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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라떼 Oct 21. 2024

'나'다운 단어를 찾으면, 나를 팔 수 있을까요?

2024년, 저의 브랜드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수지님은 뭘 잘 하는 사람이에요?" 

최근 올해의 문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질문 하나로 이수지 = [      ] 이 빈칸을 채울 단어를 찾는데 모든 신경이 꽂혀 있었다. 꼬박 3주가 넘는 시간동안 기획자와 관련된 단어, 자기소개서에 나올 법한 온갖 명사와 형용사를 이름 앞에 붙여보았다. ‘지금 내가 온전히 갖지 못한 모습을 나의 키워드로 삼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에 ‘그래도 된다’는 업계 선배의 답을 듣고 나서야 조금은 부담을 덜고 추구미를 덧붙였다. 


- 저는 브랜드 기획자입니다. 기획 일을 해요. 

이렇게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칭하는 순간이 오면 왜 이리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지. 그건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올 하반기부터 리브랜딩을 목적으로 함께하게 된 브랜드의 대표님께서 나를 '디렉터님'이라고 칭할 때는 민망함이 들기도 했다. 한 때는 방송사 안에서 특색 없는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기분이 상하곤 했었다. (수십명이 속한 부서에서 팀원들은 서로를 '매니저'라고 불렀다. 유일하게 다른 직무로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도 해당하는 호칭이었다. 매니저라는 의미가 한둘인가. 현장에 나가서도 이런 호칭으로 불리다보니 클라이언트, 아티스트와 소통을 할 때도 내 역할이 모호해지고 PD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감까지 느꼈었다.) 지금와서 회고하자면 내 이름 뒤에 'PD'라는 호칭이 붙어야만 나의 존재의 이유, 자존감이 채워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속한 회사, 조직, 직책 없이 나를 규정하려면 몇 배는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다. 직무를 고르고, 회사의 이름을 그 앞에 붙여서 'OOO사 OOO팀 누구누구입니다'라고 나를 파는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수많은 브랜드 기획자 사이에서 '브랜드기획자 이수지입니다'라고 백 날 말한다고 한들 아무런 울림도 생기지 않는다. 업을 바라보는 나의 '불안'은 홀로서기 후 이렇다할 결과물이 아직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브랜드기획자'를 진짜 나의 단어로 삼지 못했기 때문이 컸다. (누가 보든 업계 탑을 찍고 기획자란 단어에 내 이름을 바꿔 쓸 수 있는 경지에 오지 않는다면) 브랜드 기획자라는 이 거대한 단어를 장악할 수 있다, 장악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팔기 위해 <나다운 단어 찾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Mission : 나를 규정하는 순도 100% 나다운 이름 찾기


다시 말하지만, 이 과정에는 현재 갖고 있는 역량이나 경험보다 더 많은 추구미를 포함했다. 지금의 내가 씨앗일지라도 더 많이 내뱉어봐야 뭐라도 열리지 않겠어? 내가 따 먹고 싶은 과실을 골라 씨를 뿌린다. 온전한 내 의지가 필요한 단계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키워드 발굴 과정을 담은 게시글을 올렸다. '이수지 본인에겐 대단한 용기 but 남에겐 그다지 관심없을 만한' 글 한 편을 달달 떨면서 공표한다.  


"이수지의 브랜드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본질 Essense : (내러티브) 기획
가치 Value : 융합
상징 Symbol : 세계관

(키워드에 대한 기준, 디깅은 책 '브랜딩을 위한 글쓰기, 김일리 저'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1. 내가 반드시 지켜나갈, 팔고 싶은 본질 : 내러티브 기획

무엇을? 브랜드의 언어적 표현을

누구에게? 스토리텔러가 필요한 브랜드에

왜? 말과 글로 브랜드에 서사를 만드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니까


지난 3주간 수차례에 걸쳐 키워드를 좁혀왔다. 처음엔 '기획'이었던 본질을 '말과 글로 브랜드에 꼭 필요한 서사를 만드는 기획'으로 구체화했다. 무형의 생각, 경험, 좋은 원천소스를 브랜드가 가지고 있어도 알맞은 내러티브를 찾지 못하면 휘발될 수 있다. 그리고 브랜드는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꼭 필요로 한다. 내부에 이 일을 하는 기획자가 없거나, 자신의 생각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줄' 해결사를 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표에겐 더욱 필요하다. 연예인에게 매니지먼트가 있는 것처럼, 브랜드에도 좋은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일터에서 보고 느낀 결과, 누구나 이런 생각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물성에 대한 이해, 마케터-PD-공예작가-브랜드 커뮤니케이터라는 과거의 경험은 내러티브 기획자로서 최적화된 셀링포인트라고 생각한다.



