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뒤에

격렬한 (단편소설)

by 머피


격렬한 키스는 어떻게 격렬해지는가?

그냥 둘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주 보다가 잠깐 대화가 끊길 때 슬쩍 얼굴 보는데 눈이 마주쳐 스르르 다가가 아아 지금이로구나 할 때. 말없이 눈 감고 고개를 가져간다. 쪽. 츠읍. 입맞춤. 따뜻해. 촉촉하다. 이 느낌. 이것이 너의 입술이로구나. 움직이네. 움직이는구나. 뭐라고? 지금 뭘 말하는 거야? 뭘 말하려고 계속 움직이는 거냐고. 중요한 말일까?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고 나도 입술을 움직인다. 움직이는 입술이 움직이는 입술을 만나 네가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려고 의미를 파악하려고 살핀다. 살피다가 이것은 무엇인가. 또 다른 친구. 혀가 있네? 아 그래 말은 혀가 하는 거지? 입술은 그저 벌릴 뿐. 실상 중요한 말은 혀가 구현하는 거야. 그래 너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뭐라고? 국어시간에 배운 구개음화, 아니야, 자음 모음 단모음에 따라 혀의 모양이 어떻게 변한다고 했더라.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그럼 영어인가? 혀를 어떻게? 언어가 아닌 움직임을 언어로 알아들으려는 생각. 놈은 모르고 있었다. 모르는 걸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차원이라 역시 알 도리가 없다.


아파트 정류장에서 만났다. 만나서 집에 잠시 볼일을 봐야 한다고 했다. 아니 집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녀가 따라왔다. 방에 잠자코 들어갔다. 한낮에 집에는 그녀와 나 둘뿐.


방에서 그녀와 나는 마주 앉은 상태로 끌어안았다. 라디오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리믹스된 '리멤버 더 타임'이 시끄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볼륨을 올렸다. 왜 볼륨을 올리느냐고 그녀가 물었지만 곧장 키스로 응답했다. 그녀의 묶은 머리를 푸니 주르륵 긴 머리가 치렁거렸다. 그러자 성큼 학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성숙한 여인으로 변했다.




나는 금방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갈 운명이지만 봐라, 결박당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 중이다. 나는 아주 조금만 늦었을 뿐이므로 이 정도의 권리는 있는 것이다. 도살장에 갈 때 가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악물었다. 그동안 고백하지 못한 지난날이 떠올랐다. 내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널 지켜보았는데, 단지 며칠이 늦었다는 이유로 사귀지 못한다니, 솥에서 다시 살아 나올 가능성이 없기에 나는 마음먹은 것처럼 끝장 보기로 했다.


그녀와 내 얼굴은 밀착되어 서로의 온기를 전하고 전해주었다. 한낮의 햇살에 붉은 물감이 나타나 배경으로 덧칠되었다. 팔레트에 빨간 물감이 몽글거렸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두 볼이 물감으로 발그레하다. 우리는 불이 붙은 것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봤다. 빨개진 얼굴로 내 눈을 바라봤다. 나의 독기가 감당하기 무섭게 그녀를 압박했다. 키스는 갈수록 진해졌고 그녀는 도대체 왜 그러냐며? 당황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내가 몰라서 묻는 거냐며, 곧 도살장에 끌려가 구렁이의 입속으로 삼켜질 것이므로, 다시금 사람으로 환생하여 복학생이 된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며 항변하듯 그녀를 옥죄었다. 실랑이 속에 그녀가 아래에 누워 내가 몸 위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다. 내가 왜 여기에? 실랑이 속에 벗었는지 벗겼는지 어느덧 상의는 브래지어만 남았다. 드러난 가슴을 보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브래지어를 풀 줄 몰라 허둥거리며 쳐다봤다. 브래지어가 추켜올려졌는지 풀어졌는지 정신이 없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앞서 있었을 터다.

처음! 최초! 선구자! 선배에게도 누구에게도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는 명제. 그것은 마치 금광을 처음 발견하고 주위를 살피는 것 같은, 산삼밭을 발견하고 주위에 누가 없을까 움츠리는, 복권에 당첨된 순간 아무 소리 내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맘 겨우 다잡아 가지런히 채 접히지 않은 복권을 덜덜 떨리는 손길로 지갑에 욱여넣는 듯 쾌감, 절대적 만족감을 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차츰 이래도 될까?

라는 물음에 나는 주저하기 시작했지만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이어서 그녀의 청바지 벨트를 풀려고 한참을 꾸물거렸다. 나는 왜 벨트를 풀지 못했을까. 벨트를 잡고 이리저리 힘을 주어 보아도 벨트는 풀어지지 않았다. 벨트는 왜 풀어지지 않았나. 내가 한참 벨트 끈을 잡고 버둥거릴 때 그녀는 지켜보다가 간간히 그만하라고 저지했다. 저지할 때마다 이렇게 당겨서 저쪽으로는 안되는구나 이제 저쪽으로 당겨서 고리를 이쪽으로 빼야지, 하는 학습효과는 삭제되었고 시행착오만 반복했다. 그녀는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갈 때만 적절히 저지했던 것 같다.




나는 결과만을 생각하려고 했지만 과정을 망각하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대롱대롱 매달려 매를 맞았다. 매질은 아팠고 끝날 때까지 좀처럼 버티기 힘들었다. 다시 주저했고 힘이 빠졌다. 벨트를 잡은 손을 놓았다.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쓸어 응시했다. 땀이 한 움큼 송글송글 맺혔다. 그래, 그렇구나, 이미 늦었지만, 그 틈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 이해하니까 달래줄게. 못다 한 응어리를 상대해주마고 그녀는 끄덕거렸다. 아직 매를 맞지도 않았건만 나는 엉뚱하게도 그녀에게 독설을 쏟아부었다. 원하는 대로 하늘만 좇는 구렁이가 되어 줄 테니 그만 좀 때리라고, 저세상에 가더라도 잊지 않겠다고, 순리대로라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변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변하지 않은 경우가 없는 것처럼, 너도 복학생 선배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다른 개처럼 조용히 매를 맞아 순순히 연한 고기를 내어주지는 않을 거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나는 처음, 최초, 선구자가 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날 밀치고 일어나 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텅 빈 집, 흐트러진 정경 속에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돌연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급히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데간데없는.



주위가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