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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Jul 27. 2023

이태원 참사의 제2의 세월호 만들기는 실패했다/정중규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청구 기각 결정의 의미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해 국회에서 청구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9인 전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9인의 재판관 전원이 기각 판단했다.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이 지난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청구 사건 선고에서 이같이 주문을 낭독했다.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이상민 장관에게 “중대한” 법률·헌법 위반은 없었다는 결론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72쪽 분량의 결정문에서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재난 및 안전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 재난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참사의 예방 및 대비, 사후 대응 과정에서의 미흡함을 반성해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의 쟁점인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 대응 △사후 발언 등을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던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런 결론은 이태원 참사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라는 전제, 곧 △재난안전법령상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 및 매뉴얼의 명확한 근거 규정이 애초에 마련되지 않았고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했으며 △재난상황에서의 행동 요령 등에 관한 충분한 홍보·교육·안내가 부족하였던 점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에, 이 장관에게 그 책임을 오롯이 묻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에, 국회가 지난 2월 8일 이 장관 탄핵안을 의결한 때로부터는 167일 만에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이른바 탄핵정국은 마무리되었다.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이 장관은 즉시 업무에 복귀했다.


그와 함께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 때처럼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가려 했던 민주당을 비롯한 반윤석열 세력의 정치적 시도 역시 좌절되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향해 단순한 정치 도의적 책임을 넘어 사법적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로 민주당·정의당 등 야권 국회의원 173명 가결한 탄핵소추는 애초에 무리수였다. 특히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앞장서서 강행한 것이 이재명 대표의 검찰 출두 등 민주당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국민의 비난, 그 화살을 피하고자 의도였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은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159명이나 희생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슴 아픈 일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핼러윈(Halloween) 축제를 즐기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이태원세계음식거리의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으로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긴급뉴스가 타전하자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다. 그것은 곧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민주당을 비롯한 반윤석열 세력이 곧장 정쟁화시켜 제2의 세월호로 만들려 두 참사를 하나로 묶으려 했던 것은 그것이 ‘반윤석열 세력의 호메이니옹’이라는 이해찬의 정무적 판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참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과 무엇보다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판단 착오였다.


우선 세월호 참사는 그 희생 학생들에겐 그 사고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물을 수도, 잘못을 지울 수 없는, 전적으로 외부 요인에 의한 참사이기에 진영과 정파를 떠나 전 국민적 애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상식을 지닌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참사는 비록 2030 젊은 세대이지만 다 큰 성인들이 그런 축제의 장에 몰려가 자율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못해 벌어진 사고인데 그 사고의 모든 책임을 윤석열 대통령 정부에게만 전적으로 돌리려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헌재에서 “이태원 사고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라는 것을 전원 일치 기각 판결의 전제로 내세운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사고 원인과 진상이 하나둘 차츰 밝혀지면서 ‘이태원의 제2의 세월호’를 획책하려는 민주당을 비롯한 반윤석열 세력의 주장은 격렬하고 집요한 대국민 호소작업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얻지 못하고 갈수록 그 설득력을 잃어갔다.


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반윤석열 세력은 그것을 처음부터 적대적 진영정치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와 정치적 이슈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거리로까지 삼으려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도 윤석열 탄핵일 것이라고 국민 모두가 의구심을 지닐 정도였다. 그러하니 국민 모두가 가슴 아파하며 슬퍼하며 동참할 전 국민적 애도와 사회적 합의는 애초에 기대난망 불가능했던 것이다.


매 주말마다 세종로에서 윤석열 탄핵 집회를 여는 등 그 불씨를 지피려 했지만, 대중적 민심과 여론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국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키면서 민주당을 비롯한 반윤석열 세력이 꾀했던 정치적 목적마저 이루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2022년 11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재난·산재 참사 피해단체,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원들이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시민사회가 함께 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 점 몹시도 안타까웠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민주당-민주노총-민변-전교조 같은 특정 정파 세력에 몸을 싣지 않고, 민심의 바다로 나가 일반대중에 심정적으로 호소했더라면, 전 국민의 애도 속에 공감을 얻으며 오히려 ‘바람직한’ 해결의 길도 찾아졌을 것인 까닭이다. 이태원 문제가 적대적 진영정치 한가운데에서 정파적인 성격을 띠면서 국민 전체가 유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내내 안타까운 측면이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어느 곶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 혹은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니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저 조종(弔鐘)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조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존 던(John Donne)의 그 유명한 시처럼 젊은이들의 죽음은 그 어느 죽음보다 우리 사회 미래의 상실 곧 대한민국이라는 큰 땅덩어리의 한 조각이 사라지는 것이기에 어느 특정 정파나 세력이 아닌 온 국민의 아픔이요 슬픔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태원에서의 젊은이들의 죽음이 적대적 진영정치 한 가운데에서 정파적 문제로 변질되어버린 현실이 내내 가슴 아픈 이유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의회 폭주와 습관적 탄핵병’으로 조롱받는 민주당의 정치행태를 비롯해 적대적 진영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소추 사태에서도 역시 드러난 것은 대한민국 정치권의 정치 실종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탄핵 소추제조차 적대적 진영정치 그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상황에서 타협과 합의에 의한 민주주의 정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실의 “이번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반헌법적 행태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비판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이유다.


국민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대결 정치를 늘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정치 자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탄핵 기각 사태를 이런 극단의 대결정치를 지양하고 여야 정치권이 정치의 본령을 되찾는 성숙의 계기로 삼아 다가올 총선을 온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태원 참사의 제2의 세월호 만들기는 실패했다 | 더프리덤타임즈 (thefreedomtime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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