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아직 유용한가? / 임형권
들어가며
스티브 잡스는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행하던 선불교에서 얻은 통찰을 토대로 아이폰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종교적 수행과 경제적 성공 사이에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탄생했다면,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인 기능을 해오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의 시대에서 이성과 과학의 시대로의 대전환 이후에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때문에 종교의 유용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종교인을 찾아가기보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천재지변을 예측하거나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에게 묻거나 탄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과학 시대에조차 종교는 인간에게 과학이 줄 수 없는 통찰을 주고 있다.
파스칼은 자신의 철학적, 종교적 단상들의 모음집인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 안에 홀로 잠잠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적고 있다.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파스칼은 어떤 계기를 통해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소란스러운 오락으로 시간 죽이기를 하는 삶에서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조용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과학자였던 파스칼이 종교적 삶에서 궁극적인 해답을 찾은 것을 보면, 분명 과학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파스칼이 말하는 ‘잠잠히 방에 홀로 있음’은 여러 종교 전통의 명상 수행의 특징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표현 중 하나이다. 홀로 있음으로써 우리는 욕망과 재미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보다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다. 명상의 유용성은 바로 이런 물러남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참된 나를 찾는 길로서 명상
[나는 누구인가?]
성서 이외에 서양 문화에 큰 발자취를 남겨오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서 세례를 받고, 인생 후반부에는 아프리카의 히포라는 도시에서 주교로서 삶을 마무리한다. 그의 종교적 삶의 여정이 훌륭한 문체로 기술되어 있는 책이 바로 유명한 『고백록』이라는 책이다. 그도 파스칼처럼 오락의 재미에 빠지기도 했고, 성적 열망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육체적 즐거움을 좇고 있던 그의 영혼은 늘 불안했으며 쉼을 얻지 못했다. 책의 유명한 대목에서 저자는 “너 자신 바깥으로 나가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 진리는 사람의 마음 안에 거한다.”라고 적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을 그리스도교를 넘어 다른 종교적, 철학적 전통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의 핵심은 눈으로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세계를 통해서는 결코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세계는 변화하는 성격을 가진 세계, 불교적 용어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 속에서 나를 찾으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세계 속에서는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랑하다가 금세 미워하고, 정의롭다가 불의하며, 자비롭다가 냉혹해지는 것이 우리의 변화무쌍한 자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에 대한 지식과 자아에 대한 지식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주제는 그가 평생 유일하게 탐구한 주제였다. 만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파스칼과 같은 ‘잠잠히 홀로 있음’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서양 종교사에서 오늘과 같은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보다 오래전 그와 비슷한 종교 체험을 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플라톤이라는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이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플라톤의 『국가』는 정치적, 교육적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책 제7권에는 ‘동굴의 비유’라는 아주 흥미로운 비유가 등장한다. 깊은 지하 동굴에서 여러 죄수가 사슬에 묶인 채로 벽을 주시하고 있다. 벽에는 여러 사물의 그림자가 보인다. 죄수들은 몸이 사슬에 묶여 있으므로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죄수들은 그 그림자들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 그림자들은 죄수들 뒤에서 여러 모양의 사물이 횃불에 비쳐 생긴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그 죄수 중에서 한 사람이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처음에 그는 사물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결국 태양도 볼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돈, 사랑, 우정, 명예들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덧없는 것보다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그는 이를 선의 이데아라고 불렀다-를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내면의 진리를 추구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플라톤의 언어로는 태양에 비유된 선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명상이라고 부르는 활동을 경험한 자가 바로 정치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사람, 곧 철인왕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 경험은 그가 주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다면 명상은 우리 자신을 찾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도덕적 인간이 되는 길로서 명상
[어떻게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명상의 또 다른 유용성은 도덕성의 함양에 있다. 모든 명상이 도덕적 수양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종교 전통에서 명상은 도덕적 덕성을 기르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명상에 해당하는 라틴어 표현 중 하나인 contemplatio는 라틴어의 con과 templum이 합성되어 생겨났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점은 명상의 어원에는 templum, 즉 사원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고대 세계에서 사원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점을 치는 종교적 공간이다. 인간의 정신적 발전과 더불어 철학자들은 하늘을 보면서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발견한다. 우리가 우주라고 하는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라는 말 자체가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 속에서 종교가들과 철학자들은 명상을 통해서 도덕적 질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명상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근대 철학자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 에서 “두 가지 사실이 늘 새롭게 그리고 경탄을 자아내면서 내 마음을 채운다. 