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을 함께할 수 없더라도.
내년 1월이면 스페인에 온지 5년이 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나? 싶어서 돌아보니 지난 5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 스페인에 공부를 하러 왔던게 2020년 1월이었다.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와 신나는 학교생활을 채 즐기기도 전에 코로나가 터져서 낯선 땅에서 격리를 시작했다. 불안하고 무서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행복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작년에는 한국에서 결혼까지 했다.
스페인에서 맨 처음 한국에 돌아가던 날이 생각난다. 코로나 덕분에 2년이 지나서야 갈 수 있었다. 2년만에 돌아오는 한국이었는데 나는 대뜸 결혼하고 싶다며 남자친구를 데려갔고, 비행기 안에서 코로나에 걸려 어렵게 얻은 한달의 시간동안 두 주를 격리하면서 보냈었다. 남은 2주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 다음해에는 엄마아빠가 스페인에 오셨고, 같은 해에 한국에서 결혼을 했다. 엄마 아빠는 시부모님을 뵙고, 내가 사는 동네도 보시고 나서야 마음을 푹 놓으셨고 포르투와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스페인에서 9월에 있을 결혼을 준비했다. 한국에는 한 달정도 머물렀고, 그 안에 청첩장 모임, 드레스 투어, 한복, 뫄뫄... 를 모두 마치느라 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올해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한국 방문은 드디어, 마침내 마음을 푹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남편,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졸업한 대학교 근처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가족들,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다보니 내가 원래 누구였는지 선명해졌다. 내가 이렇게 모국어로 내 마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맞아, 내가 원래 이렇게 참 웃긴 사람이었지. 맞아, 내가 원래 이렇게 알잘딱깔센으로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들이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시에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도 체감했다. 나는 휴가로 한국에 왔는데, 친구들은 전부 일상을 살고 있으니 평일 낮에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유럽에서 만나는 친구들처럼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도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니어서, 대부분 회사 앞으로 찾아가 만나곤 했다.
해외에 살면서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서운한 일들이 조금 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그 서운한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함께 푹 젖어서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일상을 가까이서 보다보니 선처럼 연결된 우리의 인생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카톡을 하고 전화를 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업데이트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보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선과 같아서 어떤 사건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고, 어떤 일 때문에 왼쪽으로 가기도 하면서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고 산다. 나는 해외에 살면서 친구들의 인생을 선위의 몇군데 점을 찍듯이 이해하고 있었다. 여행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들, 친구들이 그려왔던 선들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내 일상의 선들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면서 어떻게든 점이라도 찍어서 내 인생을 이해해보려고 했던 시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아, 이게 내 인생이구나 이해가 되었다. 가족들, 친구들과 일상을 함께할 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 멀리 떨어진 만큼, 사랑하니까 노력해야 한다는 당연하고 쉬운 사실을 걸음마 떼듯 다시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살이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커서 날이 선 나의 모습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위로해주었던 것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 없었던 5년간의 바르셀로나 살이. 올해 드디어 잠깐 멈추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드디어 조금씩 내 삶의 모양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