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찍는다. (단편소설)
드디어 찍는다.
여기, 그렇게 많이 들렀으면서도 사진은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사진으로 남기면 색이 바래진다고, 직접 오면 될 것을, 찾아갈 곳을 잃어버린다 여겼을까.
오래도록 고정된 배경에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으므로 찍을 준비는 벌써 마쳤다. 두근거린다. 차창을 보며 기대한다. 짙은 선팅이 이러한 조명에서 시야를 막아주겠지. 그저 이 순간을 간직하고 저 장면을 기억하고 싶다는 바람.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 나는 과감히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사진이 있으면 언제든 볼 수 있다. 이처럼 계단 입구 그림 하나에도 나는 감사해한다. 화면에 빈 계단 입구가 들어오자 마치 길거리에서 고액지폐 다발을 발견한 것처럼, 살며시 히든카드를 확인하는데 원했던 카드가 들어온 것 같은, 횡재에 가까운 떨림이 전해진다. 가로등이 적당히 밝으니 내가 보는 시야와 비슷하게 찍히겠지, 가늠하고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찍는다. 아아 사진까지 건질 줄이야. 나는 소리 죽여 감격한다.
셔터를 누르는 촉감이란.
스나이퍼가 가늠쇠에 포착한 먹잇감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처럼. 총알이 발사되는 배출의 쾌감. 설렘의 힘으로 철컥 찍는다. 순간 빛의 폭발이 셔터를 누르자마자 동시에. 예상치도 못한 플래시가 번쩍이면서 총알이 나가지도 못하고 터져버린다. 갑자기 플래시라니? 빛은 주차장 전체를 하얀 물감으로 덧칠했다. 엷게 더하는 식이 아니라, 순식간에 하얀 페인트를 쏟아버려 소나기가 되어 뿌려져서는 보다 진하게 세상을 적시는. 아파트 전체가 하얀색에 젖다가 원래로 돌아간다. 주위 사람들 모두 페인트에 젖었다. 차 안이지만 충분히 주위의 이목을 끌만한 빛. 스나이퍼는 자신의 위치를 들켰다. 나는 화들짝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주변이 일제히 쳐다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플래시가 번쩍거리는 찰나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번쩍임과 동시에 그녀가 계단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뿔싸. 소나기는 날벼락을 불렀다. 역시 그녀도 불빛을 봤다. 감지했다. 포착했다. 보더니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그녀가 웃는 이유는 무엇 때문에? 사고는 거기서 멈추고 온몸이 경직되다 겨우 고개만 흔들어본다. 이건 정말 아니라 말하고 싶다. 얼른 내려서 그녀에게 억울하다 하소연하고 싶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뭘 그리 잘못했기에. 왜 이런 천벌을, 세상 만물이 밉고 지구 상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마땅히 오해받을 상황에서 부딪치다니. 황망함은 이내 공포로 바뀌어 손을 떨게 한다. 와중에 그녀 옆에 남자가 보인다. 그녀는 남자와 속닥속닥 대화 중이다. 그들은 커플, 연인, 부부. 어쩌면 셔터를 누르기 전부터 커플은 밖에 나와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타이밍도 한계가 있는 법. 이보다 더 두려운 순간이 있던가. 넌 특이한 사람이다, 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제야 나의 무의식이 털어놓는다.
