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을 향한 민심의 옐로카드 아니 레드카드, 사실상의 탄핵이었다는 4.7 재보궐선거도 끝났다. 투표일 그날 민심을 읽어보려고 여의도 투표소들을 둘러봤는데, 주민들이 끊임없이 투표소로 발길을 옮기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 특히 청년들이 많이 보여 감동이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하루 종일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단호한 눈빛은 거의 혁명전야 분위기였다.
예상을 초월하는 투표혁명 앞에서 거대 양당 모두 각기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은 모습인데, 곧장 이어질 대선정국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압승한 국민의힘이나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이나 공교롭게도 양당 똑같이 56명의 초선 국회의원들이 혁신을 외치며 단체행동에 나선 모습은 일단 정치혁신 차원에서는 고무적으로 보인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선거 참패를 딛고 당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선언적 차원일지라도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압승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선 국민의힘의 초선의원들의 “승리에 취하지 않고 당을 개혁에 나서겠다”는 기자회견은 신선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국정 쇄신의 동력을 잃고 내치는 더욱 위기로 내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내치에서의 위기가 신냉전시대라 표현되는 미국와 중국의 갈등 속에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능력 곧 외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과는 ‘북한 비핵화’, 중국과는 ‘한반도 비핵화’를 외친 등거리 외교
지난 4월초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시각에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대북정책을 주요 의제로 대미·대중 외교회담이 외교사에선 드물게 동시에 열렸다. 미국 메릴랜드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바이든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미일 안보수장회의를 열렸고,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는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열었다.
문제는 이 두 곳에서 밝힌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 관련 메시지가 달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 외교의 기조를 ‘안보는 미국, 경제 중국’ 곧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 표현하는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 나름 등거리 외교를 펼쳐야 하는 곤혹지경은 이해하지만, 사실 왜곡은 안 될 것이다.
바이든은 ‘북한 비핵화’를, 시진핑은 ‘한반도 비핵화’를 각기 주장하는데, 회담 후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미국과 중국이 비핵화에 의견 일치했다”고 했었다. 그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따라 불렀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따라 불렀다. 거기에다 앞의 외교부 고위당직자는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보다 항구적 평화정착에 대해 모든 관계국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혀 문재인 정권이 바이든의 ‘북한 비핵화’보다 시진핑의 ‘한반도 비핵화’에 보다 더 의중이 있음을 드러냈다.
‘한반도 비핵화’(북한식으론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집안 특유의 용어로,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핑계로 삼고 있는 시간벌기용 용어혼란 전술의 성격이 짙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 3조 ④항에서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두고서도 남과 북이 각기 달리 해석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정은은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 용어를 ‘북한 비핵화’로 자의적으로 해석해 마치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지닌 것처럼 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김일성 시대부터 주장해온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 한반도”를 상정한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론’의 연장선에서 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의 남북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을 보는 순간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최근 들어 바이든 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1993년 당시 클린턴 정부 때부터 트럼프 정부에까지 써왔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 대신 ‘북한 비핵화’를 끄집어 낸 것은 향후 북미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이런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북한이 내세우는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과 전술핵(NCND로 얼버무리고 있는) 확장억제, 주한미군 등에 대한 철수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명분으로 주한미군 철수나 핵우산 철회를 요구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사실 같은 ‘비핵화’라는 용어를 북한은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 남한은 북한 비핵화,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FFVD)로 남·북·미가 각기 달리 해석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 상태로 이것이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2018년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북한은 “6·12 조·미 공동성명에는 분명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명시돼 있지 ‘북 비핵화’라는 문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미국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어물쩍 간판을 바꿔놓음으로써 세인의 시각에 착각을 일으켰다.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다”라고 주장하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
결국 김정은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흔들면서, 그를 핑계 삼아 핵보유국 과정을 밟아나갔던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야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더 큰 정치적 성과물을 거두기 위해 넘어갔다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어찌하여 그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국내외적으로 수없이 강변한 것인가. 익히 알면서 그리했다면 지난 2018년 남북의 ‘평화 퍼포먼스’ 흐름 속에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한 것이 된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김정은의 기만적 용어혼란 전술에 휘말리지 않고 북미협상에서 실질적인 비핵화 성과를 거두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의용 외무부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는 발언을 거듭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에게 ‘북한 비핵화’를 추진할 의사가 과연 있는가 하는 오해를 부를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미국이 바라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미 실현 불가능한 요구라고 보는 입장이다. 궁극적으로는 결국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SVID(suffici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충분한 비핵화) 수준에서 북미합의가 이뤄지리라고 예상하고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등거리 외교의 곤혹지경을 회피하기 위해, ‘여기에선 이 말하고 저기에선 저 말하는’ 이런 식의 언어유희는 오히려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추궁 당하는 곤혹지경을 부를 위험성도 없지 않는 것이다.
퇴임 1년 남짓 정권은 레임덕을 어떻게 견디어내는가
열강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늘상 패권세력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 현실에서 굳이 고려 시대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의 담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정부의 외교 역량은 대한민국의 미래, 더 나아가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결정적 요인이다. 멀리는 1세기 전 조선의 국권상실 역사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외교는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펼쳐져야 할 것이다.
내치와 외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번 선거로 더욱 가시화 되었지만, 퇴임을 1년 남짓 남기고서 레임덕이 이미 본격화 되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내치는 물론 특히 외치에서 초당적인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파 초월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건의했는데,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치른 선거가 ‘정권심판’으로 치닫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1년 전만해도 집권여당에게 180석이란 압승을 안겨줬던 민심의 극적인 대반전이라 충격파가 더욱 컸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곧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대통령과 정권이 잘못하면 5년 내에 두 번씩이라도 권력을 탄핵지경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모든 권력은 민심을 두려워하고 더욱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