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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Aug 29. 2023

반도체 공장의 세계적 재편…엔지니어들도 따라서 이동?

권석준 칼럼

[권석준 칼럼] 반도체 공장의 세계적 재편… 엔지니어들도 따라서 이동?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미국과 일본, 유럽에 새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그런데 공장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동 인력의 채용과 훈련, 임금 체계와 조직 문화가 아시아권과 사뭇 다른 나라들이다. TSMC가 그간 성장해 온 방식은 해외에서도 통용될 것인가? 미국 팹의 미국인 엔지니어들이 대만인 엔지니어들처럼 3교대·365일·24시간 근무를 할 준비가 되었을까. 자국 소비 시장은 좁고 수출 시장은 넓은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대만과 달리 자동차, 가전 등에서 현지 공장 운영의 노하우가 있다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권석준 필자의 글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이 미국 현지 공장으로 많이 진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졸자를 포함해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새로운 해외 취업 시장이 대폭 열리는 것이다. [편집자 주]


✔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 대만의 정책 변화 강요해

✔ 노하우 지키고 일정 맞출 수 있는 숙련 엔지니어 필수

✔ 미국에서 3교대·365일·24시간 근무? 문화 차이 있어

✔ 비슷한 문제 겪을 수도… 미국 팹 비중 당분간 높아

✔ 현지 팹 운영, 본국 수준으로 이어가야 살아남을 것

대만의 ‘실리콘 방패’, 유효성 잃어간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반도체 산업은 대만에게 자국 안보의 인계철선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할 것이라 예측하는 시각은 지금과는 달리 많지 않았다. 무력에 대응하는 수단이 아닌, 국가적 존재감과 국제 무대에서의 관계를 위해 대만이 꺼내 들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반도체 산업이었다. 즉, 반도체 산업은 정상적인 국가와 제대로 된 외교 관계를 맺기 어려웠던 대만 입장에서 글로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국으로 하여금 함부로 무력 행동에 돌입하는 것을 자제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대만 정부 입장에서는 TSMC 같은 대기업들의 R&D 센터는 물론, 팹(생산 공장)의 탈(脫)대만을 허용하지 않는 정책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만의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 정책은 그 유효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반도체 굴기 정책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하고,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 및 무역 견제 분위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2020년대 들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과 역학 구도가 급변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산업 밸류체인이 지난 30여 년간 유지해 온 국제 분업 체제에서 핵심 이익 공유 그룹의 형성으로 재편되며 대만의 정책 변화를 강요한다.


특히 미국의 이른바 칩스(Chips)법이라 불리는 반도체법이 2022년부터 발효되고, 아베 2기 이후의 일본 정부가 자국의 쇠락한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해외 반도체 업체에 문호를 개방하는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2023년 초부터 GBER(General Block Exemption Regulation, 일괄적용 면제규정)을 강화하면서 역내 첨단 산업 보호 및 해외 첨단 산업체 대상의 유럽 투자 활성화 산업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와 TSMC는 더 이상 이러한 폐쇄 정책이 유효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로 들어오면서 TSMC는 일본(구마모토 소니 공장), 미국(애리조나주 피닉스 팹), 그리고 EU(독일 드레스덴 팹) 등으로 브랜치를 넓히고 있다.


당초 TSMC는 기업의 전략상, 첨단공장은 대만에 남기고, 해외 진출은 초기 단계에서는 대개 생산 용량과 기술 세대 면에서 한두 단계씩 다운그레이드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대만 자체의 역량과 경쟁력을 보존하고자 하였다(이를 ‘mother-child 팹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강력한 요구(미국 현지 파운드리 팹에서의 웨이퍼 증산과 기술 세대 업그레이드)로 인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팹(Fab 21)은 5나노 이하급(테크노드 기준 3~4나노급) 첨단 파운드리 방향으로 용량 증산과 함께 원래 계획의 두 배 이상(시간이 지체될수록 더 증가할 것이다)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일본의 구마모토 팹(Fab 23) 역시 테크노드 12~28나노급 공정을 기반으로 원래 계획했던 이미지 센서 생산에서, 전력 반도체와 자율주행차용 칩 생산으로까지 생산 품목이 확대되었다. 유럽 진출 역시 단순히 자동차용 MCU 정도의 저부가가치 칩 생산에서, EU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아예 ESMC라는 새로운 파운드리 자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방향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기존의 성공 방식, 해외에서도 먹힐까?