2. 타인과 차별화를 만드는 가치 : 융합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핵심 가치로 능동적인 태도, 개념화, 질문이 떠올랐다. 결국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갈 상(像)은 “수지는 기가 막히게 정리를 잘해줘! (=스토리를 뽑아줘)”


지금까지 ‘정리’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수납하고 배열하는 행위가 아닌 이야기 내면의 의미까지 연결하고 구성을 그려나가는 일. 표면적인 심상에 갇혀서 섞여버린 ‘정리’의 개념을 인제야 재정의한다. 누군가 A라는 이야기를 했고, 내게 B라는 경험이 있다. 교집합이 보인다. 잘 엮어볼 수 있겠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머리와 손이 바빠진다. 이렇게 몰입할 때는 주변에서도 쉽게 알아차릴만큼 눈이 반짝거린다고 한다. 사람들의 아이디어, 경험을 들으면 잘 조합해 더 멋진 서사를 만들어주고 싶다. 


-단어 5개를 섞어서 최대한 많은 문장 쓰기

-최근 화제가 된 인물, 소재, 사건 등을 엮어 스토리 한 편 만들기

방송사, 광고사 취업준비생으로 제한 시간 내 작문을 했던 입사 시험조차 재밌었다. 이 시절에 작성한 포트폴리오를 보자면 10년 가까이 한 키워드를 고집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의 나는 '융합'이란 강점을 얼마나 잘 쓰고 있나? 20대의 내가 찾은 '키워드'를 재발굴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좋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 융합을 하자. 그 안에 적답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을 잃지 말자. 이제 나에게 융합은 파트너와 신뢰감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사람과 일을 하면 될 것 같다'는 신뢰감. A와 B로 C를 보여주겠다는 건 융합의 실마리, 블로그의 썸네일, 작품의 '미리보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



3. 본질과 가치를 팔리게끔 만드는 나의 매개체 : 세계관

10년 뒤 내가 가르치고 싶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내러티브+기획’.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포괄적인 매개체는 내가 만드는 기획물이었다. 내가 만드는 술, 만드는 가방이 매개물인 것도 맞다만, 상품엔 너무 많은 요소들이 붙어 있다. 그래서 보다 뾰족하게 - 말과 글,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바운더리로 잡아 ‘세계관’을 키워드로 삼았다.


대학생때부터 사회초년생까지 아티스트의 M/V를 해석해 글과 영상을 만들어왔고, 훗날 콘텐츠PD로 일하는 물꼬를 터줬다.

https://youtu.be/CH0pT32LKNk?si=1XeF0swg2nIatWdm 

뮤직비디오을 논문처럼 분석하곤 했던 과거를 지나 지금 브랜드 기획자로 브랜드만의 세계관을 만든다. 사람 또는 브랜드의 과거, 성격, 성향, 수많은 스토리를 발굴하고 수집한 뒤에 융합하다 보면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 이수지는 내러티브 기획, 융합, 세계관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나를 팔 것입니다. 

저를 많이 써주세요!”



2024년 10월 21일, 이수지라는 브랜드의 키워드이자 활용가이드이다.

본질을 ‘기획’이라고 적었으니 지금의 진심에 진심을 더 해, 좋은 내러티브를 만들고 싶다. 한결같은 가치 키워드를 고집했던 흔적을 보니, 이쯤이면 이 키워드는 내가 끝까지 놓치 않겠다고 야심을 품어본다. 


키워드 찾기는 과정이다. 지금이 완벽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과정을 놓치 않는다면 점점 더 뾰족하고 적합한 키워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시작이 반'이라며 일단 점을 찍어두고 달리기 위한 중간보고쯤이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간 이도 저도 아닌 ‘무명’이 되고 말겠구나. ‘유명함‘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나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지’라는 고민에 주저함이 없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그래서 이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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