의 말소리가 가을바람에 실려 찰박찰박 물결을 일렁인다. 여름에 죽은 이들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남강으로 밀려온다. 축제가 열리는 날, 등을 띄우려 강가에 앉은 이의 운동화가 밀려온 강물에 젖는다. 오늘날 남강은 끈적거리지 않고 그저 맑고 차가운데 이따금 찾아온 이 기운이 발밑에서 찰박, 찰박거릴 뿐이다.




시월의 바람과 함께 진주대첩이 온다.

선선하고 고운 바람, 추풍(秋風)이다. 바람은 산들산들 진주성을 어루만진다. 차츰 바람은 지아비 부르는 아녀자의 한이 실려 서걱거리고 지어미 부르는 아이의 고함에 써걱거린다. 서걱대고 써걱대는 바람이 성 밖 널브러진 왜군을 한차례 휘몰아친다. 왜군은 종일 공성에 임하느라 심신이 지친 상태다. 동, 서, 북을 아무리 공격해도 소용없었다. 날아오는 화살과 투석을 막으려고 민가의 마루판을 모두 뜯어다 방패 삼았다. 주린 배를 달래고자 민가를 약탈하고 불태웠다. 진주성 인근 민가는 새카맣게 잿더미만 남았다. 왜군은 지루하게 죄어오는 불안을 살육으로 채웠다. 김시민 장군은 결사 항전 임전무퇴로 버티었고 비봉산 자락 곽재우 장군은 꽹과리 치고 호각 불며 진주 성전을 지원했다. 진주성을 공격하는 삼만 왜군은 지쳐갔다. 사다리를 성벽에 던져 오르다 보면 돌 화살 기왓장 열탕이 쏟아져 내렸다. 위에 놈이 떨어지면 다음 놈이 떨어지고 다음 놈이 떨어지면 제 차례가 임박한다. 떨어지면 몸을 추려 다시 올라야 한다. 죽을 때까지 명이 다할 때까지 오르고 오른다. 꽹과리 소리와 북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앞뒤에서 조여 온다. 내 한 몸 가만 둘 때는 오직 지금뿐인데. 달 밝은 밤, 잠이 오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누워 눈 감는다. 바람이 윙윙 귓잔등을 때려 도저히 잠 이룰 수 없는데 문득 바람 따라 거문고 소리가 난다. 거기에 퉁소 소리도 거든다. 거문고 줄이 땅땅 튕긴다. 땅바닥에 누워 가뜩이나 한기가 올라와서 으스스한데 거문고 소리는 쉬지 않고 들려온다. 구슬픈 가락이 더해진다. 소리가 나는 데를 쳐다본다. 소리는 진주성에서 새어 나온다. 점차 처량해진다. 찬 바닥에 누워 어둠 속 달을 보니 슬픈 곡조가 가슴을 울린다. 집에 가고 싶구나. 전쟁이고 뭐고 다 던지고 싶다. 심리전이다. 김시민 장군은 진주성 대첩에서 삼천팔백의 병력으로 삼만 왜병을 무찔렀다.




어젯밤 이 글을 쓰고 늦게 잠들었다.

