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제 글 원문에서 전두환 군부 쿠데타 관련 부분이 부담이 되었던지 삭제(80년 그 때 내 기억 소환한, '아들의 이름으로' / 정중규 http://omn.kr/1te2d )해 게재하자고 해서 허락했는데..아래에 원문을 올립니다.
5·18주간이 정치권 전체를 열병 앓게 하며 지나갔다. 올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5·18 발언까지 나와 여야공방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그가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어떤 형태이든 독재와 전제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 말하자 그것이 문재인 정권 겨냥한 것으로 본 여권 전체가 벌집을 쑤신 듯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윤석열 때리기’에 나섰다. 윤석열은 역사와 국민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정세균), 윤석열은 민주주의 종목엔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UFC 선수로 뛰라(정청래), 윤석열은 5·18 정신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김남국), 윤석열에게서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김의겸)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거기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겠다”하자, 얼마 전 민주당의 ‘민주유공자예우법’ 발의에 항의해 유공자 지위를 반납한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천박한 돈으로 하는 모리배 정치”라고 거세게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올해도 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마당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40+1주년 서울기념식’에 참석했는데, 올해는 ‘오월, 시대와 눈 맞추다. 시대와 발맞추다. 미얀마 민주화와 함께’라는 타이틀대로 미얀마 민중항거와 함께 했다는데 더욱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5‧18주간의 대단원 막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가 현실에서 재현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당시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영화에서처럼 양심고백을 하고 사과를 하고서 유족과 손을 맞잡았던 것이다.
5·18주간 정치권의 난타전,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디?
사실 매년 5‧18주간만 되면 정치권에서 난타전 벌이는데, 막상 그 피해자와 가해자는 보이지 않고 제3자들만 나서 논란 벌이는 꼴이었다. 바로 그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문제를 다룬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관람한 이유였다. 영화 줄거리는, 5·18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에 나섰다 고등학생을 사살하고 무등산 골짜기에 암매장했던 공수부대원 오채근(안성기). 40년이 지났지만 ‘살인의 기억’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특히 아들의 채근에도 양심고백을 미루다 아들이 사고로 죽고 나서야, 그 ‘아들의 이름으로’ 나서, 암매장했던 유골을 찾아내고, TV방송으로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다. 대리기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오채근은 단골 기사식당에 만난 5·18 피해자(윤유선) 가족들의 아픔을 보면서 자신이 대신 복수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5·18 학살의 수괴였지만 반성할 줄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전두환 ‘각하’와 그를 추종하는 박기준(박근형) 등 예비역 장성들의 만찬 자리를 찾아가 총격을 가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5·18 진압 계엄군을 다룬 영화를 보며, 문득 부산에서 살 때 성당에서 만났던 한 청년이 떠올랐다. 1980년대 당시 성당에서 봉사활동하면서 만난 청년인데, 공수부대에 입대해 군 생활 중 하필 5·18 진압군으로 차출 받아 광주로 갔던 것이다. 심성이 한없이 착하고 온순했던 그가 거친 공수부대에 입대한 것 자체부터가 맞지 않았지만, 5·18 진압 과정에서 받았던 충격으로 이십대 젊은 나이에 그는 끝내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리고 말았다. 영화 속 공수부대 진압군 오채근은 40년 후 양심고백이라도 하지만, 현실 속 공수부대 진압군 그 청년은 양심고백은커녕 그 충격으로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이다.
