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늦었을 뿐인데 (단편소설)

by 머피


입대 전. 그 황량한 시간.

겉옷을 벗고 온전히 맨몸으로 맞서는 세상. 지극히 처음 맛보는 자유. 그리고 죄어오는 속박. 극과 극의 시간. 학교를 벗어나 입대 전까지. 하루하루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는데 나는 자유를 몰랐다. 이것은 그저 시키는 대로 등교하고 하교하고, 가 아니다. 종류가 달랐다. 결이 다른 공허. 아침에 눈 떠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한 달을, 몇 달을, 어디서 뭘 하며 무엇을 겪고 성취하거나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죄다 스스로 감내하고 책임지고 대답해야 하는 시간. 어떻게, 라는 궁금증은 금방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렇다고 자유라는 물결에 마냥 편승할 수도 없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다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헤엄치고 지치면 구명조끼에 기대 널브러지고 그러한 감각에 젖었다가 막상 구속 중의 구속, 속박 중의 속박, 척박한 군 환경에 맞닥뜨리면 자칫 덜 마른 몸으로 크게 다칠 수도. 정말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할 수 있을까, 인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 앞에서 나는 서서히 긴장이라는 그물에 포박당하고 있었다.




입대 전, 마땅히 정상이 아니었다.

휴학하고 봄부터 멀리 수원에서 막노동하여 일당을 벌었다. 일당을 받아 모으는 재미. 친구와 나는 여관에서 지내며 낯선 도시의 새로운 확장에 멋모르는 기여를 했다. 오래된 도심의 낡은 여관. 한 달씩 결제하면 싸게 해 줄게. 친구 둘과 나는 한 방에서 지냈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인력사무실로 갔다. 한 명이 간혹 오늘은 쉴게, 라고 하면 나머지 둘이 너 놀러 왔냐면서 다독였다. 매일매일 일당을 받았다. 하루는 건설현장에서 멋모르고 뛰어내리다 발바닥에 못이 박히기도 했다. 말 못 하는 조선족 일꾼이 자신에게 발을 맡기라 했다. 같은 인력사무소에서 온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발을 빼앗겨 처음엔 어쩌나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어어 어어, 라며 무어라 설명했는데 나는 뭐든 해보라 내버려 두었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성냥을 휙 당겨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못 박힌 발바닥을 지졌다. 정확하게는 못을 빼낸 구멍을 지졌다. 안 그러면 파상풍이 온다고 옆에서 설명해 주는데 나는 마구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조선족 일꾼은 발을 꽉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옆에서 제대로 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일했다. 온전한 일당을 받으려면 오후 나머지 시간도 채워야 했다. 너 때문에 진도가 늦잖아, 저리 가 있어, 라고 옆에서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당이 중요했다. 쉬려고 올라온 게 아니었다. 점점 급해졌다.


여름에는 진주에 내려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일단 돈을 벌어서 화끈하게 쓰며 재미난 추억을 쟁취하고 싶었다. 재미난 추억이라. 그때부터 깔끔하게 셔츠를 입고 검정 바지를 입었다. 거울을 자주 보던 밤. 밤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에 심취했다. 도롯가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과 충돌하고 사라지는 순간이 얼핏 동화 속 왕자가 쓴 왕관처럼 보였다. 빗방울이 웅덩이에 부딪혀 퐁당거리는 것처럼 마지막에는 멋지게 뛰어올라 명작을 그리고 일순간 사라진다. 그게 나의 계획이었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내가 그리는 결과물은 학교를 떠난 시간 동안 굳건히 함께해줄 믿음의 존재가 되길 바랐다. 그림만 보면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겼다. 입대 전 허전한 삭막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공허함을 달래려면 어떡해야 하나, 궁리했다. 허전했다. 한없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심해에 들어가 가도 가도 더 빛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돈가스를 먹었다. 아뿔싸, 그녀는 이미 복학한 선배와 사귄다고 했다. 조금 늦었다.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나는 휴학을 했고 군에 다녀온 복학생들이 나타났다.

선배는 우리 과에서 제법 주축으로 활기차게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동기들은 내게 그 선배의 활약상을 들려주었다. 키스를 할 때까지 나는 그 선배를 몰랐고 만난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입을 통해 들었을 뿐. 훗날 입대 하루 전 학교에 갔을 때 그 선배와 태연히 악수한 적이 있다. 선배의 쭉 째진 눈이 반짝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날 째려본다고 달라질 건 없다, 라고 체념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난 그저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라고 생각했다. 곧 두 손을 결박당하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릴 운명이다. 이어서 가차 없는 매질이 닥쳐올 터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매질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맞다 보면 때리는 사람도 지칠 때가 있겠지. 그 틈새에 숨을 쉬면 된다. 솥에 삼켜질 때까지 나는 지쳐있는 이에게 겨우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형편이다. 솥에 삼켜지고 손님상에 내갈 때 또 다른 자아로 나는 태어날 것이다. 군대에 가기 전과 후의 의식은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내가 군에 다녀오지 않은 것만을 한탄할 뿐이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그녀가 한 말이다. 진주성에서 남강을 바라보며 고백할 때 그녀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휴우~한숨 쉬었다. 그러며 하는 말이 아주 조금 늦었다고 했다. 복학한 선배가 불과 며칠 전, 그러니까 얼마 되지 않은 시기, 사귀자는 말을 먼저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조금 늦었을 뿐인데, 아주 조금뿐인데 왜 거스럴 수 없는 역사로 봐야 하느냐고 지금이라도 조금 더 빨리 달려서 추월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조금 덜 자고 덜 먹어서 노력하면 안 될까 물어보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런 조금이 결코 조금이 아니구나. 조금만 더 빨랐다면 고백을 받아들였을 텐데, 라는 뉘앙스. 숨이 막혀왔다. 괴로웠다. 그녀는 마치 올림픽에서 참가 접수만 빨랐다면 금메달이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조금 늦게 접수하는 바람에 참가조차 어렵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틈은 흡사 우주와 지구처럼, 태평양과 남강처럼, 만리장성과 진주성처럼 크기의 차이가 엄청났다. 그 때문에 끝끝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방법이 없을까? 저기 다른 길이 없을까? 정말 없니? 도저히 안 되겠니? 아니 왜? 진짜? 응?


휴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수원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레스토랑에 오기 전이라도 괜찮았을 텐데, 하고


끝없는 가정법의 문장을 만들고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