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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1) / 정중규

by 정중규

[문화일보 / 노성열 기자]

■ 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1) 세계는 ‘표준경쟁’중

폭발적 성장 ‘AI 시대’… 기술 넘어 ‘기준’ 잡아야 살아남는다


유엔 국제 감시기구 창설 추진

美·유럽 등 본격 제도화 나서

챗GPT 수개월만에 급속 확산

빅테크 경쟁속 부작용도 커져

성능전쟁 아닌 공존 논의 시작

이통 CDMA처럼 표준 선점을


생성 인공지능(AI)이 원본과 구별되지 않는 가짜 글, 그림, 음악을 무한대로 창조하면서 저작권과 개인정보 침해, AI 편향 및 양극화 등 세계가 ‘테크노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주요국은 AI가 인간 사회의 윤리와 법 등 규범을 준수하도록 길들이는 ‘AI 제도화’에 착수했다. 산업적 제도화(표준)와 사회적 제도화(정책·법)로 나뉜다. AI 표준과 AI 법규를 선도하는 국가만 21세기 강국으로 살아남는다. 문화일보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AI 표준과 법·제도를 선도하는 ‘AI 모범 국가’로 올라서기 위해 어떻게 사회 제도를 재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대형 연재물을 시작한다.


주요국 정부가 “인공지능(AI) 스톱(Stop)”을 외치며 본격 규제에 돌입한 가운데, 한국이 AI 규제의 표준과 모범을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유엔과 미국 등에서는 폭주하는 AI에 제동을 거는 정책을 연속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령과 규제 마련에 나서야 하며, 대외적으로는 AI 산업의 국제표준을 만드는 작업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동통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처럼 한국형 글로벌 표준으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일 정부와 빅테크 업계에 따르면 유엔은 위험물질인 핵 개발을 규제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사한 형태의 ‘AI 감시기구’를 창설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국도 생성형 AI의 답변에 제조사가 책임지도록 하고, 유럽연합(EU)은 수사 등 고위험 영역에는 AI를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한 AI 법안을 올해 말 의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AI 경쟁이 기술 개발에서 규칙 확립 및 표준 선점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생성 AI의 일상 침투로 사회적 충격과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챗GPT의 시장 진입 후 불과 10개월 만에 AI 제도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가짜 뉴스는 물론, 합성 이미지 포르노와 무단 도용 저작물들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다. 작가·배우·만화가들은 자신의 원본을 ‘학습’한 AI 페이크가 정당한 대가 없이 무한 배포되고 있다며 파업을 벌였다. 1차 AI 충격(2016.9 알파고) 때만 해도 제한된 영역에서 전문가를 능가하는 성능에 감탄해 ‘바둑 말고 다른 분야에서 누가 더 빨리 인간을 이기나’의 전문성 겨루기에 그쳤다. 하지만 2차 AI 충격(2022.11 챗GPT)은 인간과 대화를 나누며 글·영상·소리 등 일상 콘텐츠를 ‘창조’하는 보편적 능력 때문에 보통 사람의 삶 속 직장과 가정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AI 경제’ 시대에 기업들은 구텐베르크 활자 혁명과 맞먹는 생성 AI 충격 속에 살아남기 전쟁으로 돌입했다. 첫 등장 후 수개월 안에 MS·구글·애플·엔비디아·바이두 등 글로벌 빅테크는 시장 주도 싸움을 벌이고, 국내도 LG·네이버·카카오 등이 한국형 생성 AI를 차례로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 표준과 법·정책이 정비되지 않아 각개약진하는 춘추전국 시대에 머물고 있다. 결국 기술보다 AI 제도를 먼저 정비하는 국가가 AI 강국이 되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AI는 성능 경쟁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로 논의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AI 표준 전략이 미국과 유럽의 AI 제도 중간형으로 현명하게 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미국은 AI 빅테크의 경쟁력을 국가 핵심역량으로 유지하기 위해 육성에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AI 표준 서비스에 포획된 유럽 국가들은 AI 기술을 규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AI 표준을 자국의 기술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 도구로 보고 국제표준기구 회의 등에서 채택 활동을 강화하는 중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과학기술 동맹을 최대한 활용하되, 미국과 중국 모두에 패권적 거부감을 가진 제3세계 국가에 제3의 대안이 될 AI 표준 모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동남아·중동 국가들은 미국, 중국 패권국보다 한국의 틈새 AI 기술 전수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 (1)

“한국, 글로벌 AI 스탠더드 주도하라”

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 - 전세계 ‘AI 표준’ 경쟁

기술개발 몰두했던‘AI 패권’

개인정보 침해 등 부작용에

‘산업표준 제정’으로 급선회

韓도‘디지털 권리장전’구상

“글로벌 규범 형성 주도해야”


