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의 혀 (단편소설)
뚜벅뚜벅.
복도에 발소리가 울린다. 바깥은 한낮이지만 복도는 어두컴컴해. 밖은 봄 햇살로 화창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곳은 겨울밤처럼 극히 어둠뿐이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마치 구렁이의 목구멍에 들어가듯 나는 쑥 미끄러져 걸어간다. 나는 혀다. 눈동자가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이제 막 확장되기 시작할 즈음.
또각또각.
복도 저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언제고 이럴 줄을 알았는데 진정되지 않는다. 다시 또각또각. 발소리는 가슴에 판판이 박히며 다가온다. 나는 건물 중앙계단을 돌아 2층, 이 복도에 올라서자마자 그녀가 오는 것을 알았다. 곧 마주칠 터다. 어떡하지? 어떡하나. 주변 누구에게 말을 걸거나 핑계 댈 이도 없이 혼자, 완전한 혼자다. 나는 왜 혼자 걸었나, 피할 수 없다. 나는 왜 피하려고 생각하나.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 년이라는 시간. 그토록 인내했던 세월이기에 차마 ‘안녕’이라는 인사 하나로 묵살되도록 할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버틴 무게가 얼마인데. 누가 버티라 한 것도 아니지만 버텨낸 자신이 사뭇 대견하기는 한데 벌써 대견해해도 되나 헷갈리기에. 나는 성공적인 복학생이라고 자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상적인 마인드. 정신은 정상이잖아. 비록 과거를 잊지 못하지만, 과거에 잠식되지도 않았노라 안심하는데. 복도가 시작되는 코너 옆 화장실을 막 지나쳐 왔기에 화장실에 가는 척 돌아서기에도 이미 늦었다. 내가 걸어가는 복도 앞으로 혹시 어디라도 열린 문이 있을까 싶지만 회의적이다. 진작부터 나는 그곳에 가려고 정신을 쏟는 중이다. 따라서 전방에 누가 오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런 나를 보고서, 아 저 녀석 뭔가 급한 볼일이 있나 보구나 그래서 내가 이쪽에서 오는데도 부르는데도 지켜보는데도 몰라보는구나. 그럼 나중에 물어봐야지. 너 아까 무슨 일이길래 그리 급하게 갔대? 내가 막 불러도 못 듣고 말이야. 여기까지 계산하는데도 걱정이 되었다. 쏜살같이 몸을 틀어 급한 그곳에 막상 손잡이를 잡아 돌리는데 문이 잠겼으면 어떡하나. 혹은 당신이 뭔데 여길 들어오냐라든지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하는 말소리가 자칫 크게 들리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당신을 피하려는 의도, 를 들킨다는 것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짧은 시간. 나는 피할 곳이 없는지 여전히 찾는다. 갑자기 버뮤다 삼각지대가 나타나 나를 사라지게 할 수도. 우주 블랙홀이 등장해 빨아들일지도. 그러면 아직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또 뭐가 있을까? 상상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아득히 상상하며 궁금해한다. 문이 아니라 아무 벽이라도 두드리면 슬그머니 기적처럼 내 몸을 숨겨주지나 않을까, 궁금하다.
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어디라도 후다닥 뛰어들고 싶은 생각 수백여 가지를 떠올려봤지만 결국 피할 곳이 없음을 알았고 피할 타이밍도 지나감을 알았다. 지금 복도에는 오롯이 그녀와 나, 둘만 존재한다. 뚜벅뚜벅. 또각또각. 발소리가 교차하여 울린다. 복도는 어두운데 켜진 등이라곤 하나도 없는. 바깥이 밝다고 여기까지 밝을쏘냐. 복도 양면으로는 실험실과 각종 냉장고, 강의실이 빽빽이 자리하기에 햇빛이 들어올 틈새가 없다. 어두컴컴한 실내. 긴 복도에서, 세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어둠. 얼굴마저 보이지 않는데. 맞닥뜨리기까지 내내 달아나고만 싶은데. 어떡하랴. 아무튼 나는 그대가 누구인지 안다. 그대는 당신이고 당신은 저 앞에 걸어오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지만 마치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것처럼 느낌이 친숙해. 늘 당신을 생각했으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으니 오랜만에 만나지만 어쩌면 오랜만이 아니고 오랜만이 아니니 나는 그대를 자연스레 알아보는 걸지도. 가까이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하지 않아도 알고 멀리서 실루엣만 보고도 안다. 발소리만 들어도 알고 어떤 자세로 걷는지도 안다. 모래시계에 모래가 다 떨어지고 이제 사우나 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갈 시간이 임박했는데. 땀을 흠뻑 흘렸으니 찬물로 샤워를 하든 냉탕에 풍덩 빠지든 바깥은 어쨌거나 짜릿할 것이 틀림없다. 마침내 나는 찬물로 사워하고 냉탕 수면 밑으로 잠수한다. 실제로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손을 든다. 짜릿하다. 냉기가 어깻죽지에 매달렸다가 파르르 달아난다. 머리가 띵하다. 인사하려 한다. 드디어 오랜만에 그녀가 나를 보고 인사하려 하는구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저 옛 친구와의 조우를 가벼이 만끽하려 한다. 머리 꼭대기 꼭짓점부터 온도가 내려가 시원한 강이 흐른다. 어쩌면 그녀 역시 복도 저쪽에서 걸음이 시작될 때부터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아는 척할까. 그녀 또한 좌우 어디 문이라도 벌컥 열어 뛰어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몸을 돌려 버릴까. 뭔가 잊은 것이 있는 것처럼.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다시 돌아나가면 어색하지 않을까?
