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꺼지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 정김경숙 저
이 책의 작가는 구글 커뮤니케이션 리드로, 실리콘밸리 출신 N잡러로 두 번의 유퀴즈에 출연한 ‘로이스’님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하이라이트를 친 문장이 차곡차곡 모였다. 눈에 걸리는 단어, 문장이 익숙하다. 지난 한 해 나의 일기장에도 자주 등장했던 것들이다. 성실함, 열정, 롤모델, 실천, 실력, 스페셜리스트 대 제너럴리스트. (전문성을 두고 몇 주간 고민하며 글을 쓰던 시점이리 작가가 잡아준 제너럴리스트 지향점이 유독 와닿았다.)
누군가에게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나를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고 불러준다.
요즘 자주 접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다능인'의 삶일까. 짧고 굵게 표현하기 좋은 단어지만, 내 스스로 써본 적이 없다. 많을 다, 능할 능. '재능이 많다'는 단편적인 뜻에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눈치와 자기 검열로 살아가는 나에게 '재능'이란 '남의 돈을 받고 능력을 발휘해도 떳떳할 만큼의 효용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만한 재능이 있나?
내가 쓸모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가 '그것은 재능이 맞다' 도장 찍어주면 좋겠지만, 결국 이 또한 내 몫이다. 나는 꽤 괜찮은 기획자이고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확신.
작가의 지난 시간을 보며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데 열정이 타오른다. 미친듯이 속력을 내기 시작할 때, 나는 스스로 '초기 추진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회고하자면 페이스조절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소진되는 줄 모르고 달리다가 멈출 때면, 꼭 세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처럼 생각과 실천 사이를 줄이며 마음의 수명을 연장하는 법을 몰랐고, 긍정보단 불안을 연료로 써왔다.
'하고 싶다'보다 '해야 한다'가 익숙한 맘으로 살았던 나의 홀로서기는 늘 부작용을 동반했다. 다급히 상담가를 찾았고 (스스로 해답을 내릴 자신이 없었다), 몸과 마음의 경보음을 무시한 채 인풋을 퍼붓다가, 탈이 났다.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는 성실함, 그것 하나뿐 인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말 뒤로, 가진게 성실함 뿐이라는 말을 했었다. 나의 성실함은 내 능력에 대한 불만족, 불안. 더더욱 움직여야 한다는 갈증에서 왔다.
"다른 사람의 지적을 생산적으로 수용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애 한다. 내가 하는 말에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밑바탕을 쌓자."
-깨끗하게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과정과 자기 확신도 같은 선상 같다. 어설프게 쿨한 척, 웃고 있지만 기어코 '긁히는', 감정이 불쑥 먼저 나올 때면 그렇게 내가 형편 없을 수가. 찰랑거리는 마음 그릇의 수위를 낮춰두고 싶다.
"스스로를 채우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게 되어버린다."
-나의 성장은 오기와 인정욕구에서 시작했다. 불안을 연료로 삼는 성장은 시야가 좁다. 취미조차 생산성을 내세웠으니까. 진짜 배우는 게 즐거운 마음을 찾아가고 싶다. (이미 나는 알고 있던가? 느껴본 적이 없는가 잠시 잊어버렸나.)
"내가 몰랐던 분야나 프로젝트가 언제 어디에서 생길지 모르니 늘 계획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꾹꾹 쌓인다. 나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마케팅도, 특정분야의 지적 자산도 아닌 '커뮤니케이션'이 아닌가. 계획과 정리정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기질과 늘 더 어려운 현장에 스스로를 떨어트리는 관성 사이에서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는가?' 오랜 시간 이어져온 적성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선배'를 찾고 싶었다. 회사 밖을 나오니 더더욱 '롤모델'을 기다렸다. 주니어와 시니어 경계에서 모호한 일근육을 탓하고 싶을 때마다 로이스님의 지난 시간을 등대 삼아 행동하고 싶다. 십 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고, 추적해보는 훈련. 진짜 즐거워서 하는 공부부터 시작해보리라.
요즘은 브레이크도 엑셀도 밟지 않은 기분이다. 멈추지 않았으나, 양 옆을 스치는 것들을 보자니 조바심이 들었다. 계단식 성장 그래프를 되내인다. 이 책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동기부여와 좌절이 수십 번씩 반복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올라가는 중이라고.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버티는 힘이다. 자기 확신은 힘든 걸 참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파동에 가라 앉기 전 '가지고 노는' 단단함이 아닐까.
내 세포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불안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존재감이 크고 작은 날이 있을 뿐이겠지. 나만 아는 어두운 면이 속속들이 숨어 있을지라도, 아침이 오면 확언 문장을 적고, 누군가를 만나고든 한 톤 높여 안부 인사를 할 것이다. 애쓴다.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고, 잘 하고 싶어 긴장감이 보이는. 징글징글하게 미운 순간에도 나를 놓지 않겠다. 쉽지 않을 걸 알지만, 오늘도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에 감사하며 나답게, 나름의 줏대를 가지고 일과 삶을 만들어 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