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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Dec 11. 2022

한 달 반 동안의 아버지의 구강암 치료가 끝이 났다.

30회의 방사선 항암치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회 치료를 받으셨기에 한 달 반, 약 6주가 지속되었던 아버지의 구강암 치료가 드디어 끝이 났다.



SNS에 글을 쓴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던 때.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래전 임플란트를 한 치아 주변이 불편해 치과를 찾았고, 몇 번 약을 타서 드셨지만 불편함이 계속되었고, 동네 병원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찾은 대학병원에서는 구강암이 의심되나, 해당 병원에선 조치가 불가하다며, 좀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하라는 의견서를 작성해 줬다는 내용이었다.


아버님을 모시고 연대 세브란스, 서울대학교 병원을 오가며 진료와 여러 검사를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구강암 판정을 받으셨다.


수술을 안 할 경우 1년간의 생존.


수술을 할 경우 ‘암’으로 인한 사망은 없을 것이라 하였으나, 얼굴뼈를 잘라내야 하는 대수술.

외관의 큰 변화뿐만 아니라 음식 섭취도 어려워지기에 이로 인한 삶의 질의 저하가 수반된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워낙 고령이시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 중 A라는 병명으로 수술을 하였다가, 다른 B, C 등의 합병증을 얻어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셨던 터라 수술은 절대 못 하겠다고 하신다.


가족들 역시 노인 분들의 경우 음식을 잘 못 드실 경우 급격히 노화가 진행되고, 이로 인해 더 안 좋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은 터라, 수술 후 생길 합병증이 수술을 안 할 경우보다 더 나쁘지 않을까.. 생각되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족들끼리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아버님의 의사를 여러 번 듣고, 장시간의 상의 끝에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하였다. 수술에 비해서는 효과가 좋지 않으나, 얼굴뼈를 잘라내야 하는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니..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다 생각이 되었다.


아버지의 암 의심 소견을 듣고, 대학병원을 찾아가 결과가 정확한 것인지, 어떤 해결 방안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한 군데 보다는 다른 곳에서도 결과가 같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같은 과정을 또 겪어보고, 그리고 치료 방법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방사선 치료를 선택해 치료받으신 것을 포함하면, 한 달 반이 아니고 대략 넉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하필이면 이 기간에 나는 SNS에 글을 쓰고 있었고, 또 하필이면 그 글의 내용이 초반에는 나의 힘듦을 다루지만, 점점 가볍고 웃을 수 있는 내용과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그리고 있는 글이었다.  


다행히도 글들은 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기 전에 대부분 작성이 되었던 터라, 하루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리는 것 말고는 크게 수고스러울 것은 없었으나, 아버지의 병 치료가 진행이 되면서, 내가 쓴 글은 점점 더 긍정적으로 진행이 되어가고, 실제의 나는 점점 더 지쳐가게 되며, 나의 삶과 나의 글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사이가 멀어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가 단절되었던 내가 육아 휴직 기간 비로소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하였고, 아버지 역시 조금은 바뀌게 되던 차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암으로 인해, 아버지는 다시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오셨다.


보통 방사선 항암치료 30번 중, 중반 이후가 되면 대부분 기운이 빠지게 되어 말씀하실 기력도 없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우려와는 달리,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아버지의 기운은 점점 강해졌다.

어쩌면, 이게 치매나 노망이 같이 온 것이 아닐까..라는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되었는데,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의사고 간호사고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시비를 걸고 화를 내셨다.


“이런 돌팔이들이 나를 어떻게 치료하냐?” 등의 말을 면전에 대고 스스럼없이 내뱉으시고, 계속해서 병원 관계자들과 시비를 붙고,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의 화를 끊임없이 내시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셨던 것 같다.


이 기간, 아이가 다 성장한 누님이 주중에는 매일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다녔고, 회사를 다니기에 매일 방문할 수 없었던 나는 치료 기간에는 2-3번만 함께 하고, 주말에 부모님 댁을 찾아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매일을 함께 해야 하는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넋이 나가시는 듯 보였다.

정작 아버지보다 주변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화로 인해 병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지쳐갔던 것 같다.




금주 주말.

아버지의 방사선 항암치료가 끝난 기념으로 가족들과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보름 정도 후에 다시 와서 치료가 잘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 달 반 동안의 치료가 다 끝난 후렴함과 안도감 때문인지 아버지가 모처럼 화를 내지 않고 말씀하신다. (왜? 무엇 때문에 화를 내냐고 하면, 상당히 답하기가 애매한 것이.. 그냥 일상의 모든 것에 트집을 잡다가 불같이 화가 폭발하시는 거라서..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치료가 끝났으니 이제 아버지의 화는 좀 풀리는 것인가?‘


내심 그러기만을 기도해 보면서도 같이 있는 토요일 하루, 언제 터질지 모름에 조마조마한 가시방석의 마음으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의 재롱과 치료가 끝난 후 기분이 좀 나아지신 것인지, 거의 두 달 만에 화를 안 내시는 아버님과 함께 한다.

그러고 보니 얼굴 한쪽과 목 주변을 둘러싸고, 검붉은 딱지가 여기 저기 크게 붙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럽다.




집에 돌아오니 모처럼 맘이 조금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지난 몇 개월간, 실제의 삶은 망가져가는데, 나의 글은 긍정을 뿜으며 살았던 내 이중적인 삶에서 잠시 중심을 잡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다른 병간호가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가장 큰 파고는 한 번 지나갔기에, 나 역시 몇 개월간 힘들었던 맘을 추슬러야겠다.

주말임에도 부모님 댁을 방문하느라 아이들이나 가족과도 함께 하지 못했던 부분도 보상을 해 줘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지쳐버린 내가 다시 맘을 잡고 긍정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 봐야겠다.



글쓰기?

글쓰기는 무슨..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좀 푹 쉬고..

다시 불과 몇 개월 전의 기운찼던 내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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