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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5일제가 생산성 높인다? 희망사항일 뿐”

by 정중규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 교수(학장)가 최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경제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여당이 추진 중인 주 4.5일 근무제와 관련해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과 계속 상승하는 임금을 감안하면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했다. /박성원 기자


“현재 정치권에서는 주 4.5일 근무제를 추진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통계를 살펴본 경제학자로서는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 교수(학장)는 최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주 4.5일제를 통해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과거 통계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사실이 아닌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완책 없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정수 교수는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주 4.5일제 도입 논리를 반박한 보고서 ‘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의 근거로 내세웠던 ‘경제는 성장하는데 임금은 정체돼 기업만 부자가 된다’는 보고서의 오류를 짚어내 진보 진영 경제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진행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기조를 전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교수는 “당시 경제학자로서 제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책이 집행되기 전에 경제학자로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 보고서를 썼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현재 여당은 한국의 근로 시간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긴 수준이므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기자 간담회 때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금융산업노조는 최근 주 4.5일 제 도입을 요구하며 총파업까지 벌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민주당)는 지난달 말 주 4.5일제를 시범 실시 중인 중소기업을 찾아 “생산성·워라밸(일과 삶의 조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상태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 노동생산성, 4.5일제 도입국 절반 수준


-여당은 한국의 근로 시간이 길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당한 논리 아닌가.


“근로시간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취업자 1인당 국내총생산)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간과한 반쪽짜리 논리다. 정부가 예시로 드는 주 4일제나 4.5일제 도입국은 벨기에·아이슬란드 등이지 않나. 한국의 1인당 연간 노동생산성은 벨기에·아이슬란드의 51% 수준이다. 시범 도입국인 프랑스·독일·영국과 비교하면 65% 수준으로 데이터가 있는 OECD 회원 32국 중 22위(2023년 기준)에 그친다. 연간 노동생산성이 낮은데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일하는 시간까지 줄이면 노동생산성은 더 떨어지고 안그래도 가라앉는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은가.


“여러 이유가 겹쳐 있다. 노동 생산성을 결정하는 변수가 ‘사람’의 능력과 노력만은 아니다. 일할 때 쓰는 도구, 예컨대 성능 좋은 첨단 기계나 장비를 갖추어 주면 적은 직원 수로도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업이 돈을 잘 벌어 이런 도구에 투자하는 것을 보통 투자로 인한 ‘자본 축적’이라고 한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돈을 번 다음 좋은 배를 사서 새 낚싯대 100개를 걸어 놓으면 생산성이 높아져 같은 수의 어부로도 고기가 더 많이 잡힌다. 이쯤 되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도 생산성이 유지된다. 그러나 번 돈을 흥청망청 다 써 버리면 생산성은 올라가지 못한다. 한국은 여전히 더 벌어서 ‘좋은 배’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다. ‘근사한 배’를 가진 격인 대기업들이 우리 눈에 띄지만, 사실 대다수 일자리가 몰려 있는 작은 기업들은 여전히 ‘작은 통통배’를 운영해 생산성이 낮은 편이다.”


-한국은 축적된 자본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인가.


“과거보다는 좋아졌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선진국과의 생산성 격차를 보라.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한국의 제조 대기업은 노동생산성이 높을지 몰라도 고용이 몰려 있는 비제조·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해 생기는 문제다. 그런데 한국 고용의 70% 이상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이 중 대부분은 50인 미만의 영세 소기업이다.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계속 끌어올려야 전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데 투자할 여건이 안 되는 수익성 낮은 기업이 너무 많다. 이 같은 낮은 성장성과 수익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주 4.5일제를 도입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예상된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감당하기 매우 힘든 일이고, 때문에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생산성 증가율은 둔화, 임금 상승은 가속되는 ‘이상한 한국’


-일을 좀 덜 하면 효율성이 개선돼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주 4.5일제 도입과 관련해 ‘워라밸과 생산성 향상’을 모두 달성 가능하다는 여당 측의 반복되는 주장을 듣고 나도 궁금해져, 최근 통계를 살펴보았다. 최근 20여 년간 한국의 근로시간은 계속 줄어왔기 때문에 생산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근로시간이 크게 감소한 적은 두 차례 있었다. 2004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주 5.5일 근무를 5일로 바꾸었고, 2018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 두 경우 모두 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점차 둔화된 것이 보였다. 그런데 두 시점의 차이도 나타났다.”


-무엇이 달랐나.


“2000년대 초 5일제 도입 때는 연간 노동생산성의 증가율이 하락한 것과 동시에 비슷한 속도로 임금 상승률이 둔화됐다. 다소 덜 일한 만큼 비교적 덜 받아간 셈이니 기업 입장에선 감당이 가능했다. 심각한 문제는 두 번째 시기 이후 발생했다. 생산성 증가율은 눈에 띄게 내려갔지만 임금은 이와 무관하게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박 교수가 한국은행·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을 이전까지(2010~2017년) 연평균 0.8% 정도였던 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실질 기준)은 2018년 이후 0.3%로 내려갔다. 이는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3%에서 1.4%로 하락한 동시에 근로 시간이 각각 1.5%, 1.1%씩 줄어들면서 생긴 일이다. 생산성이 둔화되는 동안 임금 상승률은 오히려 연평균 1.6%에서 2.6%로 올라갔다. ‘덜 일하고 더 받아가는 사회’가 된 것이다.


