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내 곁에

멀지 않은 나의 취향 찾기

by 쑥라떼

여러분은 나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8년 전, 첫 회사의 입사날

저는 '나를 나타내는 수식어'를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종종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안녕하세요. 비빔밥같은 사람 OOO입니다' 같은 말은 들어봤어도 매일 보는 자리 위에 적힐 나를 표현하는 문장을 적으라니 꽤나 고민이 되는 요청이었죠.


제가 적었던 수식은 ‘섬세한 고라니’였어요.

그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이미지 하나가 생각이 났거든요. 유난히 목이 길기도 했고, 저의 예민한 성격을 섬세함으로 발현시키겠다는 일종의 포부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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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예민함'이나, '관찰력'은 여전히 저와 떨어지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모든 마케터와 기획자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죠.


저는 취향이 뾰족한 이들이 참 부러웠어요. '야 이거 누구 옷이다.' 'OO이가 좋아하는 브랜드다!' 어떤 스타일에 그 사람이 연상될 수 있다는 또렷한 취향을 가진 인물이고 싶었죠.


그런데 최근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내 취향을 명확하게,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물음엔 답을 하기 어렵지만, 나의 성격과 반복적인 루틴을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나의 취향이 쌓여가고 있는 지점이, 그 방향이 보이겠더라고요. 마치, “예민함을 강점으로 쓰는 업을 택해 일의 여정을 쌓아가고 있는 것처럼요.” 소위 말하는 직업병, 행동 루틴, 자주 하는 말, 자주 먹는 음식. 나의 취향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을지 몰라요.


저는 샤브샤브를 좋아해요. 누군가 소울푸드를 묻는다면 십년째 같은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쯤이면 덕질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말하죠. 어딘가 슴슴해 보이는 이 음식은, 여러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샤브샤브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강렬한 개성보다 심심하지만 그래서 좋은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자율성이 있는

-무엇이 잘못 됐다는 것이 없는 (답이 없는)

-그래서 오래 먹어도 매일 다른 음식 같은


‘어떤 재료를 들고 오는지’에 따라 다른 맛이 나고, 심심한 국물 맛이 매력적인 샤브샤브는 제가 사는 방식과 비슷해요. 개성이 뾰족하지 않아도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어그로보다 정공법이 익숙한. 개성이 강하지 않아도, 옹골차보이기도 한.


제가 입는 옷은 어떻고요. 저는 한가지 스타일의 옷을 고집하기 보다 스트릿, 발레코어, 미니멀한 오피스룩까지 종잡을 수 없는 옷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옷과 옷끼리 조합해서 입기 어려울 때도 많아요. 이렇게 옷은 많은데 딱 원하는 게 없네? 푸념도 하고요. 매 시즌 떠오르는 패션 아이템이나 컬러가 있다면,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2개 정도로 압축해두면 스타일링을 하기 수월해진다는데... 전 앞으로도 매해 좇는 추구미가 조금씩 바뀔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 (마치 앙드레김, 스트브잡스의 룩처럼) 뾰족한 이미지를 갖고 싶다고 했으면서, 다양한 스타일링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저. 역설적인가요?


일의 여정이 쌓일수록, 저는 스트릿 패션과 페미닌한 정장을, 멜론 탑백과 클래식을, 브리치즈샌드위치와 국밥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가고 있어요. 8년째 같은 음식을 '최애'로 뽑았다면서, 유행하는 디저트는 꼭 한 번씩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나 먹어보지 못한 식재료도 설령 맛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경험'하는데 재미를 느끼거든요.


다시 말해, 저의 취향에는 ‘다양함’과 ‘진득함’이 버무린 모양새입니다.

먼저 ‘다양함’을 찾는 행동은 넓게 레이더를 켜고 영감을 수집하는 저의 일상의 한 면이가도 합니다. 우연한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만나게 될지 늘 호기심이 발동하는 상태인거죠.


하나를 ‘진득하게 파내고 마는’ 행동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뭐 하나에 꽂히면 쉽게 질리기 어려운 덕후 DNA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깊고 길게’ 무언가를 파고드는 데서 희열을 느낍니다. 처음 가는 식당의 메뉴판이 이탈리아어와 영문으로만 적혀 있다면 '왜'라는 물음이 먼저 떠오르고, '알아보자'는 행동으로 이어지죠. 자연스럽게 디깅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샤브샤브를 먹다가 몽골의 징기즈칸 시대를 찾아보다가,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샤브샤브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다고 가상의 목차를 써보기도 하는 걸요.


어설프게 아는 유명 해외 아티스트보다 수록곡까지 꿰고 있는 국내 밴드의 공연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전주만 듣고도 가사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정보가 있으니 ‘즐길 채비’를 마쳤달까요. 때때로 몸과 마음을 순간에 기분에 맡겨보고도 싶은데, 왜 이리 어려울까요.




최근에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라요.

“수지는 모범생같다.”


저의 취향 탐색기를 들은 여러분. 이 문장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그의 부연 설명에 제 해석을 덧붙이이자면, 저는 취향 탐색마자 정직하게 해나가는 사람.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아는 사람. 어디서든 ‘열심’을 동반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했어요. 이런 저의 시간을 ‘일관되게 다채로운 사람’으로 불러주고 싶습니다. 한 곳이 두드러지지 않아도, 지금의 팔레트에 끊임 없이 새로운 색을 섞어가며 은은한 취향을 만들어가는 인물. 지금은 이렇게요.


문득 우리는 ‘취향’이란 단어를 참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주 생각한다는 거죠. '내 취향은, 네 취향은 뭐지'의 그 취향!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 옷, 콘텐츠 취향 안에 여러분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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