다만 TSMC 입장에서 고민이 되는 부분은 그간 경쟁력을 키워 온 방법이 해외에서도 똑같이 먹힐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TSMC가 현재 운용하고 있는 팹은 14개 정도다. 그중 9개는 여전히 대만에 있으며 이 9개의 팹이 TSMC의 스탠다드 팹이다. TSMC는 대만 현지의 이 스탠다드 팹을 교본으로 삼아 해외에 신설하는 팹을 운용하고자 계획했다. 그렇지만 첨단 산업이라 불리는 반도체 산업도, 결국 인력 활용의 현지화와 현지 국가의 법과의 합치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팹 건설이 그렇다. 반도체 공장 건설은 일반적인 제조업 공장 건설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건물을 짓고 올리는 것이야 다른 공장과 큰 차이가 없으나, 문제는 그렇게 올린 건물 안에 설치되어야 하는 클린룸, 그리고 그 클린룸을 유지하기 위한 항온항습 정밀 공조 장비, 그리고 그 클린룸 안에 설치되어야 하는 온갖 고가의 첨단 장비 등의 안정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비용과 시간,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다.


TSMC의 계획은 대만의 신주, 타이난 등에 건설하고 있는 팹과 마찬가지로, 해외의 팹에도 TSMC의 고숙련 엔지니어들을 파견해 자신들의 팹 건설 및 안정화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클린룸 기초 공사가 끝나면 한 기에 수십억에서 수백억 정도 하는 반도체 제조 장비의 설치 및 안정화를 담당하는 경력 10년 이상의 중진급 혹은 박사급 엔지니어들이다. 보통 라인 하나에 1,000-1,500대 정도의 장비가 들어가는데 (종류는 그보다는 적지만), 클린룸에 장비 설치하는 것은 단순 노동자가 아닌, 숙련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일부 장비 엔지니어는 장비 회사의 엔지니어가 직접 파견되어 같이 작업하게 되지만(예를 들어 미국의 Applied Mater.나 Lam Research, 네덜란드의 ASML 등), 실제 TSMC가 설계하는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최적화하고, 웨이퍼의 가공 공정 및 이동 경로에 맞게 전력 공급과 타임 테이블을 안정화하는 작업에는 경험이 충분히 쌓인 TSMC 본사 엔지니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미국 피닉스 팹에 대한 TSMC의 계획 중에는 미국의 반도체법의 지원(참고로, 미 반도체법은 미국 내에서의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고용 인력 창출에 대한 임금 보조도 포함한다)을 최대로 받기 위해, 미국에서 직접 이러한 엔지니어들을 채용하고 대만에서 훈련시킨 다음 다시 피닉스 팹으로 투입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모집할 수 있는 인력의 규모와 수준에는 한계가 있었고, 심지어 일부 인력은 인텔이나 글로벌 파운드리 등 미국의 반도체 제조 회사에서 파견한 것 같은(즉, 산업 스파이성) 상황도 감지된 지라, 결국 TSMC 본사에서 이에 대응하기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사실 비슷한 사례가 과거 TSMC 중국 난징 팹(Fab 16)과 상하이 팹(Fab 10) 설립 과정에서도 있었는데, 특히 TSMC가 난징에 팹을 만들 때가 유독 심했다. TSMC는 중국 현지 팹의 안정화를 위해 가급적 중국 현지 엔지니어들을 대거 채용하여 그들을 설비 엔지니어 겸 운용 전문가로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현지 인력이 그렇게 훈련받은 후 TSMC에 남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인 SMIC 등으로 전직해 버린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어떤 책임급 엔지니어는 자신의 팀원 전부를 데리고 한꺼번에 이직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TSMC는 기업의 공정 노하우를 지키고, 공정 일정을 맞추기 위해 200명의 엔지니어를 본사에서 파견했다(그렇지만 이 중 상당수가 다시 SMIC 등 중국의 반도체 회사로 