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共和主義)는 시민의 덕성, 공익과 공공의 선을 중시하는 정치적 이념이자 학풍으로 오늘날 우리 정치권이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화주의로 본 한국 정치'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국민의힘에서 김상훈 정책위의장, 김민전 최고위원과 권영진·김정재·박성훈·송언석·이인선·유용원·윤상현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 의원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다수결에 맡기겠다는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외에 한국 정치에는 '공화주의'가 필요하다"며 "다수결의 원칙을 넘어 개인의 존엄, 자유, 창의를 고무하면서도 그것이 공공선을 해치는 선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규범과 문화가 있는 나라가 통합과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민주화 이후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수의 통치라는 의미의 '민주'는 살아있으나, '민주'의 이름이 공동 화합해 정무(政務)를 시행한다는 공화의 의미는 훼손됐다"며 "국회가 여야가 싸우는 전투장이 돼가고 있는데 거대 야당이 초래하고 있는 국정 혼돈에서 공화주의가 가진 이념을 재고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날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파행으로 흘러가고 있는 여야 관계에서 '공화'의 부재를 엿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채진원 교수는 "민주주의는 소수파에 대한 다수파의 지배를 합법화한다는 점에서 소수파를 배제하는 체제가 될 수 있어 '완벽한 정체'로 봐서는 안 된다"며 "지난해 9월27일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가 민주주의 위기의 신호탄이 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지난 비상계엄 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보면, 진영 대결에 따른 극단 정치와 정치 양극화에서 초래된 측면도 있는 만큼 (지금의) 정치 문화 쇄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민주주의 과잉을 제어하기 위해 공화주의를 불러오기보다는 '더 깊은 민주주의'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김주형 교수는 "공화주의에 따라 탈정치적이고 중립적인 판단기구에 집착한다면 시민들의 집합적 정치 역량이라는 본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정치인을 바꿀 수 있지만 국민을 바꿀 수는 없다"며 "국민을 바꾸는 방법은 설득을 통해 동료시민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어려운 길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한국 정치가 직면한 극한 대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제언이 나왔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는 "(대통령) 탄핵의 과정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면서도 3명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됐다는 사실이 한국 정치의 어떤 구조적 특징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행 헌법에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맞설 때 중재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없어 막다른 길로 치닫게 된다"며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인 상호 인정, 대화, 토론, 타협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홍태영 국방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선거라는 일회적 행위로 위임된 권력이 생긴 것인데 한국 정치는 대표를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공정, 정의 등 한국 사회 쟁점들은 단순히 '수'의 문제를 넘어 합리적 방안을 찾아가는 식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호 변호사(공화주의 아카데미 공동대표)는 "'국민'이라는 말이 정치인들이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되는 '민주주의 과잉'을 보이기도 한다"며 "다시 공화주의적인 정신으로 사람들의 동의를 모으면서 권력 구조를 다시 개편할 수 있는 논의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