내가 널 알아봤기 때문에 피하는 게 아니라 정말 뭔가를 잊어서 깜빡해서 몸을 돌리는 거라고 보일까. 갖가지 고민 속에서 그녀는 내게 손들어 인사한다. 인사하는 그녀를 보고 나도 손들어 인사해야 하나. 정말 그래도 될까. 나는 고민하지만, 시간이 없다. 시간은 삼 년 동안 있었다. 그렇게 삼 년 동안 생각했다.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기어이 구렁이로 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렁이의 혀 일부가 되어 간간이 날름거릴 때 날름거리며 얼굴 내민다. 혹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그날의 개처럼 헤벌레 인사해도 되는 것일까. 아아, 시간이 모자라. 마침내 모래시계의 모래 한 톨마저도 바닥으로 투둑 죄다 떨어져 버린 찰나. 나는 퍼뜩 눈동자의 초점을 맞춰 그녀를 보다가 그만, 어둠 속에서 어물쩍 확장되지 못한 눈동자 탓을 하기로 한다. 결국 모른 척하기로 결정을 내려버린다. 무리수일까. 그녀가 손들고 오는데도,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버린다. 모른 척한다. 그녀와 나는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굴이 너무나도 많이 변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암시. 나는 암시를 걸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그녀는 내 왼쪽으로 지나치며 시무룩이 손을 내린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가는 동안, 그녀와 멀어지면서 나는 벌써 후회하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오랜만이라고 인사하고 싶은데. 삼 년이라는 시간 따위가 뭐라고. 그래 인사를 하자. 아직 늦지 않았어. 복도는 길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 있다. 나만 앞서 걸어 나가는 형국. 순간 너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아서 또각또각 소리가 왜 이어지지 않는지 이상하니 얼마든지 궁금해할 수 있는 차, 막 뒤돌아서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이한 거 같아.”
나지막이 그 말은 어두컴컴한 복도를 타고 내 등에 꽂혔다. 살이 파였다. 피가 흘렀다. 그제야 발걸음을 멈춘 내게 그녀는 덧붙였다.
“넌 특이한 사람이야.”
나는 흐느적거리는 내 손을 움켜잡았다. 뭐라도 잡아야 했다. 손바닥이 따뜻하다. 손바닥에 흐르는 피가 이렇게나 뜨겁구나 놀라웠다. 부들부들 가슴이 떨린다. 그녀의 말은 목을 관통하고 입을 막아버린다.
나는 그녀 앞에서 지독히 바보가 되었다.
복도에서 들은 그 말 때문에 과거에 좀 잡혀 새로운 형태로의 발동을 금지당했다. 그녀는 2학년 1학기에 나와의 만남 이후 내가 군대에 간 시기에 맞춰 1년간 캐나다 유학을 다녀왔고 이제 막 복학한 나랑은 반 학기를 같이 다녔다. 그 시간을 어찌하지 못해 나는 여전히 긴긴 복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뒤돌아보지 못했다. 끝끝내 나는 특이한 놈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특이한 구렁이의 입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이제 구렁이는 시간을 빼앗았고 뼈까지 으드득 씹어 삼켜 예전의 형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날 이후, 네가 얼마나 많이 나를 돌아보며 지나쳤는지를. 내 고개는 오른쪽에서 돌아올 줄을 몰랐다. 만날 때마다 알아보지 못하는 척을 하다가 어느새 진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너에게 가혹하게도 걸어오는데, 나라고 나를 몰라보겠느냐고 가슴을 치는데도, 모른 척하고 심지어 못 본 척을 하고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날부터는 반대로 내가 손을 들게 되었는데 이번엔 네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모른 척 당한 마음을 달래주겠노라 손을 들었다. 밤마다 하얀 편지지에 꼬박꼬박 편지를 썼다. 정성스레 접어 봉투에 넣었다. 너의 아파트로 달려가 우편함에 넣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는 척을 못 했기 때문이 아니다. 애당초 우리는 복도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마주친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구렁이는 제가 먹은 것을 일일이 보여주지 않았고
입을 꾹 다물어 혀는 마지막까지 날름거리지 못했다.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