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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과수 Apr 24. 2018

딸랏 롯파이

방콕 라이프 +6

오늘의 아침, 수박 1/4


오늘은 UDOM SUK역에 있는 쏨분 시푸드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체인점이고 집에서 가까운 지점을 찾다 보니 이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사람이 많을까 봐 오픈 시간인 4시에 맞춰 갔는데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유명 관광지에 있는 지점보다는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실 이곳을 간 가장 큰 이유는 '풋팟퐁커리'를 먹기 위해서였다. 태국에 다녀온 동생이 그렇게 맛있다고 강력 추천을 하길래 알아봤더니 커리에 버무려진 게 요리였다. 혼자지만 푸팟퐁커리, 흰쌀밥, 땡모반(수박주스)을 야무지게 주문했다. 결과적으로는 후회 없는 맛이었다. 풋팟퐁커리를 전문으로 하는 다른 유명한 가게들도 많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도전해보는 걸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향한 곳은 '딸랏 롯파이'. 이곳에서 열리는 마켓의 정식 명칭은 '딸랏 롯파이 티 시나카린'. 원래는 짜뚜짝 시장 옆 기찻길 근처 공터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마켓을 처음 연 사람은 태국의 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규모가 커져 지금의 시나카린 로드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부터 창고형 빈티지 숍까지 다양한 매력의 빈티지 제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로컬 마켓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이트 마켓의 시작을 알리는 듯 하나 둘 전등에 불이 들어오는데,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인 분위기가 난다. 가족, 연인, 친구들은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웃는다. 한 빈티지 창고 앞 벤치에 잠시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저녁 6시가 넘어가니 이렇게 시원하구나. 이 시간대의 방콕은 또 처음이다. 가게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나는 블랙 노트를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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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가게들이 줄지어서 저마다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중간중간 비어있는 공간을 보며 이런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낭만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뭐가 됐던 난 이곳이 참 좋다.


마켓은 이제 시작인데 나는 벌써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피곤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아쉬웠지만 다음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마켓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다. 택시를 타려면 큰 길가까지 나가야 하는데 이미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도로에는 차와 오토바이로 꽉 차서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집에 어떻게 가란 말이가'하고 잠시 정신이 희미해진 그때, 매력적인 음색의 라이브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있던 곳 옆에 있던 ‘JACK LIVES HERE’이라는 재즈바였다. 집으로 갈까, 맥주 한 잔 마실까 고민하다 꽉 막힌 도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야외 테이블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먹어보고 싶었던 태국 맥주 ‘싱하’가 있어 한 잔 주문하고 나니 그 사이 라이브가 다시 시작됐다.





내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분과 나는 음악에 반응해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음악을 즐기는 이 순간. 고맙게도 시원한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마자 꿀꺽꿀꺽 연달아 삼키며 갈증을 달랬다. 오랜만에 먹는 술이라 그런지 금세 알딸딸해졌다. 맥주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어느덧 라이브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곡에 대한 설명을 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끝으로 전주가 흘러나오고 보컬이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 진채로 옆 테이블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표정의 나를 공감한다는 듯 그녀도 활짝 웃어 보였다. 내가 그냥 이곳을 지나쳤다면 오늘의 이 감정을 절대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계획이 아닌 이런 우연함으로 인해 잊지 못할 추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남은 맥주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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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으로 비긴 어게인의 OST, Lost stars가 흘러나온다. 우연히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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