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교육재단 2025 교육 심포지엄
어른 없는 사회 : 불안의 시대, 어른다움의 길을 묻다
2025.10.17. 오후2시. 교보빌딩 23층 대산홀1
“어른 없는 사회 ― 불안의 시대, 어른다움의 길을 묻다”
― 2025 교육심포지엄 현장 이야기 ―
광화문 교보빌딩 / 주최: 교보교육재단 / 2025.10.172025년 10월 17일, 가을빛이 한창인 광화문 교보빌딩.
[1강] 엄성우 서울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
저는 오늘 ‘어른’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보통 ‘좋은 어른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묘하게 무겁습니다.
‘완성된 어른’처럼 들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어른 지망생 되세요.”
완성된 어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이는 그릇일 뿐, 가치가 아닙니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너 몇 살이야?”라는 말로 다투는 장면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이는 그릇일 뿐,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걸요.
세월이 흘렀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건 아닙니다.
감도 그냥 매달려 있다고 익지 않습니다.
햇빛, 비, 바람, 좋은 토양이 있어야 제대로 익죠.
사람도 그렇습니다.
시간만 지나선 안 됩니다.
경험과 성찰, 관계 속에서 ‘익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이란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익어가는 중인 사람, 곧 ‘어른 지망생’이라 생각합니다.
어른다움은 획일이 아니라, 나답게 조율하는 일
많은 분들이 “어른답게 살아야지”라고 말하지만,
그 ‘어른다움’이라는 게 뭘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른다움은 정답이 아니라 커스터마이징된 윤리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면 각자 다르게 설정하죠.
배경화면도 다르고, 앱도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삶의 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에서 조율해 가는 것.
그게 바로 어른다움입니다.
꼰대는 답을 강요하고, 어른은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첫 강의를 하던 날,
학생들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존댓말로 해야 할까, 반말로 해야 할까.
결국 이렇게 정했습니다.
“수업 시간엔 존댓말, 복도에선 반말로 하자.”
그때 느꼈어요.
어른은 답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요.
꼰대는 정답을 내리지만, 어른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돕는 사람.
그게 진짜 어른 아닐까요?
“좋은 어른은 떠먹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자유”를 외치지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쓸 자격이 있는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가 아닙니다.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자유의 완성입니다.
진짜 어른은 자기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편하자고 누군가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유는
결코 성숙한 자유가 아닙니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책임이 따르는 자유가 어른의 윤리입니다.
나는 점이 아니라, 화살표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흔히 “지금 나는 어디쯤 왔을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점이 아니라 화살표로 존재해야 합니다.
“어른은 완성된 점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고 익어가는 화살표입니다.”
저도 아직 완성된 어른은 아닙니다.
그저 조금씩 배우고, 실수하고, 성찰하며 익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어른 지망생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제게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2강]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요즘 사람들은 “꼰대”라는 말을 참 쉽게 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꼰대는 단지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진 사람입니다.”
관계와 이해가 사라진 자리에서 꼰대가 만들어집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고집 때문에 꼰대가 되는 거죠.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는 말이 가장 위험합니다
BBC가 ‘꼰대’를 설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An old person who always thinks he’s right.”
항상 자기가 옳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
저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꼰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태도,
그게 바로 꼰대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어른이 사라졌을까 ― 다섯 가지 이유
저는 이 시대의 ‘어른 부재’를 다섯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1) 수명은 길어졌지만 성숙은 늦어졌다.
60대가 청춘이라 하지만, 힘이 남아 내려놓지 못합니다.
(2) 경험의 권위가 사라졌다.
이젠 자식이 아버지에게 “그건 네이버에 다 있어요.”라고 합니다.
경험의 무게가 가벼워진 시대죠.
(3) 젊음을 질투하는 어른.
가장 미성숙한 어른은 젊은이를 시기하는 어른입니다.
(4) 죽음의 감각 상실.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면 양보와 겸허를 잃습니다.
(5) 관계의 붕괴.
혼자 사는 사회에서는 ‘어른’의 역할이 사라집니다.
관계가 있어야 어른이 태어납니다.
“무해한 어른”이라는 슬픈 칭찬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에게 바라는 건 존경이 아니라
‘무해함’입니다.
“그분은 무해해서 좋아요.”
참 슬픈 말이지만, 지금 시대의 정직한 표현입니다.
이제는 덕망보다 ‘피해만 주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칭찬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어른다움의 기준이 낮아진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나잇값이란, 권위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잇값 하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지,
“권위를 세워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의 어른 세대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세대입니다.
재산, 지위, 경험, 인맥…
그 힘을 움켜쥐는 대신, 나누고 물려주는 방향으로 써야 합니다.
그게 진짜 나잇값 아닐까요?
어른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른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 속에서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요즘은 ‘편의점 사회’라고 부릅니다.
거래는 많지만,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 세상에선 어른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비스듬한 관계’를 제안합니다.
부모처럼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친구처럼 너무 수평적이지도 않은 관계.
옆집 아저씨, 이모, 삼촌 같은 느슨한 연결.
거기서 진짜 어른다움이 자랍니다.
묻는 용기, 배우는 겸손
공자는 제사의 달인이었지만,
어느 마을에 가면 늘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요?”
제자가 물었죠. “선생님은 다 아시잖아요. 왜 물으세요?”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묻는 것이 예의다.”
저는 이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진짜 어른은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
그게 어른의 첫걸음입니다.
귀여운 어른, 순수를 잃지 않은 사람
달라이 라마를 보면 참 귀엽습니다.
세상을 다 겪었는데도, 눈웃음 속에 맑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어른이 저는 좋습니다.
“진짜 어른은 세상을 다 알아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마음을 잃지 않은 어른,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겁니다.
맺으며 ― “우리 모두는 어른 지망생입니다”
저(김찬호)와 엄성우 교수는 전혀 다른 길에서 왔습니다.
윤리학자와 사회학자.
그런데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익어가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듬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아직 미완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미완 속에서 서로 배우고,
함께 길을 묻는다면
‘어른 없는 사회’도 언젠가는
‘어른 지망생의 사회’로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
“어른다움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계속 익어가는 태도입니다.”
2025 교육심포지엄
주제: 어른 없는 사회 ― 불안의 시대, 어른다움의 길을 묻다
일시: 2025년 10월 17일
장소: 광화문 교보빌딩
주최: 교보교육재단교보교육재단이 주최한 2025 교육심포지엄의 주제는 도발적이었다.
https://m.blog.naver.com/leaders-academy-/22404480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