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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갓 Jun 03. 2021

또, 놓쳤다!

매일글 쓰려던결심은 어디에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나, 매일 글 쓰던 시기가 있었다. 해외에 다녀오며 시작된 2주간의 자가격리가 쏘아 올린 작은 습관이었다. 6평 남짓 되는 작은 원룸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스쿼트 같은 홈트나 노트북 하기 정도밖에 없었으니 하다 하다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매일 10~30분 정도씩 시간 내어 5개월쯤 썼을까. 이렇게 논리 없는 글을 매일 한 페이지 씩이나 적어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고 싶어 져 글쓰기 강의도 신청해서 들어봤다.


감정 글쓰기. 저서가 여러 권 있으니 글쓰기는 전문가지만, 정신분석 쪽으로는 전문가인지 아닌지 모를 그 경계 어디 즈음에 계신 선생님을 모시고 12주나 되는 글쓰기를 해냈다. 글쓰기 선생님은 단지 꾸준히 쓰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의 수위를 낮출 수 있다.'라고 코멘트해 주셨다. 그렇게 작년 한 해는 4월부터 12월까지 빡빡하게 내 생각을 기록하며 내 안의 잡념을 털어냈다.


올해는 작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사를 하면서 내 생활패턴도 달라졌고 식습관도 달라졌으며 매일 하는 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책 읽기와 글쓰기 하는 시간이 줄었다. 일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면 일단 드러눕고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왜? 체력적으로 힘드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벌써 올해가 반이나 지난 이 시점에 돌이켜보니 그저 '출근했고, 일 했고, 그럼 집에서는 다시 충전해야지!' 하는 단순한 보상심리였다.


퇴근 후에도 여분의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그 에너지를 쏟을 데를 찾지 못하니 조금씩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 매일 열심히 출근해서 일하고 있고 주말에도 본가에 내려가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느꼈다. 가까운 친구가 말했다. "너 그거, 생산적인 일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닐까?" 가까이서 나를 지켜보던 그 친구 딴엔 내가 답답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매일 빈둥거리며 '소비하는' 생활을 하는 내가 안타까웠을지도 모르고.


2021년의 반이 다 지나도록 충전한답시고 뒹굴대다 보니 더 이상 참지 못할 시점이 다가왔다! 아직 제대로 행동에 옮기지도 않았지만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색연필화 그리기 클래스를 등록하고 도자기교실도 알아본다. 본업에 써먹을 수 있으니까. 지난주에는 일하고 나서 그날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해보려 했는데 이틀 만에 포기했다. 매일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고 아이들 하나하나 관찰하기엔 내가 하는 일은 개인과 마주한다기보다는 '전체를 돌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에 글로 남길 거리를 찾을 정신은 없었다. 한 명 한 명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싶은 내 의지는 현실을 맞닥뜨리면 온데간데없다. 동시에 30명 가까운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10년 가까이해오는 일인데도 쉽지가 않다. 내 마음처럼 이상을 좇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판이다. 감정 글쓰기 할 때 선생님께 이런 고민도 털어놓은 적 있다. "개개인을 다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개인의 욕구를 제한하는 것 또한 폭력이지 않은지 모르겠다. " 하는 뉘앙스의 고민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뭘 그리 순진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교실은 당연히 최소한의 폭력이 있어야 유지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나 또한 자라면서 수많은 제한과 금기를 이곳에서 학습하면서 자랐고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좋게 말하면 집단에서 생활하는 법을 익히도록 돕는 곳이 내 직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 땅의 노동자로 순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여기, '학교'였다. 이 직장에 다니면서 여전히 내 고민은 이 부근 어딘가의 지점에서 맴돌고 있지만. 


어쨌거나 작년의 나는 글쓰기를 선택하고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외부의 시선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얻었다. (여기는 합의된 폭력을 자행하는 기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조심하게 된다. 최근에 한병철 교수님의 <폭력의 위상학>을 읽어서 더 그렇다. 내가 자꾸 폭력, 폭력 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폭력'과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게다가 글쓰기를 하면 무의식 속 내가 무엇을 고민하며 지내는지 드러내기가 쉽다. 당장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일단 '의문'이라는 것을 가지기 용이해지고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쓰기를 놓쳤더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쓸 때를 또 놓쳐도 상관없다! 그냥 쓰고 싶으면 쓸 것이다.


<기록의 쓸모>를 발간한 이승희 마케터님은 영감 노트만 10년 가까이 써오고 계시던데. 나는 왜 꾸준히 기록하지 못할까? 나도 꾸준히 쓰고 싶다는 욕구는 있나 보다. 올해 들어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내겐 그저 강박이다. 작년엔 했는데 왜 올해는 하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띄엄띄엄.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쓰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배설하는 듯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쩔 수 없다. 그저 쓰는 글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고 여기까지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 고마울 것이다. 이 글이 뭐라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걸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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