전 세계가 알파고에 이은 챗GPT 발(發) 2차 인공지능(AI)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글로벌 AI 주도권 잡기 경쟁이 기술 개발에서 표준 선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AI의 놀라운 파괴력이 순기능 못지않게 살상무기, 실업, 양극화, 저작권 및 개인정보 침해 등 역기능도 낳고 있기 때문이다. AI 산업 환경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틈새에 끼인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될 만한 AI 스탠더드를 먼저 제시해 글로벌 규범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일 정부 부처와 외신에 따르면 유엔과 주요국 정부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가치 준수형 모범 AI를 키우는 산업 표준과 법·정책 제정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미 유엔은 7월 AI 위험성을 따지는 첫 안보이사회를 열고 관련 국제기구 창설을 선언했다. 유럽의회도 오는 12월 세계 최초의 AI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며, 미국 역시 연방 및 주별로 법·조례 정비에 들어갔다. 한국도 AI 윤리 제정과 법안 마련을 서두르며 ‘한국형 모범 AI’의 표준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지난 14일 ‘대한민국 초거대 AI’를 발표하면서 AI 윤리 규범 ‘디지털 권리장전’을 준비하고, 오는 2027년까지 총 9090억 원을 들여 전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 AI가 보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AI 경제’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AI 표준 및 경제모델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AI가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전에 ‘한국형 모범 AI’를 선점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 3월 방한한 챗GPT의 모회사 오픈AI 샘 올트먼 사장도 “한국이 AI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 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1)

“시장중심 미국 - 규제강조 EU 사이… 한국 ‘균형모델’ 될 수 있어”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 “민간기술-공공규제 함께 가야”


“인공지능(AI) 정책은 발전과 신뢰라는 양대 축을 민간과 공공 부문이 손잡고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민간은 승자 독식의 AI 생태계에서 독자적인 기초·응용 기술을 양성해 AI 주권을 지키면서 글로벌 협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공공은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적정 규제로 발 빠르게 대응하며 민간 자율의 AI 윤리·신뢰성 확보 프로세스를 마련해줌으로써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정부도 대국민·내부 행정업무를 혁신하는 초거대 AI 인프라와 서비스를 지원하겠습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입법·사법·행정을 망라한 범정부 AI 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박 차관은 “2019년 우리나라 주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AI 권고안’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이듬해 AI 윤리 기준을 수립하는 등 일찌감치 움직여왔다”며, “현재 기업들이 AI 개발·운영 과정에서 스스로 규범을 지킬 수 있도록 자율점검표와 개발안내서까지 완성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AI 윤리와 신뢰성 원칙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분야별로, 또 기술적 특성에 따라 현장에서 잘 적용될 때 의미가 있고 타국의 벤치마킹 모델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형 AI 표준’과 관련해 “미국·영국·일본 등은 민첩하고 유연한 대응을, 유럽연합(EU)은 엄격한 규제를 강조하는 입장”이라며 “위협에 대처하는 규율 확립과 기술·산업 발전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편향성, 개인정보 침해, 가짜뉴스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혜택은 모두가 누리도록 하자는 게 AI 윤리”라고 AI 표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가전제품도 안전성과 성능·품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팔리기 어렵다”며 “AI 제품·서비스의 신뢰성은 대중에겐 당연한 요구사항”이라고 말했다.


신뢰성을 갖춘 AI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글로벌 산업을 주도하고, 신뢰 인프라를 조성하는 국가가 AI 경쟁력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틀을 다진 경험이 있으니 지금까지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AI 제도화도 모범적으로 이뤄낸다면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AI 스탠더드, 한국이 만들자(1)

생성형 AI, 정보검색용 아닌 창의성 보조 도구로 사용해야

통계적 알고리즘의 속성상 허위정보 짜깁기할 가능


생성 인공지능(AI)은 생각을 시작하는 도구다. 그동안 인간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글로 쓰며 정리했다. 그림으로 그려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악기로 연주하며 소리를 기록했다. 생성 AI는 21세기의 활자, 스케치, 악보다. 글, 그림, 음악을 시작할 때 펜, 붓, 악기 노릇을 한다. 글을 모르면 문맹이듯, 생성 AI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AI 문맹이 된다.


생성 AI는 정보 검색용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 학습 콘텐츠를 재료로 명령자가 원하는 결론을 ‘창조’하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허위정보를 짜깁기할 수 있다.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으로 불리는 생성 AI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건 생성 AI의 속성이다. 사용자에게 반드시 대답을 내놓기 위해 질문 의도에 맞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조합하는 통계적 알고리즘인 것이다. 정확한 정보 검색은 네이버, 구글 등 검색 엔진을 쓰면 된다.


생성 AI를 잘 쓰려면 요약과 번역, 특히 초안 작성 같은 창의성의 보조 도구로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예컨대 챗 GPT를 포함한 챗봇은 표어나 상표 이름 짓기, 글 속 문법 오류나 윤리적 편향 검사, 블로그에 자동 댓글 달기, 복잡하고 긴 콘텐츠 쉽고 짧게 줄이기, 외로운 사람의 말벗 등 용도로 쓸 수 있다. 달리(DALL-E) 같은 이미지 창조기는 손재주 없는 사람도 화가나 사진작가처럼 멋진 여행 스케치와 사진을 남기도록 돕는다. 뮤직젠 등 음악 생성기는 콧노래와 흥얼거림은 물론, ‘비 오는 가을 저녁’하고 분위기만 묘사해도 뚝딱 곡 하나를 뽑아 누구나 작곡가가 되도록 해준다. 생성 AI는 인간이 평생 공부해도 다 못 보는 방대한 양의 글, 그림, 음악을 사전 학습하므로 초기 아이디어 구상 때 다양성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태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원은 “검색 엔진(search engine)에서 창의성 엔진(creativity engine)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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