당시 그가 주변에다 “M16이 어떻고”하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 아직 5·18 직후라 그 참극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였으니 다들 병 때문에 하는 헛소리라고만 여기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으론 5·18 진압 때의 악몽 같은 기억을 파편처럼 끄집어내 던지듯 발설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헬리콥터 소리를 특히 무서워했는데, 그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느 여름날 그 청년이 내 휠체어를 밀고서 함께 광안리 바닷가로 놀러갔었는데, 마침 보트를 타게 되었다. 힘이 좋은 그가 보트를 저으며 가는데, 하필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오자 갑자기 흥분하더니 ‘자신을 미행하려고 오고 있다’며 불안해했다. 깜짝 놀란 내가 그를 진정시키며 해수욕장 쪽으로 노를 젓도록 유도해 가까스로 보트에서 내렸다. 지나고 나니 청년의 그런저런 행동 모두가 5·18이 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몇 차례 거듭하더니, 어느 날 가족 전체가 동네를 떠나면서 소식마저 완전히 끊기고 그 청년은 그야말로 ‘실종’ 되어버렸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국내 극장 개봉 전에 이미 지난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영화제 ‘씨네광주 1980’에서 최초로 상영되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었고, 이후 시카고인디영화상 남우주연상(안성기)과 최우수 프로듀서상 수상을 시작으로 뉴욕국제영화상, 타고르국제영화제, 런던국제영화제 공식 선정, 칸월드영화제 최우수 장편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어떻게 보면 도식적이고 단선적인 선악구도여서 ‘이제는 5·18에 대해서도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조금은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40년 전 그 때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불현 나를 생생하게 소환시켜준 것만으로도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은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 때 그 시절 5·18이 내게 각별했던 것은 바로 7개월 전 부마항쟁을 겪었던 까닭이다. 백골단의 만행과 계엄군 투입 소식 등 흉흉한 소문으로 부산시민들의 10월은 분노와 불안 그 자체였다. 기어이 10.26이 터지고,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대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당시 매일 쓰고 있던 내 일기장은 분노와 절망,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기록이었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 지나가면서 거기엔 전두환 행보를 비판하는 글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5·18 소식을 접했고 부마항쟁 트라우마가 오버랩 되면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아직은 언론보도를 통하는 수준이었다. 가톨릭신자였던 내가 5·18 ‘학살’ 그 참상의 진실에 온전히 눈을 뜨게 된 것은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을 통해서였다. 그 공수부대 진압군 청년의 믿기지 않았던 말들 차츰 이해되었고, 특히 시국관련 모임에서 손에 넣었던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시대의 어둠에 분노하며 내가 휠체어를 타고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1987년 6월시민항쟁으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을 무너뜨렸을 때의 감동은 내 삶을 이끄는 ‘원체험’이 되었다.
우리에게 전두환은 무엇인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전두환 제5공화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근 반세기에 걸친 미소 대결이 낳은 동서냉전 시대에 제3세계를 휩쓸던 군부정권시대의 끝물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땅따먹기’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군부쿠데타를 직접 지원하거나 사후 승인하는 방식으로 친미-친소 정권 수립에 골몰했다.
언필칭 민주주의 국가 미국조차 그들의 냉전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정권과 지도자가 반민주 독재적일지라도 지원하며 유지시켰다. 5·18, 더 나아가 12.12에서 미국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 손길이 느껴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었던가. 5·18 당시 미국 항공모함 코럴시호와 미드웨이호가 한반도로 급파되었던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당시 나는 박정희 암살 이후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정국을 수수방관할 수 없어 조기수습하려고 미국 매파들이 앞장서서 개입하면서 불러낸 꼭두각시가 미국 유학파 전두환 아니었던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이미 4.19혁명에서 드러났고 1970년대 유신독재정권 향한 저항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민중 특유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열망의 벽 앞에 부딪혔다. 당시는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수십 년에 걸친 냉전시대 내내 억압되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제3세계 민중들의 갈망이 마그마처럼 표출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5·18은 그렇게 억압과 자유의 대결 그 최전선이었다. 비록 학살의 군홧발에 짓밟혀 서울의 봄과 5·18로 이어진 민주화를 향한 그 갈망은 일순간 꺾였지만, 그것은 몇 년 뒤 6월시민항쟁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었다. 사실 미소 식민지 쟁탈전처럼 벌어졌던 군부쿠데타의 광풍도 1988년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도미노 현상으로 붕괴되고 동서냉전이 끝나면서 잦아들게 되고, 신기하게도 전두환 제5공화국도 비슷한 시기에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도 문민정권시대가 열리게 된다.
우리 안의 전두환, 우리 안의 파시즘, 그리고 김수영의 시
지금 우리에게 전두환은 어떤 의미인가. 4·19, 5·18, 6·10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계절만 오면 매년 내가 반드시 읊어보는 시가 김수영 시인의 ‘하......그림자가 없다’ 전문이다. 그는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고 절규한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김수영의 시 ‘하......그림자가 없다’ 중에서
그렇다. 5·18 진상규명과 학살의 수괴 전두환 처벌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우리 안의 전두환’, ‘우리 안의 파시즘’을 찾아내고, ‘우리 안의 오채근’이 생겨나지 않도록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군부독재시대는 이제 오지 않겠지만, 전두환과 오채근은 언제든지 우리 안에 태어날 수 있다. 윤석열의 “5·18은 진행 중”이라는 발언이 공감을 받았던 것도 그런 의미이리라. 이정국 감독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우리에게 잠들지 않고 매순간 깨어 있기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