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가 초읽기에 접어들었다. 주요 현안에 대해 공세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 유력 잠룡과의 갈등도 점입가경 수준이다. 차기 대선 라이벌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 때문에 한동훈 전 위원장이 사실상 정치행보를 재개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는 22대 총선 참패 이후 극도로 언행을 자제한 것과 정반대다. 그동안 여권 안팎에서는 한 전 위원장의 향후 거취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다. 전대 출마론이 대표적이었지만 대체로 시기상조론이 우세했다. 아무래도 총선 참패 이후 곧바로 정치무대에 등판하기보다는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상황은 정반대다.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설을 집중 분석했다.
- 한동훈, 총선패배 이후 잠행 깨고 사실상 공개활동 수준의 대외행보
- 오세훈·홍준표 등 여권 유력 잠룡들과 공개 설전에 갈등 ‘점입가경’
- 용산 대통령실과 갈등 위험수위 관측…차기 전대 출마 선택 확실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주변 상황이 최악일 정도로 고립무원이다. 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한동훈 때리기’에 나섰다. 지난 연말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등판할 당시만 해도 끈끈했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홍준표 시장은 연일 ‘한동훈 불가론’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난타전을 이어가고 있다. 총선 이후 몸풀기에 나선 오세훈 시장마저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야권의 공세는 더 치열하다.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는 엄포까지 내놨다. 유일한 탈출구는 전대 출마다. 한 전 위원장에서 본다면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막강한 차기 경쟁력과 팬덤은 든든한 밑바탕이다.
‘칩거모드’, 페북정치 시동 ‘직구규제’ 정부정책 직격탄
한 전 위원장은 총선패배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공개적인 대외행보 없이 칩거 수준의 생활을 이어갔다. 당 안팎에서 본인을 향해 쏟아진 책임론에 로우키 행보를 지속했다. 최근 유일하게 언론에 보도된 것이 자택 인근의 도서관 방문 등의 목격담 정도였다.
다만 최근에는 확 달라졌다.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한 언급을 재개하면서 사실상의 정치행보에 나섰다. 한 전 위원장은 전대 출마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았지만 당 대표 적합도에서 늘 선두를 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심장하다. 이때문에 한 전 위원장이 전대 출마를 염두에 두고 정치적 존재감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당원투표 100%라는 현행 전대 룰을 고려하면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시 당선이 유력하다.
22대 국회 환경도 나쁘지 않다. 국민의힘 전체 의석 40%에 해당하는 40여명의 초선 당선인은 한 전 위원장으로부터 공천을 받았다. 한 전 위원장의 당권도전시 든든한 응원군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친한계 구성까지는 아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측근 그룹도 부상 중이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의 핵심 3인방으로 사무총장을 지낸 장동혁 의원, 비서실장을 지낸 김형동 의원, 수석대변인을 지낸 박정하 의원이 한 전 위원장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전대 출마 분위기 조성과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거취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한 전 위원장은 침묵을 깼다.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혼선을 보여준 ‘해외직구 금지 규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개인 해외직구시 KC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며 과도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한 전 위원장은 특히 “해외직구는 이미 연간 6조7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국민이 애용하고 있고, 저도 가끔 해외직구를 한다”며 “정부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공정한 경쟁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정부”라고 지적했다.
총선 패배 이후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책현안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힌 것이었다. 윤석열정부의 실책을 때리면서 용산 대통령실과도 일종의 선긋기에 나선 셈이다. 이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한 전 위원장은 ‘고령자 운전면허 제한’ 조치 또한 비판하면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한 전 위원장은 “불가피하게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때는 최소한도 내에서, 정교해야 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오늘 보도에 나온 고연령 시민들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정부와의 차별화를 선택하면서 향후 독자적인 정치행보에 나서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오세훈, “잘못된 처신” 韓 견제…홍준표, ‘韓 불가론’ 난타
한 전 위원장의 공개 행보에 여권 잠룡들은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한 전 위원장의 정치재개 행보에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이 약해지면서 미래 권력을 꿈꾸는 차기주자들의 신경전이 조기점화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의도정치와 거리를 둬왔던 오 시장은 물론 앙숙관계였던 홍 시장이 적극적인 견제에 나섰다. 홍 시장은 특히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만찬회동 이후 ‘한동훈 때리기’의 강도는 더 커졌고 횟수도 잦아졌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며 신중한 스타일이었던 오 시장도 나섰다. 오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의 해외직구 규제 비판에 “안전과 기업 보호는 직구 이용자의 일부 불편을 감안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정책 전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여당 중진으로서의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이 특정인을 지칭하진 않았지만 여권 안팎에서는 한 전 위원장을 비롯해 나경원 당선인과 유승민 전 의원을 싸잡아 겨냥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소 묘한 지점은 오 시장이 비판한 여당 중진이 모두 본인의 차기 라이벌이라는 점이다.
