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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Nov 18. 2022

진료실에서_요양원 이야기

협력과 뾰족한 마음 

 올해 요양원 계약의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 요양원이 아닌 다수의 요양원을 돌면서 진료를 본다. 요양원 계약의사는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 분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약을 처방하는 역할을 한다. 한 층에 20~25명의 어르신들이 같이 지내고,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분들이 상주하며 이들의 건강을 돌본다. 

 나는 2주에 1번 방문하여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정기적으로 드시는 약을 처방한다. 특정한 문제 -숨이 찬다든지, 감기 기운이 있다든지- 가 있을 때는 상태를 보고 약 처방을 하거나 병원 이송이 필요하겠다고 말한다. 요양원 어르신들은 기저질환으로 여러 개의 약을 드시는 경우가 많다. 치매가 심해서 거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어르신들도 있고, 만나 뵈면 해맑게 맞아주시는 분들도 있다. 대부분 치매약, 수면약, 통증약을 드시고 있다. 

 

 요양원 계약의사를 시작했을 때, 어르신들의 수많은 약을 처방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 보는 약들은 처방시스템에 직접 등록을 해야 했고, 약 처방 자체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처방 내리는 것도 오래 걸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수가 정말 많이 나왔다. 잘못 나온 처방을 일일이 고쳐야 하는데, 진료 보는 사이사이에 하려니 정말 고역이었다. 약 처방 내릴 때에는, 약 이름을 쳐서 넣고 하루 투여량, 하루 투여 횟수, 투여 용법을 적어 넣어야 한다. 여기에서 투여 횟수를 잘 못 치면 약을 하루 세 번 0.3333정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용법도 이 약이 아침 약인지 점심 약인지 저녁 약인지 취침약인지 써넣는다. 그중에 하나라도 틀리면 그 데이터에 다시 들어가 약을 수정하고 처방전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나만의 문제면 상관이 없다. 요양원 간호선생님과 약국에서는 내 처방전을 끝없이 기다린다. 그쪽에서도 마음이 급하니 재촉을 하고, 나는 나대로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도 처음 처방 이후에는 반복 처방이 대부분이어서, 몇 번의 클릭이면 이전 처방 기록을 가지고 처방을 그대로 내릴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청진기를 들고 요양원에 가면 간호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신다. 가운데는 큰 거실 같은 공간이 있고 각 방에 어르신들이 있는 구조이다. 그동안 어르신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간호 선생님들에게 듣고, 진료차트에 각 어르신들의 건강 상황에 대해 적는다. 그 후 각 방을 돌며 어르신들을 살피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나를 보면 많이 반가워하신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으면 더욱 좋아하신다. 

 

 청진기가 상당히 요긴하게 쓰인다. 가래 있으신 어르신들이 많고, 가끔씩 심장음이 이상하게 들리는 경우도 있다. 폐 소리를 들어보면 실제로 기관지 쪽에 가래가 있는지, 아니면 목의 불편함을 가래로 느끼는 것인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폐 소리가 다는 아니다. 어르신들이 실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는지 등 상황, 즉 임상 소견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흔히 증상을 듣는 것보다 신체 진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둘 다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폐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게 옷 바스락거리는 소리인지 가래소리인지 헷갈릴 때도 있고, 무엇보다 소리 자체가 이 사람은 ~입니다. 라고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증상과 내가 진찰한 신체증상을 합쳐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 하신다. 나를 불러 무엇이 아프다 말하고, 내가 어떤 약을 드리겠다고 하면 참 기뻐하신다. 


 요양원 일에서 힘든 점은, 기본적으로 이게 협력 작업이라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도 질문이 들어오면 일일이 답변을 해야 하고, 자꾸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고, 요양원 자체의 시스템과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간호 선생님들의 실수로 내가 추가적인 일을 하거나 기다리게 된다면 뾰족한 마음이 올라온다. 자꾸 남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 때문에 내가 귀찮은 일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맴돈다. 

 실제로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고, 나도 실수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정도 실수는 가볍게 넘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뾰족한 마음을 갈아낸다. 이 뭉툭한 가시 같은 마음은 사실 몇 초, 몇 분 동안 콕콕 찌를 뿐, 그 후에는 다시 물렁해진다. 남을 이해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마음은 다시 넓어진다. 그래서, 그 잠깐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기도 하고, 좁게 치중된 마음을 넓히는 작업도 해본다. 내가 너무 한 생각에 꽂혀있지 않나 반성 한다. 그리고, 차차 뾰족한 마음은 둥글둥글한 마음이 된다. 요양원 일을 하면서, 이러한 것들도 자꾸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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