그러고 새벽, 나는 어머니와 둘이 사는 집, 거실에서 어머니와 얘기 나눈다. 어머니는 환히 웃었다. 인자한 미소는 무엇이든 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곧 멀리 두려움 가득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데. 그곳에 가기 전 우선 화장실에 간다. 내가 묵을 방은 화장실과 붙은 구조다. 나는 방에 들어서서 곧장 걸어가 오른쪽 화장실 문을 열려다가 어쩐지 불안하여 왼쪽을 돌아보고서 뜨악 어떤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서로 놀랐다. 모르는 할머니 귀신. 구부정하게 무척 쪼그라든 모습. 실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공포. 소름 끼쳤다. 방과 화장실 사이에 그 존재는 내가 올 줄 모르고 미처 피하지 못했나 보다. 그 존재 또한 나를 보고 떨었고 나 또한 견디기 힘든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는 애당초 미리 조심하여 마주치지 말아야 했거늘 내가 실수로 갑자기 여기 온 것이 잘못이고 그 존재는 내 발소리를 듣지 못한 게 잘못이다. 순간 어머니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오면 날 구해줄 것만 같았다. 인자한 미소. 어째서 어머니가 구원자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설핏 어머니의 얼굴이 논개의 영정을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와달라 고함을 지르고픈데 목소리가 잠겨 나오지 않는다. 도망가고 싶어도 다리가 떨려 움직이지 않고, 어떡해야 할까. 이 곳은 내가 이불 펴 잘 방이란 말이다. 지금 당장 일시적으로 피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여기는 내가 머물러 사는 땅. 따라서 네가 나가야지 내가 나간다는 건 아니 될 말. 나는 아늑히 잠잘 공간을 걱정하면서 마침내 호통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버럭 큰 소리를 내고 싶지만 실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처로이 말했다. 여기는 내 방이다. 당신이 머물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다시는 나타나지 말지어다. 그렇게 힘을 다해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너무 떨려서 어떤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위급했다. 내가 떨고 있다는 것만 온전히 드러낼 뿐, 존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물러가라! 그러나 존재는 사라지지도 않고 되려 윤곽만 더 뚜렷해졌다. 급기야 내게 다가왔다. 흠칫 공포를 느끼는 감각이 최고조로 솟구쳐 저리 가라고 목을 짜내 고함치는데 그러다 갑자기 툭! 아내가 무릎을 친다. 아뿔싸, 꿈이었구나. 동시에 존재는 사라졌다. 힘겹게 눈 떠 시계를 보니 6시다. 아무렴 어머니와 따로 산지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왜 어머니랑 둘이 사나, 그리고 그 인자한 미소는 뭐람, 한편 내 방에 침범한 존재는 분명 할머니였다. 나와 직결된 할머니가 아니라 모르는 노파. 이생에서 본 적이 없는 존재. 머리칼인지 수염인지 섞여서 분간할 수 없고 형체 또한 작달막했다. 문제는 코가 없다는 것. 너무 무서워 감히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고 나는 이 시각 어찌하여 악몽을 꿨나 돌아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 끼익 안방 문이 열리더니 딸아이가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딸아이가 말하길, 이번 방학 선물이 너무 간소한 거 같아요, 좀 더 색다른 걸로 하나 더 받고 싶은데 커다란 곰인형이나 토끼 인형이 어때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곰인형 크기는 어떤 걸 원하니? 그렇게 우리가 선물에 대해 검색하며 토론하는 중 잠에서 깬 아내가 나오길래 나는 물었다. 어젯밤 자는데 왜 무릎을 툭 쳤냐고, 혹시 내게 이상한 거 없더냐고. 그러자 아내는, 아이고 말도 마, 코 고는 것만도 모자라 내참 기가 막혀서 진짜, 랄라라~ 하면서 기괴한 노래를 부르는데, 와! 나 정말 당신이 잠에서 깨어 일부러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그것도 큰 소리로 부르는데, 윗집 아저씨도 아마 놀래서 깼을 거다, 이제 자면서 하다 하다 별 희한한 짓을 다하네, 확 그만 쫓아내 버릴까 보다, 라고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나는 정체모를 할머니 얘길 꺼내려다 말았다. 그러고 논개를 떠올렸다. 엊그제 모처럼 찾아간 진주성에서 촉석루를 그냥 지나쳐버렸는데 조만간 짬을 내 의기사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상의 만분지 일이라도 구체적으로 피아가 식별되는 것에 버거움을 느낀다. 헤아려 몸소 피부에 갖다 대니 식겁을 한다.


아무튼 그렇게나 고함을 질렀는데 노래를 불렀다니. 고함과 노래는 어디서 연결되나.

죽은 이와 축제는.


바람은.


















*전국통일문예작품 한국문인협회이사장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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