한 전 위원장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이례적인 일이다. 한 전 위원장은 “서울시장께서 저의 의견 제시를 잘못된 처신이라고 하셨던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설적인 의견 제시를 처신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공감할 분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시장의 지속되는 견제 역시 한 전 위원장의 정치적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홍 시장은 22대 총선 이후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융단폭격식의 비난전을 이어왔다. 특히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비판 수위는 더욱 커졌다.
홍 전 시장은 21일 “총선을 말아 먹은 애한테 또 기웃거리는 당내 일부 세력들을 보고 이 당은 가망이 없다고 봤다”며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간 애 앞에서 모두 굽실거리며 떠받드는 거 보고 더더욱 배알도 없는 당이라 느꼈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홍 시장은 특히 당 일각의 탈당설에도 “내가 30여년간 이 당을 지키고 살려온 뿌리인데 탈당 운운은 가당치 않다”며 “탈당하는 때는 정계 은퇴할 때나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홍 시장의 비판에 한 전 위원장은 무대응 침묵시위로 무시했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응원군이 쇄도했다. 김웅 의원은 “총선에 참패하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공격하는 무리가 등장한다”며 “사냥개, 짓밟던 애, 깜도 안되면서 아이돌로 착각 등 이런 말은 비평이 아니라 무자비한 인신공격”이라고 꼬집었다. 한 전 위원장의 정치적팬클럽인 ‘위드후니’에서는 홍 시장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더불어 격한 성토가 쏟아졌다.
‘고립무원’ 탈출구는 전대 출마…한동훈, 결단 임박
모든 징후는 이제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를 가리키고 있다. 사실상 한 전 위원장의 최종 결단만 남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본인의 정치적 명예를 회복하면서 차기 대권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대 출마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특히 ‘전투적이고 세련된 보수’라는 한 전 위원장의 특유의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국민의힘 차기 전대는 예상보다 판이 커졌다. 앞서 22대 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는 극도의 인물난에 시달렸지만 차기 전대는 여권 잠룡들의 경쟁장이다. 5선 고지에 오른 나경원 당선인, 4선 고지에 오른 안철수 의원, 비주류 탈출을 노리는 유승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 3인방은 지난해 3.8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윤심에 밀려 출마를 포기하거나 낙선했다. 한 전 위원장이 전대에 출마해 이들을 꺾는다면 정치적 입지는 탄탄대로다.
아울러 전대 도전시 최대 장애물로 여겨졌던 총선참패 책임론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낸 것도 우호적 환경이다. 보수진영 안팎에서 22대 총선 이후 패배 책임론을 두고 거센 공방이 오갔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 중 누가 총선참패의 책임이 크냐는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과 ‘이종섭·황상무’ 쌍끌이 악재, 의료대란에 대해 민심을 읽지 못하고 실기했다는 평가부터 한 전 위원장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이 잘못된 선거전략이었다는 상반된 분석이었다. 다소 팽팽했던 선거책임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 전 위원장 역시 용산 대통령실발 메가톤급 악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동정론이 쏟아졌다. 이는 한 전 위원장이 향후 정치적 보폭을 넓혀갈 수 있는 바탕이다. 아울러 한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총선참패 이후 기자회견에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는 제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를 둘러싼 당 안팎의 기류를 팽팽하다. 총선참패의 원인 제공자인 만큼 아직은 이르다는 시기상조론과 윤 대통령이 레임덕 수준에 빠진 여권의 위기 수습을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한동훈 역할론이 맞서고 있다. 22대 총선 과정에서 사무총장을 맡으며 친한계 핵심으로 불리는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정치인은 민심이 부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민심이 부를 때 거부할 수 없는 게 정치 아니겠나. (전대 출마는) 한 전 위원장이 고민하고 결단할 문제”라며 한 전 위원장의 전대 출마 가능성을 열어놨다. 다만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5선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전대 출마는) 본인의 의지이지만 지금은 자숙과 성찰의 시간이 맞다”며 “결국 인기라는 게 반짝하고 가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도 한 번 반면교사를 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한동훈 전 위원장은 총선참패 논란과 관계없이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다. 때아닌 여권 중진들의 정치적 견제가 지속되는 것도 이때문”이라면서 “본인의 사법리스크 방어와 차기 대권 준비를 위해서도 전대 출마를 통한 정치인 변신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22대 총선을 거치면서 윤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계는 사실상 와해된 상황이다. 반면 친한계로 불리는 정치적 우군, 초선 당선인은 물론 수도권선거 낙선자 중심의 원외 그룹, 위드후니라는 강력한 팬덤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며 “장고를 거듭해왔던 한 전 위원장이 조만간 전대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치활동 재개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