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서사

나의 덕질 연대기 (1)

by 쑥라떼


#1 본 적도, 대화 한 번 나눈 적도 없는 이를 끊임없이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우연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뒤,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십 대의 절반을 보냈다. 지금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사라지고, 종종 들려오는 노래만 남았지만, 다시 없을 애정을 쏟았던 몇 년간의 하이라이트였다.


최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연말에 보았던 콘서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의 솔로 무대를 보고 마음이 동한 것이다. 덕질의 끝에는 '좋아하는 그 사람의 것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다시 말해, 긴 입덕부정기를 마치고 '덕질'의 세계로 재입문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변화로 하여금, 일상의 해상도가 한 겹 선명해졌다.


#2 ‘덕질’을 완전히 끝냈다고 말하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파헤치고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이 있다. 이것을 덕후 DNA라고 불렀고, 유전자는 여전하겠지만 적어도 그 레이더가 '사람'에게 또 꽂히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십 년, 대가 없는 애정이 만들어낸 수많은 산물이 나를 유의미한 방향으로 데려다주었으나 (예를 들어 직업의 변화), 그 무조건적인 행동을 반복할 힘이 없었다. 그만한 대상을 다시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내가 이 판을 떴다’라고 말하곤 했다.


#3 나는 ‘서사’에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잡은 책에서 답을 찾을 때가 있다. 이 책이 나를 위해 쓰인 책인가 싶을 정도로 때에 맞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듯이. 이별한 사람이 듣는 이별 노래가 모두 내 이야기 같듯이.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저마다의 서사 가운데 주파수가 통하는 '인연'이란 게 있는 것 같다고. 설령 이들은 나를 평생 모를지라도, 각양각색의 빛을 띠는 아이돌 사이에서도 유달리 반짝거리는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겐 교통사고처럼 강렬히 들어맞았다.


졸업 유예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무려 4개월에 걸친 면접 전형을 치르는 동안 <프로듀스 101 시즌2>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았다. '뉴이스트'라는 그룹의 멤버들이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다시 연습생이 되어 경연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받았다. 그들이 재도약하고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해체 소식을 듣는 날까지 타인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4 지난 연말, 누군가를 보며 오랜만에 마음이 동했다. 몇 년간 자취를 감춘 덕후 DNA를 '일'을 덕질하는데 쓰던 중이었다. (일을 덕질하는 건 도파민은 될지언정, 엔돌핀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보러간 밴드 '루시'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덜컥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마주했다.


7년 전, 관련업에 종사를 하면서 루시를 모르지 않았고, 이후에도 수록곡까지 꽤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다. - 신예찬. 밴드 루시의 바이올리니스트.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바이올린을 싫어한 연주자가 클래식 대신 밴드맨이 되어, 어머님의 바람이었던 클래식 공연장에 다시 섰다. 자유분방하게 몸을 움직이고 활을 저으며 클래식에서 터부시되었던 방식을 자신만의 연주로 보여준다. 수십 대의 바이올린을 이끄는 퍼스트 바이올린으로. 돌연변이가 개척자가 되는 서사는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서사를 아는 이라면 연주만큼 유독 그의 표정에 눈이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귀한 공연을 경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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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잘하는 것이 됐고, 도망갔던 것으로부터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잘하는 것을 연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게 조금 더 그 사람의 삶에 유용하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내 이야기였고, 어디까지가 내가 공명한 이 사람의 이야기였을까. 찌르르 주파수가 통하는 말들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한 악기를 다루기 위해 몰입한 경험은 없으나, 나는 오랫동안 내가 인정하지 않은 나의 재능이자 하고 싶지 않은 일과 싸우다, 불과 1, 2년 전에서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지난해를 되돌아보니 그런 일을 하는 내가 더 이상 싫지 않았다.


#6 그가 바이올린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 한 음 한 음을 더 정성 들여 듣게 된다. 덕질의 순간은 세상을 좀 더 귀엽고, 다채롭게 만든다. 다음날 공연까지 연달아 출석을 하며, 요동쳤던 며칠의 감정을 펼치고 접길 반복했다. 당신과 나의 서사는 이러했다며 차곡차곡 서랍에 넣어 두고 싶었다. 덕질 역시 십 대의 온도가 있고, 이십 대의 온도가 있다면, 서른이의 덕질도 그것만의 온도가 있다. 매사 뜨겁게 행동파가 되진 않아도, 온기는 여전하다.


#7 지난 덕질의 유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빌려보던 흑백의 만화책을 색칠하며 포토샵을 배웠고, 수능을 앞두고도 좋아하는 드라마의 명장면 명대사를 올리던 블로그 포스트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며 '바이럴'의 과정을 배웠다. 연차를 내면서 논문보다 정성스레 뮤직비디오 해석 스크립트를 적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영상을 만들던 사회 초년생 마케터는 몇 년 뒤 방송사 피디가 됐다. 좋아하는 마음은 나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잘 관찰하고 발견하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8

수년을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지고, 덕질의 온점을 찍은 것처럼 굴었던 몇 년이 지났다. 가슴 뛰는 무언가를 다시 발견한 요즘, 삶이 한층 풍부해졌다. 재미보다 성취에 매몰된 나에게 무조건적인 재미를 가져다주는 것은 드물다. 귀하다. 찢어지는 바이올린 소리를 견디며, 재등록을 하게 만드는 힘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 번쯤 연주하고 싶다'는 낭만이며, 매일 채울 수 있는 애정 덕분이다. 팬과 가수만이 나눌 수 있는 반짝이는 감정을 다시금 경험하고 있다. 오늘의 나를 만든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여전히 응원하는 모든 이의 안부를 물어본다. 고맙다고. 행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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