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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님 Apr 07. 2022

내가 퇴사 후 가장 하고 싶어진 건

퇴사했지만, 일은 놓고 싶지 않아

퇴사를 하고 나서야 절실히 와닿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재정상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일 얘기가 생각보다 대화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내 경력이 누군가에게는 얄팍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굉장히 사람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과 나는 일 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란 사실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맥주 한 캔이 주는 시원함에 감탄을 뱉을 수 있던 건, 와인 한잔이 주는 위로에 감정을 털어내고 내일을 다시 준비할 수 있던 건 고된 하루를 보내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더운 여름날, 온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후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 한 캔이 유난히 맛있는 이유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퇴사 이후, 내게 그 여름이 사라졌다. 


술 한잔에 힘을 빌려하고 싶은 일이나 가고 싶은 회사, 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숱한 밤들은 세월이 무색하다는 말처럼 흘러 지나갔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하던 친구들조차 모두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는 하던 일을 관두고 미래를 봐야 한다며 진로를 틀고 새롭게 자리를 잡은 녀석도 있고, 하고 싶은 건 꼭 해봐야 하지 않냐며 번듯한 회사를 관두고 공부를 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확실한 건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름을 즐기거나 이겨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일과 회사에 대한 고민이 커질 때면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일을 통한 성취감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회사 생활만큼은 성실히 하고 또 일도 완벽하게 해내는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답해줬다. 그냥 큰 생각 없이 다니면 1년이 지나 있고 2년이 지나있다고.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이렇게 얘기했다. 기대치를 낮추면 된단다.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아서 지치고, 실망하는 것이라며.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일도, 회사를 다니는 것도 결국 나름에 노하우를 터득해가는 것 인가보다. 그럼 나는 노하우가 없었던 걸까. 아닌데. 나도 노하우 있는데. 복잡한 마음에 아침 산책을 나섰다.


벚꽃이 만개해 있는 모습을 보다 감수성이 또 활약한다. '봄이구나, 봄이야.' 한동안 그렇게 쌀쌀하더니만 또 봄이 찾아왔다. 이후에는 여름이 오겠지. 다가올 여름이 얼마나 뜨거울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너무 뜨거우면 잠깐 그늘로 피하기도 하고, 바다도 가고, 때론 시원한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나도 오롯이 여름을 즐기거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덥다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는 건 지친다. 다가올 여름은, 그런 여름을 꿈꾸며 지금 이 봄을 불안만이 아닌 설렘 속에 즐겨 본다. 불안도 걱정도 조금만 내려놓자. 꽃이 참 예쁘게 폈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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