그것은 위로 별들이 가득한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과학적 정신으로 무장한 이 학자도 우주의 숭고한 조화와 질서 속에서 도덕적 존재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칸트의 학문에서도 서구의 오래된 명상 전통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불교적 명상 수행이 도입되었을 때, 오늘날 신유학자라고 불리는 일단의 학자들은 불교적 명상에 유교의 도덕적 요소를 가미하려고 하였다. 불교는 그 교리의 특성상 선과 악에 대한 뚜렷한 구분을 지양한다. 이와 달리, 유교에서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기 때문에, 명상할 때도 선을 증진하고 악을 제거하는 방향성을 띠게 된다. 유교 명상에서 ‘경’(敬)을 중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경’은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마음을 집중하여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자신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유교 외에도 명상과 도덕성을 긴밀히 연결시키는 종교 전통은 그리스도교 전통이다. 위에서 말한 경에 해당하는 그리스도교의 용어는 pietas이다. 물론 여기서 피에타스는 신 앞에서 경건함을 말한다. 신약성서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27)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경건이란 도덕적 실천과 분리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명상과 실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은 그리스도교 수도원 운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는 바로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개신교의 등장으로 경건한 명상 활동은 세속적 활동으로 확대되어 표현된다. 막스 베버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신 앞에서 경건한 태도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개신교도들은 가장 세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언뜻, 명상 수행은 일상적,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서 고독하게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역사적 명상 전통 가운데에는 매우 실천적, 도덕적 요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찾는 것은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라는 문제와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다.
치유의 길로서 명상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는 길]
명상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인 meditation은 라틴어의 치료한다는 뜻의 동사인 medicari를 어원으로 한다. 명상과 치유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다. 육체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의학의 관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상식적으로도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불교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라고 가르치는 고성제(苦聖蹄),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도 일종의 치료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고통이라는 병을 확인하고, 인간의 욕망이 그 원인임을 진단하고, 그 욕망을 없애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치료법이 팔정도, 즉 8가지 바른 수행 방법인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서 한 일은 말로 가르치고, 육신을 치료하는 일이었다. 그는 말로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고, 기적을 통해서 육신의 질병을 치유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수도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바로 병원의 기능이었다. 이것은 바로 예수의 지상에서의 활동에 근거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성경을 읽는 방식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하는데, 성경 본문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관조에 이르는 읽기 방식이다. 성서가 예수의 말과 행적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죽고 부활하여 천상에 있다고 하는 예수를 만나는 길은 바로 성경을 읽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바로 영혼의 치유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계는 사람의 병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명나라 주권의 글을 퇴계가 필사한『활인심방』(活人心方)에는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명상법이 제시되어 있다. 우선 중화탕(中和湯)이 있다. 중화탕은 마음을 치료하는 30가지 정신적 약제이다. 대표적인 약제 몇 가지를 들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야 하고(思無邪), 질투하지 말아야 하고(莫嫉妬), 하늘의 도를 따라야 하고(順天道),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淸心). 또한 화기환(和氣丸)은 마음에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참을 인(忍)자를 그려보는 명상법이다. 퇴계는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나쁜 감정을 누를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육체적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명상이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동서양의 명상 전통은 치유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실증적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치유는 명상 수행의 부수적인 결과이지, 치유를 위해 명상을 도구화하는 것도 명상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가며
기술 문명은 효용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 실제적인 쓸모가 있어야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종교적 맥락에서든 세속적 맥락에서든 명상 활동은 가장 쓸모없는 활동으로 비웃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기술과 그것이 생산해 낸 물질적 부는 우리에게 진정 쓸모가 있는 것일까? 그것들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성정을 부패시키며 인간 상호 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면 쓸모 있어 보이는 지식이 가장 무용한 지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가장 실용적인 활동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명상은 인간에게 진정 중요한 자아 정체성의 문제, 윤리적 문제, 건강의 문제와 깊이 연관을 맺고 있다. 위해서 인용한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비극은 홀로 방 안에 잠잠히 있을 수 없는 것에서 출발한다.
키워드
#고통, #도덕, #명상, #자아 정체성, #치유
임형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고려대 사학과 강사
주로 그리스도교 전통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종교를 중심으로 철학, 역사 등 인접 인문학 분야와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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