기성세대 근로자에게 단기적으로 좋을지는 몰라도 기업 경쟁력과 수익성이 낮아지고 결국 국가 성장률이 둔화돼 미래 세대엔 치명적이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 부담까지 가중돼 있다. 박 교수는 “이런 가운데 주 4.5일제까지 도입하는 것은 통통배로 물고기 잡아 번 돈을 다 써버리는 셈”이라며 “나의 미래 임금뿐 아니라 지금 청년층 임금에 타격을 주는 일로, 미래를 당겨 써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덜 일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이라도 좋아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줄어든 이유는 뭔가.


“이번에 분석하면서 이런 괴리를 처음 알게 됐다. 매우 놀랐다. 일단 생산성 부분부터 보면, 주당 일하는 시간이 감소하니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같을 경우 ‘연간 노동생산성’은 자연스럽게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놀란 부분은 비슷한 시기에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조차도 하락했다는 점이다. 고령화 요인 등을 추후에 추가로 면밀히 분석해 봐야 정확한 이유가 드러나겠지만 2018년 시행된 법정 근로시간 규제의 경직성이 오히려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낮췄을 가능성이 있다.”


-임금 상승률은 왜 높아졌나.


“일단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랐다. 당시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20%를 넘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통상임금 확대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는 한국의 임금·인구 구조다. 한국은 여전히 호봉제가 많은데 호봉제에선 고령화에 따라 임금이 따라 올라가게 된다. 현재 추세대로 생산성은 덜 개선되면서 임금 상승률은 반대로 올라가는 경영 환경이라면, 살아남는 기업은 얼마나 될까. 일시적으로 그럴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는 불가능하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9·26 총파업 결단식에서 실질임금 인상과 주 4.5일제 근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자리 나누기? 0.5일분 임금은 누가 대나”


-이런 상태로 주 4.5일제를 시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금 이 상태 그대로라면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만큼 연간 노동생산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이를 상쇄할 만큼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최근 통계에서 확인되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모자라는 주 0.5일만큼의 임금을 추가 근무 수당으로 더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자라는 노동력을 충당하려 비정규직을 추가 채용해도 인건비가 더 투입되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부담을 대기업은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소기업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에선 주 4.5일제의 순기능이라고 ‘일자리 나누기’를 이야기하는데 1인당 0.5일분의 추가 인력을 감당할 돈은 어디서 나오나. 기존 직원의 월급을 깎을 수 있나. 단순히 생각해도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다.”


-한국에서 주 4.5일제를 도입할 방법은 없는 건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더 효율적으로 일해서 그 전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현재의 제도와 문화적 환경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철저한 성과 연동제를 실시해서 생산성과 임금을 연동시킨다면 괴리가 사라질지 모른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직원들이 고연차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임금을 가져가는 데 불만을 가진 20·30대 중에는 성과 연동제를 원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노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에서 진정한 성과 연동제 도입이 쉽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기업이 투자를 늘려 기술 혁신과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것인데, 앞서 설명했듯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만약 주 4.5일제 도입으로 인건비를 더 써야 한다면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인해 이 해법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


한국 기업의 자본 축적이 여전히 낮다는 사실은 OECD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비교 가능한 27국 가운데 한국의 자본 집약도(고용 1인당 자본)는 24만달러로 19위이며 미국의 47%, 주 4일제를 도입한 아이슬란드·벨기에의 46·64% 수준이다. 박 교수는 “주 4.5일제가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워라밸’이나 일자리 나누기가 된다고 막연히 기대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하자는 이야기”라며 “한번 도입하면 되돌아갈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의 자본 집약도는 왜 이렇게 낮은가.


“자본이 축적되려면 번 돈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크면 기업이 투자를 제대로 못 한다. 최근 10년을 보면 법인세나 투자 세액공제 등 세금 정책도 계속 뒤집히고 노동시장 규제의 강도와 불확실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압박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기업 입장에선 주 4.5일제를 받아들이기에 여건이 너무 안 좋은 타이밍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결국 청년층과 미래 세대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주 4.5일제 도입을 하지 않아도 이미 한국은 노동생산성과 성장률이 둔화된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다. 지금 이 추세라면 20~30년 안에 미래 세대의 소득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세대별, 산업별, 기업 규모별 영향이 모두 다르기에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철저히 분석을 해 봐야만 한다. 특히 젊은 세대와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한국은 너무 빠른 발전 속도로 인해 세대 간 생각의 격차가 너무 커졌다. 지금의 실태는 과거의 경제 구조와 이념적 기억에 젖어 있는 세대가 ‘선진국 세대’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을 정책 수립 과정에 지금보다 훨씬 많이 참여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생산성이 개선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덜 일해도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AI가 인간의 업무를 많이 줄여주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아직은 통계로 입증된 바 없고 부분적인 사례만 있다. AI의 효과는 거시경제적으로 입증되기가 쉽지 않다. 직종·직업별로 적용 범위가 너무 다르고 효용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AI가 지금 모두가 예상하는 효용을 발휘하는 때가 오면 근로시간 단축은 이슈가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대량 실업과 일자리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일자리 자체를 어떻게 지켜낼지를 고민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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