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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Feb 04. 2021

309일 고공농성 김진숙은 왜 400km를 걷고 있는가

노동자 김진숙에게 명예회복과 복직을

10년 전, 복직을 요구하며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309일간 고공농성 벌였던 여성 해고 노동자 김진숙.



이번엔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와 부산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경부선 국도를 따라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벌써 한 달이 넘게 한걸음 한걸음 청와대를 향해 뚜벅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는 2월 7일에 목적지인 청와대 앞에 도착할 예정이다. 무슨 이유인가.


지난 1월 5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노동자 김진숙 복직은 정부, 사회, 기업의 책무'를 외치며 노동자 김진숙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긴급기자회견에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하면서, 비로소 김진숙 지도위원(내겐 익숙한 직함)이 왜 다시 험난한 투쟁의 길에 나섰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10년 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 농성을 펼쳤던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을 격려하기 위해 '희망버스'와 함께 거리에서 노숙하며 밤을 새우곤 하던 그 때 그 시절.


그러곤 나는 당연히 복직이 된 것으로 알고 노동자 김진숙 문제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아직도 온전히 복직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정권 들어 주채권자인 국책은행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회장의 주도 하에 투기자본에 한진중공업이 넘어가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암투병 입원 중인 김진숙 노동자가 다시 아픈 몸을 이끌고서 청와대까지 걸어서 오는 항의성 뚜벅이를 시작한 이유다.


그날 기자회견을 하러 간, 청와대 분수대 앞 지붕조차 없는 농성장에는 송경동 시인,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부지부장,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 등 시민사회활동가들 7명이 고난의 행군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지난해 12월 22일부터 맹추위 속에서 단식을 이어가면서 노동자 김진숙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영섭 신부와 성미선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건강악화로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며칠 전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명예회복과 복직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10년 전 희망버스에 함께 하면서 고공농성 현장에서 썼던 칼럼을 붙인다.




나는 웃으며 투쟁하는 그녀가 한없이 좋다 / 정중규


2011.7.26.



김진숙은 내 트친이다. 아마 그녀가 처음으로 트위터를 시작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까운 심정에 멘션이나 RT로 소식 전하는 것뿐이라 늘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간 지난 겨울부터 6개월동안 하루도 내 마음이 크레인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200일째 고공농성 중인 85호 크레인 맞은편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와 ‘생명, 평화 그리고 소통을 위한 희망 시국회의 200’에 연이틀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그녀를 먼발치로나마 올려다보고 양팔과 촛불을 흔들며 인사 나누었다(2차 희망버스 땐 경찰 차단벽에 막혀 그녀를 만나기 전 100m 앞에서 그만 눈물을 머금고서 끝내 되돌아서야만 했다).


▲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김진숙 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여기 사람이 있다! 이 시대의 골고다 언덕, 85호 크레인, 그 십자가 위에 사람이 있다! 에체 호모(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크레인, 35m 고공 크레인 속에 꼼짝없이 갇혀 6개월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혹한의 한겨울에 올라가 폭염의 한여름을 견디며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뀐 긴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마치 조조의 백만 대군을 혼자서 물리친 장판교(長坂橋)의 영웅 장비처럼, 이미 우리 사회를 정치권력보다 더 좌지우지하는 자본권력과 마주보며 홀로 담대하게 싸우고 있다.


그날 나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85 크레인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압도적인 거대 자본권력과의 싸움 그 대치선 최전방에 와 있는 듯한 느낌에 온 몸으로 전율했다. 그 어떤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이 ‘먹튀자본’의 문제라는 것이다. 부산 지역사회와 노동자의 피땀으로 키운 기업을 더 큰 이윤의 텃밭을 찾아 ‘먹튀’하려는 한진중공업,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의 무차별적 공세 앞에 그녀의 싸움은 참으로 외롭게만 느껴진다. 한 여성을 상대로 온 나라 정치자본언론 권력이 똘똘 뭉쳐 무자비한 폭력 휘두르며 대드는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녀의 외로운 투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했듯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고 불러 모으고 있다. 무자비한 자본권력의 바벨탑 앞에 힘없이 쓰러졌던 죽음과 절망의 85호 크레인은 이제 희망과 부활의 솟대가 되고 있다. 그녀가 홀로 깃발 흔들던 외로운 섬 영도는 이제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 그 불씨를 일으키는 불쏘시개 섬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큰 싸움의 와중에 있다. 한진에서, 강정마을에서, 명동 마리에서, 유성과 발레오에서, 콜트콜텍과 재능교육에서, 대한민국 곳곳에선 거대권력과의 큰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더한 감동은 여기에 쌍용차와 현대차, 청소노동자들까지 함께 하는 연대의식으로 끈끈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쩌면 80대20의 사회를 지나 아예 90대10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이 빈익빈부익부의 양극화 사회 속에선, 사회의 대다수를 점하는 우리 모두가 오히려 소수자라는 의미를 지닌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한 가운데 그녀, 김진숙이 우뚝 서 있다! 그녀의 싸움은 신자유주의의 침탈로 인한 부당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죽어가는 대한민국 노동현장을 부활시키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부활의 빛은 움트고 있다.



나는 웃으며 투쟁하는 그녀가 한없이 좋다. 어떠한 상황에도 기죽지 않는 그녀가 참으로 좋다. 트위터로 유쾌하게 대화 나누고 맞은편 노숙자들과 하트 인사를 주고받고 심지어 전기가 끊긴 어둔 밤엔 손전등을 흔들어주며 인증샷을 날리는 그녀의 여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공권력과 사측 용역들이 교대로 펼치는 강제진압 시도가 이어지며 하루하루가 백척간두에 매달린 듯한 피 말리는 나날들에도 그녀에게서 순간순간 솟치는 이런 여유는 생명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믿음이 낳은 희망 때문이리라.


그렇게 우리 모두가 기죽지 않고 되살아나기를! 질긴 놈이 이긴다고, 우리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말기를! 기득권 수호에만 목숨 거는 탐욕스런 폭압 권력 앞에 억압 당하는 이들 모두가 연대의식으로 손에 손을 잡고 앞으로 한걸음 나서기를! 세 번째로 떠나는 ‘희망버스’는 그렇게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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