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만에 흘러내린 마음

by 쑥라떼

#1

지난 주말, 대학 시절 대외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친구 J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해마다 한두 번씩 꾸준히 만나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십 년 만에 마주한 얼굴들도 있었다.


내가 이들을 처음 알게 된 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하는 교육 봉사 소모임에 합류하면서였다. 나는 한 학기에 3-4개의 대외 활동을 꾸준히 했었다. 그중 한 대외 활동에서 만난 A의 추천으로 이 연합 동아리에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가 모인 서울 특정 지역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이들이 자신의 친구를 데려오면서 세, 네 학교의 학생들이 주를 이뤘다. 그 때문에 이 동아리를 소개해 준 A와 B를 제외하면, 나에겐 이 모임 안에서 교집합이 없었다.


J 역시 소모임에 속한 다수의 친구와 원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소모임 OT였던가. 수십 명의 사람들과 1박 2일 여행을 갔다. 술이 들어가고 다들 흥이 오를수록 내가 이곳에서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불편감이 들었다. 그쯤 J가 다가왔다.


"은근히 낯을 가리지? 너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 같아"

주로 분위기를 띄우기보다 조용히 들어주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판이 깔리면 마이크를 잡고 고음을 뽐내는 반전이 있었다. 어울리고 싶어서 애를 쓰면서도, 이 공간을 어려워하는 나를 유일하게 눈치챘던 친구. 그의 오지랖 덕분에 '친구'라 할 사람이 생겼다.


각자의 유흥과 대화에 취해갈 무렵, 나는 어색한 웃음과 몇 마디 대화를 거들며 하루를 넘겼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놀 줄도 모르는 나에게 다수와 함께하는 모임은 늘 미션 같았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밖에서 보냈기 때문에, MT란 이름으로 다 같이 분업해 고기를 굽고 소시지야채볶음과 어묵탕을 만드는 시간,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경험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2

J와는 잊을만하면 연락이 닿아 한 번씩 밥을 먹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고, 소모임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던 A와 B와는 종종 만났다. 분기에 한 번, 반년에 한 번, 어쩌다 해가 바뀌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는 말과 함께- 한 번. 가까웠던 이들과도 소원해질 무렵. 십 년이 지났다.


J가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전했다. 청첩장을 받으러 만났다.

"그때 그 친구들도 오겠네? 다들 잘 지내지?"

A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음알음 듣고 있던 이름들을 다시 만나겠구나. 한때 알았던 나를 기억할까? 나는 그들과 어떤 인사를, 어떤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


그 당시 유독 겉돌았던 이유를 알고 있다. 자격지심.

대부분 아무 생각도 없었을 이들에게 주류에 속하지 못했다고 소외감을 품었다. 그들과 같은 명문대 학벌이 없어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 인식표가 없다는 게,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못난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아등바등 자리를 지켰다. 친해지고 싶은데 어울릴 줄 모르는 서툰 방식과 그렇다고 놀 줄도 모르고 마음만 앞서는 내가 싫었다.


#3

십 년이 흘렀고 낯익은 얼굴들이 성숙해진 차림새로 식장에 모였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 톤을 높여 인사를 했다. 각자의 근황을 나눴다. 누군가 나는 무슨 일을 하냐는 말에 '프리랜서'라고 답했다. 2년 전쯤 직장을 다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브랜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고. 아직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아니지만 작년부터 계속해 오던 몇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고. 한술 더 떠, 도움이 필요한 자리가 있거든 연락을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 본인 사업을 하는 사람 사이에서 나는 회사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십 년 전의 내가 '얼마나 자극에 취약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만큼 지금의 고요가 낯설다. 사실, 이 고요는 수년 전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몇 달 전, 아니 몇 주 전의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심하게 요동쳤을지도. 누군가의 시선을 왜곡해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파도가 잠시 멈춘 시기에 이들을 다시 만난 것이다. 다행이다.


다만, 스물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게 있다면 파동 치는 시기를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그때가 왔다면, 그 답을 밖에서 찾기 전 안에서 속속들이 파해치는 사람이 됐다.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다시 번호를 주고받았다. 10년 사이 생긴 의외의 접점에 놀라는 경험을 했다. 이곳에 와서 오랜만에 이들의 얼굴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J를 통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으니, 고맙다. 결혼 축하하고!)


#4

- 언니는 인생 디렉팅도 너무 멋지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 하는 일이 적성일지도 모르겠네요.

- 그래서 헤매다 매일 무너지고 다시 수습하길 반복 중이지.


-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서 수습할 수 있다는 게 제일 멋진 재능인 것 같아요.


십 년 전, 맑은 얼굴로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던 예쁜 동생.

부러운 맘이 들었던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십 년 뒤의 내가 그에게 '나는 이렇게 일하고 있다'며 고백하고 있을 줄 알았을까. 그리고 이런 응원을 받을 줄 알았을까. 이 모든 대화가 마냥 새로웠다.


집으로 가는 길. 또 다른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좋아했던 언니, 여전히 밝고 변함없이 그대로더라. 오랜만에 봐서 넘 좋았어!"


문득 생각났던 이들이 궁금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연락하지 못한 내 마음은 뭐였을까.

누군가에게 스무 살의 나를 회고할 때면 모나고, 요령 없이 열정만 넘쳤던 모습을 그려내곤 했다. 십 년 전의 나를 소환하는 이들을 만나서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잊은 기억 속 나는 꽤 괜찮은 조각이 많을 수도 있겠다고. 관계를 맺는데 어설프고 마음을 숨기기 급급했던 모습 사이에서도 진심은 또 닿고, 성숙해져가는 과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전엔 갖지 못했던 공감대를 갖고, 아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을 잡는다.

나의 20대는 어땠나. 고맙게도 그리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구나. 투박하게 터트린 순두부처럼 후루룩. 마음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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