스카우트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휴일에도, 야간에도, 폭풍에도 돌아가는 반도체 공장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자본을 투자하여 신규 팹을 만들려는 TSMC 입장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래 2024년까지 완공하여 초기 생산을 위한 일련의 준비과정(tape out)을 마치고 테스트하려던 계획이, 원안대로 미국 현지 엔지니어를 채용할 경우, 엔지니어 수준 향상을 위해 적어도 1년 이상 연기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또한 바이든 정권에서 보장된 반도체법의 혜택이 유효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본사의 인력을 급히 파견하는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TSMC의 이러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TSMC의 투자가 현지에서의 인력 고용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미국 노동자 단체 입장에서는 TSMC가 오히려 본사 인력을 대량으로 파견한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만큼 일자리를 뺏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일자리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엔지니어들이 대만에서 파견되는 인력들이 받는 임금 수준에 만족할지 의문이고(사실 TSMC 본사 엔지니어들의 임금은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굉장히 짠 수준이다), 그 정도 숙련도를 갖추기 위해 TSMC가 운용하는 타이트한 교육 프로그램을 소화할지도 의문이며, 무엇보다도 대만 엔지니어들처럼 불만 없이 3교대 근무하면서 휴일도 없이 365일 24시간 체제에 적어도 2년 이상 집중적으로 근무할 준비가 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마 TSMC가 본사에서 엔지니어를 200명 이상 장기 파견한 결정의 이면에는 이러한 근무 문화 차이도 분명 고려했을 것이다. 반도체 공장의 일정 관리는 휴일인지, 야간인지, 폭풍이 오는지와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과거 1970~1990년대 일본 기업들이나, 2000~2010년대의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여 제조 공장을 세우고 초기화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혼다(1972년), 닛산(1983년) 등 일찍부터 미국에 진출했으며, 이후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정밀 기계, 전자, 그리고 반도체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1990년대에는 미국 현지에 일본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 1,500곳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이질적 기업 문화와 조직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들로 인해 본사에서 대량의 인력을 파견하는 일이 빈번했고, 현지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해외 진출을 막 시작하는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도 결국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이나 일본 기업들이 겪었던 자동차 공장이나 배터리 공장 설립과 운영은 숙련된 엔지니어들의 수요가 반도체 공장만큼 초기에 많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현지 인력의 교육이 조금이나마 더 수월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숙련된 엔지니어의 다수 확보가 팹 신설 및 안정화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TSMC, 새로운 전략 마련해야


