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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파리와 코펜하겐을 다녀왔어요.
7년 만에 떠난 여럽행이었고,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죠.
한국에 돌아와 짧은 브이로그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올리지 않았어요.
저는 수년 전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유튜브 계정을 운영했어요. 대학 시절 의류디자인을 전공하며, 다양한 브랜드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블로거 활동을 했거든요. 지금 릴스가 있다면 그 당시엔 블로그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인스타그램이 있었죠. #데일리룩 #ootd.
지금의 저는 내가 입은 옷, 메이크업 등 '나의 외형'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비주얼 콘텐츠보다, 나의 직업과 내가 맡은 브랜드, 프로젝트를 알리는 '서사'에 집중하고 있어요.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사회에 나온 지금도 저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입니다. 패션 인플루언서, 뷰티 크리에이터, 모델 등. 개성 가득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죠.
그런데 사실요.
'예쁜' 영상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들의 정갈한 톤앤매너와 아름다운 모습이 부러웠거든요.
'나는 브랜드 기획자라는 직업을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 거야', '내가 도달하고 싶은 사람은 나의 클라이언트이자, '일'로 연결될 사람들이야'라고 되내였잖아요. 그런데 무작위로 뜨는 영상 중에서도 제가 머무르게 되는 건 탄탄한 몸매가 드러나는 슬리브리스를 입고 브런치 식당 못지 않은 플레이팅을 차리고, 외국을 연상케 하는 집에 사는 인물, 여행의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는 인플루언서 친구들의 반짝이는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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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그걸 만드는 게 맞을까?
영상 편집을 할 줄 알고,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프레임 안에 그러한 삶을 담는 건 또 다른 일인데요. 남 눈치를 봐서 안 한다. 대세를 따라서 한다. 외부의 영향에 따른 DO or DO NOT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로 보는 질문들을 던져 보았습니다. 거의 반년을 말이죠.
첫 번째 생각 : 나의 욕망에 솔직해 보자.
사람들에게 먹히는 걸 만들어야지 → 사람들이 나에게 보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넌 일 얘기만 해야 돼. 바운더리 지켜! → 이렇게 생각하니 울적했다. 특히 내가 계속해서 미련이 남는, 욕망을 부르는 소재라면!
두 번째 생각 : 지금 그래서 재밌니?
오래 가려면 잼컨(재밌는 결과물)이어야 함 → 내가 재밌는 걸 만들어야지. 하고 싶은 거 말이야. 누군가가 시키는 것, 해야 하는 것 말고. → 그런데 반응이 안 오면 재미가 없는데? → 나에게 콘텐츠는 ‘아카이브’이자 ‘실험’이잖아.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닿고 있는지, 내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게 체감이 되어야 돼. → 처음은 재미일지라도, 반응(시청자)가 없으면 불씨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 생각 : 오래 지속하는 환경을 만드려면
재밌으면 오케이. 근데 지속하기 위해선 이러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시간, 경제력, 상황이 '유지'가 되는가. 일례로 아름다운 여행 영상은 바이럴 여부를 떠나, 만듦새를 쌓는 과정에서 많은 공이 들어간다. 그 순간을 담기 위한 행동이 실제 여행을 하는 데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말.
나의 완벽주의에 불을 지피는 존재 = 오래가지 못한다 → 호흡을 더 쪼개 보자
대안 - 내가 담고 싶은 순간을 'full'이 아닌 '필요에 의한 순간'만 남긴다.
제작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 지속성 확보
재밌을까? 사람들이 볼까? → 기획자 컨셉 최소 유지, 1차 목적 '잼컨'에 부합하면 통과!
그래서 조금은 다른 기록을 선택했어요.
내가 가서 배운 것.
내가 보고 느낀 것.
나의 ‘느낌표’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내가 보는 순간을 담아보기로요.
저는 올 상반기 두 개의 시리즈 콘텐츠에 도전할 거예요.
일 얘기도 좋고, 진정성 있는 글과 영상도 좋지만 - 진짜 내가 재밌어서 나오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선물하고, 기록하고 싶었어요.
[1] 브랜드 기획자의 시선 #00
“평가”가 아니라 “감상”
여행을 가서, 팝업을 가서, 동네 맛집을 가서도 나는 이렇게 느꼈고, 이런 점이 인상 깊었어 짧고 굵게 담아보기. 언제 어디서든 꺼내 기록할 수 있는 만능 브이로그 컨셉.
[2] 인생 잼컨 만들기 프로젝트 #prologue to 000
기획자가 나를 기획하기 위한 자아 탐방.
알록달록하게 살아보는 하루를 솔직하게 담아보기. 말 그대로 바쁘게, 혹은 콘텐츠에 의한, 콘텐츠를 위한 영상을 담는 게 아닌 "내 인생의 재미"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