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진료를 하며 생각하다
요즈음 감기 환자들을 자주 본다. 특히 어린이들은 자주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기침, 두통, 가래, 콧물 등등 다양한 증상들로 병원에 와서 약을 처방받는다. 오늘은 그동안 자주 보는 어린이가 왔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감기가 계속 생겼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한다. 그 어린이를 보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오늘도 위험한 징후들이 있는지 살피면서 바뀐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한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처방을 했고, 보통이면 나아질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잘 낫지 않아 신경이 쓰인다. 어린이가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나간다. 아이 어머니가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안녕히 계세요'라 해야지”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소아과 교과서 첫 페이지에 쓰여있는 말이다. 어린이와 어른의 신체 활동 기전은 다르다. 발달 중인 장기도 있고, 체중과 체표면적 비율 차이로 인한 차이도 있다. 어른에게는 문제없는 약이 어린이들에게는 주의하거나 금지된 약들도 많다. 의학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은 비슷한 면도, 다른 면도 있어 진료 시 꼼꼼하게 봐야 한다.
시럽약과 가루약의 용량을 맞춰 처방하며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른답게’, ‘애답게’라는 말 둘 다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에게 작은 어른이 되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발달 과정 중 어린이가 느끼는 감정과 하는 행동은 어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진료실에서 이것저것 신기해하고 만져보는 어린이들을 보면 이게 무엇인지 조금 더 설명을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병원에 오는 것도 또 다른 경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답게라는 말 또한, 어린이를 ‘애’라는 틀에 가둔다. 어린이를 마냥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이미지로 생각하거나 조건 없이 해맑아야 한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이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동 비하 표현인 ‘~린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한 바가 있다. 그러나 입문자나 초보자를 지칭하는 말로 주식을 합쳐 ‘주린이’, 헬스를 합쳐 ‘헬린이’ 등의 말이 아직도 계속 쓰인다. 재밌다고 생각하여 쓰이는 말이겠지만, 이러한 단어 속에서 어린이는 희화의 대상이 된다.
어린이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의 주체다. 각각 발달의 속도와 과정도 다르고, 성격과 취향도 다른 개별성을 갖고 있다. 2016년 한국 ‘아동권리헌장’의 첫 시작은 “모든 아동은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이다. 이 헌장에서 어린이는 보살핌을 받을 권리, 보호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존중받을 권리 등을 사회의 어른들이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어른들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있는가? 힘이 약하다고, 행동이 미숙할 때가 있다고 무시하지는 않는가? 어린이는 나이나 발달 측면에서 약자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어린이는 작은 어른 또는 ‘애’로, 어른의 틀에 끼워 맞춰지거나 어리다고 무시당하기 쉽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 알맞게 돌보고 교육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부모, 선생님, 공동체의 사람들이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고 키우듯이, 나 또한 마을 의사로서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