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감수성이 민감하고 섬세한 사람은 다정한가요.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다정함과 충돌할까요.
관계 앞에서 효율이란 말을 붙이는 건 실례일까요.
... 그래서 어쩌면 저는 다정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요.
#1
요즘엔 어디서든, ‘다정함’을 꺼내는 일이 참 많아요. 다정한 사람, 다정한 행동, 다정한 언어들.
저는 말을 매만지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업 때문이라도, (소위 말하는) 대문자 F성향으로도, 다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일종의 '다정 강박'이랄까요. 다정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풀어볼게요. 사랑이 많은, 이타적인, 친하고 가까운. 대체로 온기 있는 단어가 떠오르니 내가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꽤 멋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의 제가 '다정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감각이 예민합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리나 냄새에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신경이 곤두서는 편이에요. 남들보다 제 시야에 걸리는 환경이 넓습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하는 행동은 '저 역시 그러한 환경에 있고 싶기 때문에' 만든 것들이에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그들 역시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죠. 다시 말하면, 저는 타고나길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다정함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주머니 사정, 조금 되돌아 가도 빠듯하지 않을 시간적 여유, 번거로운 행동을 반복하더라도 지치지 않는 체력. 누군가를 섬세하게 관찰해서 발휘하는 '다정함'은 분명 예민해야 할 수 있는 배려의 영역이 맞아요. 다만, 이 다정함이 고갈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그릇을 알고 가꿀 수 있어야겠죠. 일종의 메타인지랄까요.
이러한 속내를 풀어내는 게 참 어렵습니다.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온) 거리낄 것이 없는 관계들, 대체로 업과 가치관, 비슷한 결을 가진 섬세한 인물들과는 불편감이 들 정도의 상황에 빠지지 않으니 드러내지 않을지언정, 이것이 저의 민낯이거든요. 일상의 난이도가 올라가면 사회적 가면에서 날 것의 얼굴로 벗겨지기도 하죠. 날 것의 내 모습에는 내 시간이 더 중요하고,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고, 굳이 서로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각자의 영역을 더 충실하게 누리고 싶은 게 맞아요. '손해보기 싫다'는 말과 동일할까요.
민낯이 드러났던 지난 시간을 떠올려봤어요. 서로의 속속들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때,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일에서도 종종 가면이 벗겨졌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어떤 지점을 어설프게 참은 것,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나 버린 것,
이건 제가 개선할 점이고 미성숙한 면이죠. 스스로 예민하다, 섬세하다, 다정함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던 나와 싫은 내색을 참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2
“사람 사이 관계에 효율을 따지는 게 싫어.”
최근 지인에게 들은 말이 가슴 어딘가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서로에게 보다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뜻으로 했던 '효율'이란 말이, 이 대화에선 부정적으로 자리 잡은 듯 했죠.
우리의 관계를 시간이나 비용으로 나눠 저울질을 하자는 말 보단, 내가 하기 싫은 일에 굳이 마음을 쓰고 싶지도 않고, 타인 역시 나를 위해 그러한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맘이었어요. 제 마음이 괴로운 건 선뜻 내키지 않은 것을 하기엔 제가 여력이 없는데, 한 쪽에서 받기만 한다면 균형이 깨지는 것 같아 부채감이 들기 때문이에요. 관계란 50:50, Give and take가 늘 균형 잡힌 채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받거든, 꼭 보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맘이 들어요. 때문에 누군가의 이름 앞에 보이지 않는 카드 한 장, 한 장을 깔아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전 '꿍꿍이'가 많은 인간일지도 몰라요. '계산적'이란 말이 싫지만 이 또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요.)
몇 번의 서운함과 감정의 너울이 지나고 나서 "내가 주고, 상대에게 받고 싶은 '기대감'"이라는 녀석과는 많이 멀어졌어요. 이건 내 감정에서 출발한 기대이고, 목적이니 타인에게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선물하는 행위'를 예로 들어볼게요. 제 주변엔 선물을 받으면 숙제가 생기는 것 같아서 안 주고 안 받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요. 반대로 기념일을 챙기는데 둔한 친구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준다면 고맙게 받지만, 받고 주지 않는다고 해서 '미안할 일'이 아니라며, 자신의 성향을 개의치 않더라고요.
저는 지인의 취향을 떠올리고, 지나가다 문득 그의 얼굴이 겹쳐지는 물건을 들었을 때 생기가 돌아요. 계산대로 가는 마음에 수많은 계산을 했냐면, '아니오'. 어울리는 포장지를 고르고 편지에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는 순간이 즐거워요. 나의 예상과 맞아 떨어지는 라이브 반응을 볼 수 있다면 재밌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에게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죠. 특히나 지난 해 일련의 생각들을 거치며 이 부분은 기대치를 많이 버리게 되었어요. 그거 나 좋으라고 한 거라니까.
이 다음, 그래서 지금, 제가 씨름하고 있는 건 내가 싫은 것들이에요.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키지 않으니 상대가 알아서 제동을 걸어줬으면 하는, 그러나 말하지 않아서 기어코 엄한 타이밍에 삐뚤게 표출되는 것들이요. 참아보려고 했지만, 제 안에 있는 고집이나 이기심이 불쑥 '못 참겠다' 튀어나오는 것들이요. 지금껏 왜곡된 마음을 전하거나, 상처를 준 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3
이 모든 것들은 표현에 서툴어서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직 고민중인 영역입니다만)
내 방식을 인정해보면요.
효율성을 추구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마음이었으니까.
'계산적'이라는 말에, '효율적'인 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나- 본인이었잖아요.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방식이었고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다정함을 재정의하는 시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장악해야 하는 우선 순위가 아닐 수도 있어요. 모두가 다정함을 제 1의 키워드로 갖고 있지도 않거니와, 제가 모두에게 정이 없고, 계산적이기만 할 것도 아닐테니까요.
무엇보다 제게 가장 필요한 건 내색하는 연습입니다.
아주 작은 씨앗일 때 밖으로 내보내는 연습이요. 어설프게 참는 게 참는 게 최선이 아닌 걸 알았잖아요. 여태까지 저는 '표정관리를 못하는' 제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말을 반박하듯 '기분은 태도가 되므로,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던 선배가 떠올라요. 기분이 더 악화될 때까지 놔두질 않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까요?
"지금은 조금 힘들어서-"
"나에게는 이 정도가 최선이야."
"내 스타일은 이거야!"
타이밍에 맞게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요.
효율성과 다정함은 모순이 아니고, 대립하는 지점이 아니라 다른 범주의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둘 사이의 완충 장치가 있다면... 그건 '전달하는 방식'과 '타이밍' 아닐까요. 그 역시 능숙하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지금 조심할 시기네'하고 살짝 브레이크를 눌러보고 싶어요.
저는 오늘도 이렇게 자기 반성과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