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만한 게 없다고
이제는 소개팅을 나가도 MBTI가 뭔지 물어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의 MBTI 트렌드는 신드롬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다. 딱히 공감을 못하겠어서 맞장구 쳐주지 않으면 ‘너 T야?’라고 물어보는 판국이라, MBTI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혹자는 혐오감마저 느끼는 듯하다.
우리가 해본 MBTI 테스트는 정식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나는 MBTI를 애정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MBTI가 유행하게 된 것이 반갑다. MBTI가 얼마나 공신력있는 결과인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활발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MBTI 유행을 통해 ‘나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성격을 묘사해보라고 하면 단순히 ‘소심하다’, ‘사교적이다’, ‘둔하다’, ‘예민하다’ 정도에 그쳤는데, MBTI가 유행하면서 성격과 행동에 대한 상당히 상세한 설명들이 폭넓게 공유되었다. ‘MBTI 팩폭’이라고 검색해보면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쉽게 분별하고 또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함” 따위의 현실적인 어투로 공감을 자아내는 설명들이 많다. 그래서 MBTI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성격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이들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공감가는 설명을 보면 마치 용한 점쟁이라도 만난 것처럼 속에 있는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서로의 MBTI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문화가 더 반가운 이유는 바로 내가 ‘내향인’임을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지금보다도 더 ‘외향적’인 것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는 ‘저 I예요’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서 안도감이 들었다. 숏폼이나 인스타툰에서도 ‘내향인 특징’ 등 내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콘텐츠들이 인기가 많고 또 재미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도 MBTI에 대하여 피로감을 느낀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사후적 도구로써가 아닌, 선입견의 장치로 활용할 때 짜증스러운 기분이 든다. 모든 행동을 MBTI 유형에 의한 행동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행위는 오히려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을 차단시켜버리게 된다. MBTI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은 아마 이 대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부작용이 있지만서도, 나는 MBTI 유행에 찬성한다. 그동안의 한국사회는 나를 탐색하는 것에 시간을 쏟는 것에 인색했다. 입시와 취업에 시간을 쏟아도 모자른데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탐색하는 일이 사치처럼 여겨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탐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MBTI라는 도구는 여기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몰되지 말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연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