한국이나 일본은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어쨌든 해외 생산 기지를 운용하는 노하우가 쌓였고, 현지 인력을 활용하여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묘가 쌓였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 올인하다시피 한 대만은 그간의 폐쇄적인 기업 문화와 일천한 해외 진출 경험으로 꽤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TSMC가 가진 해외 진출 경험은 같은 중화권이자 임금이 훨씬 낮았던 중국 본토 팹 건설과 운용밖에 없으며(그나마 그 당시에는 중국 정부가 TSMC에 대한 지원책을 음으로 양으로 아끼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평균 임금 수준이 높은 일본, 노동자 권리 보호가 훨씬 강한 미국과 독일 등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전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팹은 예정대로 2024년에 테이프아웃을 못 할 가능성이 높으며, 공정이 연기되는 것과 별개로, 예상보다 더 생산 비용이 높아지는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미국 반도체법의 지원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피닉스 팹이 TSMC 전체 팹의 생산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내일 것이므로 팹의 가동이 늦어짐에 따라 생기는 영향이 TSMC 전체적으로 큰 타격을 줄 수는 없겠지만, 점차 미국 현지 팹의 비중이 높아져야 하는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TSMC 입장에서는 새로운 전략의 마련을 요구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은 TSMC의 피닉스 팹의 캐파 증산과 기술 세대 최신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TSMC 파운드리 전체에서는 비중이 작더라도, 5나노 이하급 파운드리에서는 1/3에 육박하는 규모가 될 수도 있다. 이는 TSMC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시스템 파운드리 분야에서의 비용 절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TSMC보다는 사정이 낫다고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중국 현지(시안, 우시, 다렌 등)에 운영 중인 팹에서 생산 품목을 전환하거나 기술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중국 현지보다 더 생산 단가와 노동자 임금이 높고 기업 문화가 이질적인 미국(주로 텍사스 팹), 그리고 향후 EU(독일이나 폴란드 등) 등으로 추가 진출할 경우, 정도는 달라도 비슷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한국은 해외 팹의 비중이 시간이 지날수록 현저하게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 남부권을 필두로 하는 국내 메가 팹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메가 팹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까지는 당분간(적어도 2030년대)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 팹의 비중은 당분간 꽤 높아질 것이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법이 2027년 이후에도 계속 갱신될 경우(원래의 유효 기간은 2027년까지), 미국 팹에 대한 투자는 원래 계획보다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밸런싱 게임, 기관들의 대응 전략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재편은 필히 ‘자국의 반도체 산업 보호’와 ‘해외로의 진출’이라는 밸런싱 게임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에는 이 게임의 무게추가 주로 경제성 판단에 치중되었다면, 이제는 국가 간 외교·안보 이슈, 그리고 해외 진출한 현지에서의 비용 및 품질 관리 이슈로 무게가 배분되어야 한다. 경제적 이슈만 관리하면 되던 공간에 외교·안보와 국내외 정치 변수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각국은 첨단 산업 정책을 자국 국익 보호, 이를 위한 역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그리고 안보적 관점에서의 첨단 기술 산업 및 공급망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각국의 산업 정책이 대부분의 첨단 산업 영역에서 첨예하게 부딪히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단순히 경제적 이익에 대한 판단을 넘어, 다방면으로 입체화된 이슈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동시에 공을 여러 개 굴려야 하는(저글링) 상황은 도래했다. 대만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첨단 산업을 주도할 기관들의 대응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글로벌 시장 자체뿐만 아니라, 그 시장의 합종연횡과 각국, 혹은 각 역내에서의 외교 안보 및 산업 정책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추적하고 전략적 포석을 미리 깔아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사의 인력을 무한정 파견하여 대응하는 것은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진출하고자 하는 지역의 현지 인력을 자체적으로 교육하고 회사의 숙련된 엔지니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포석 중 하나가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을 벗어나 동남아 지역에서 팹을 만들 경우 베트남이 유력한 후보로 고려되는데, 이는 베트남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이 높고, 숙련화 기반이 닦일 수 있다는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포석은 현지의 R&D 센터 운영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들을 배출할 수 있는 트레이닝 센터의 운영도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현지 인력의 교육과 숙련화는 반드시 현지에서 진행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한국에서 제대로 트레이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할 것이다. 관건은 해외의 인력을 해외 현지 팹에 투입할 경우, 본국의 엔지니어에 준하는 관리와 퀄리티를 위한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의 확장과 다변화는 단순히 자본의 조성과 이동만으로 커버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단계부터는 인력의 이슈가 반드시 생기며, 한국이나 대만 같이 자국 시장이 좁은 국가에서는 자국의 인력만으로 이를 모두 커버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첨단 산업, 특히 글로벌화가 재편되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개방성과 내밀함을 동시에 다루면서 사업의 영역을 넓히고 안정화할 수 있는, 그리고 현지에서의 팹 운영을 본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관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안목을 필요로 하며 입체적인 전략 분석과 입안을 요구한다.


글쓴이 권석준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최근에 한·중·일 반도체 산업에 관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출간했다.


㈜ 메디치미디어|제호: 피렌체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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