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정신승리하려는 것은 아닌
분명 코로나로 만나는 사람은 확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 휩쓸리기는 더 좋은 때가 되었다. 다른 이들의 소식을 뉴스나 sns로만 접하다 보니 누군가는 집을 사서 시세차익을 남기고 누군가는 집 한 채 갖지 못해 벼락 거지가 되었다고 실컷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디에 속하나 생각해보니 무주택에 벼락 거지가 된 쪽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고 현금 1억조차 갖지 못한 나는 지금 전세 살고 있는 집조차 살 능력이 안 된다. 살 수도 없으면서 전셋집 시세를 가끔씩 찾아보곤 하는데 6개월 전 4억 3천이었던 것이 어제 확인해보니 5억 7천이다. 경기도의 30년 묵은 19평짜리 아파트가 말이다.
글렀구나, 나는 이제 글렀어. 하면서 한탄하다 보면 불현듯 속이 끓어오른다. 난 왜 집을 갖지 못하나 생각하다 보니 원망이 부모에게까지 닿았다. 가진 집에서 가진 자식 나는 거지. 이게 다 가난한 엄마 아빠 탓이다. 하는 못난 생각까지 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주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자 책을 펼쳐 들게 됐다. 독일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한 철학자가 내게 말했다. '네 화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라고. 남들에게 뒤처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남과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끓는 화를 주체할 수 없게 된 거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끓어오르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다 걷어내고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내게 부족한 거라곤 아침잠 정도였다. 별로 일찍 일어나지도 않지만 출근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니까. 그 외에 먹는 것, 입는 것, 몸 뉘일 곳, 보고 싶은 사람까지, 내겐 다 있었다. 풍요로운 삶이다. 욕심을 걷어내면 되는 것인데 뉴스에 휘둘리는 와중에는 그것이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귀 닫고 살 수는 없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중심을 잡고 서서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오늘 김영하 작가의 인사이트 3부작 <보다, 읽다, 말하다>를 펼쳐 들었다. 그는 설국열차의 머리칸과 꼬리칸 승객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읽다 보니 머리칸과 꼬리칸에 탄 사람이 지닌 차등(꼬리칸은 바퀴벌레를 먹고 머리칸은 제대로 된 요릴 먹는다든가 하는)은 별 문제가 안 되었다.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자신의 세상을 규정할 줄 아는 힘이 있어야 한다. 정신승리라기보다는 그가 알고 있는 세상이 그의 전부를 규정하므로 생각할 줄 아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끔 세상을 알아볼 자유가 더 필요하다. 멋대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쓰다 보니까 의식의 흐름이 되어 또 제대로 정돈되지 않는데, 이렇게 남겨 두기라도 해야 나중에라도 다시 정리를 할 테니 그냥 이대로 발행한다. 1장, 김영하 작가의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