사실은 오 분 전 계단 입구에 그녀가 나타났다. 하도 뜻밖이라 벌써 정신이 나간 네게 제대로 인지하게 말해줄 틈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기에,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기에 무조건 집중해야 했다.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이 순간을 소중히 각인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파트 구석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커플이 내 차와 마주한 거리는 불과 십여 미터. 그들을 보는 동공이 점점 커졌다. 커플은 내 차 앞에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가까우니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도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지금 뭔가 기념할만한 게 없을까? 내 안의 특이한 놈이 꿈틀거렸다. 그래 사진을 찍자. 어쩌면 하늘이 내리는 삼세번 중 두 번째일지도. 찬스다. 그렇게 나는 카메라를 꺼내 어떠한 합리화인지, 저기 보이는 계단 입구만 찍는 거라고 아파트 계단만 찍는 것이니 초상권과는 관계없지 않냐고, 낡은 계단이 더 낡기 전에 사진으로 남기는 거라고 했다. 얼결에 억지를 부려 애당초 저 앞에는 커플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그러니 얼마든지 커플이 안 보였던 장면을 찍는 것이니 자연스레 찍을 수 있다고 제멋대로 주장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속았다. 나쁜.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녀가 온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쿵쾅거린다. 몇 년 만인가. 드디어 그녀가 운전석 차창 앞에 서서 창문을 두드린다. 설핏 보니 웃는 얼굴. 날 알아보고 웃는 걸까. 왜 웃지? 아니 왜 왔지? 저 멀리 남자도 이쪽을 보며 웃는듯하다. 특이한 놈이 특이한 짓 하다가 걸렸으니 특이한 놈이라고 비웃는 것 같다. 절망적인 순간. 형사가 쳐 놓은 함정에 걸린 도둑의 심정.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심정. 나는 그녀가 쳐 놓은 덫에 걸린 한 마리 벌레. 걸릴 줄 알았다. 스토커처럼 몰래 기웃거리며 사진이나 찍어대는 불한당. 걸렸구나. 어서 얼굴을 드러내어라. 보고 싶으면 그냥 반갑다고 인사할 것이지. 이렇게 숨어 사진이나 찍다니. 보니까 플래시가 터질 줄은 몰랐던 거 같은데 어쩐다니 나는 네놈이 운전석에서 바들바들 떠는 것을 다 아는데. 그러니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을쏘냐. 어서 문을 열고 내리려무나. 내려서 하얀 목을 드러내어라. 그 마음 헤아려 잠깐 비웃는 것으로 용서할 테니. 그녀의 웃음소리는 기요틴이다. 소리라는 틀 위에 웃음이라는 칼날이 내려찍는다. 하얀 피가 쫘악 흩뿌려진 게 그려진다. 머릿속은 이미 하얀색으로 뒤범벅이고 얼굴은 하얗게 질린다. 아찔한 마음. 지극히 초연한 상태. 어쩔 수 없다. 운명에 순응하기로 하고 번뇌를 내려놓는다. 내 손은 번뇌를 다 내리고 이번엔 차창을 내리려 버튼 위로 옮겨간다. 나는 아직 고개 돌리지 않는데 차창 앞에 선 그녀 얼굴이 보인다. 신기하다. 인간의 눈은 위기에서 등 뒤도 볼 것이다.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마주 볼 것이라 생각지 못했는데. 긴장 속 혼미한 중에 정신이 들자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경련이 온다. 왼쪽으로 고개 돌리자 서서히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저 얼굴. 저 표정. 그래 너 맞네.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 그러니 내 특별히 너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니라. 어서 차창을 내릴지어다, 하고 평생 잊어먹지 않게 잘 보라는 계시일지도.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내 이성의 맥락을 지키는 보호 본능은 마비되어 스르르 창을 내린다. 시간은 느려. 창이 삼분의 일쯤 내려가자 정신이 번쩍 든다. 내 몸을 지탱하는 로봇 슈트에 전원이 나가 방치된 몸. 이대로 해체되어 발가벗겨질 뻔한 순간. 갑자기 삐빅 전원이 들어온다. 위기 감지. 어쩌면 도저히 회복할 길 없을 수도. 지금 이렇게 만나버리면 정말이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추한 모습으로 기억되기는 싫어.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한가. 젠장 잠옷 차림이다. 슈트에 명령을 내리자 손가락은 즉각 차창을 올리고 기어를 넣어 급후진 한다. 아파트의 좁은 기역자 모양 통로를 엄청난 속도로 부아앙! 소리 내며 한 번에 돌려 나온다. 정문을 벗어나자 식은땀에 온몸이 젖은 것을 깨달았다. 억울하다. 수준 낮은 스토커. 난 그저 저녁 산책 삼아 커피나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널 찍으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새로 샀는데 그게 차 안에 있어서 찍어본 것인데, 하고 한숨 돌리자 조수석 밑에 쓸쓸하니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기왕에 찍은 거 너라도 한번 보자 싶어서 찍힌 화면을 확인한다. 화면은 까만색뿐. 찍는 순간 플래시 때문에 당황하여 차 안의 바닥을 찍어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사진도 건지지 못하다니. 그 수모를 당하고도.
하얀 물감은 너무나도 짧게 세상을 칠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주워들은 대로 그녀는 한창 연애 중이었고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날 책방에 책 빌리러 산책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왜 그 따위 상황을 그렇게 연출하고 그 따위로 도망쳤는지. 내 귀에 들려오는 건 또 뭔지. 여전히 한숨이 나오지만. 바보 같고 특이한 놈.
그녀에게 그런 사람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