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하는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환자들을 본다. 동네의원에 오는 환자들은 정말 다양하며, 제각기 원하고 필요한 것이 다르다. 내가 할 일은 재빠르게 이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다. 빨리 증상에 딱딱 맞춰 약을 받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질병의 원인을 도저히 모르겠어서 좀 설명을 듣고 싶은 환자도 있고, 마음에 두었던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환자도 있다.
의사로서의 기술 중 하나는 환자가 하는 얘기에서 의학적인 부분들을 캐치해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질문을 하기도 하고, 환자의 말을 들으며 그 속에서 의미 있는 단서를 찾아내려 한다. 다만, 그것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환자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말속에서 단서 캐기만을 목표로 하게 된다. 환자는 의학적 정보들을 포함한 질문이 되고, 나는 사람을 보는 대신 그에 대한 답만 고민하게 된다. 가끔 환자의 이야기를 골라 듣고 있는 나를 보며 환자를 질문으로 보지 않는지 스스로 반성한다.
환자가 의료적 정보와는 관련 없는 자신의 얘기만을 끝없이 얘기할 때, 특히 환자가 많을 때는 속이 타기도 한다. 뒤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때는 적당히 듣고 끊기도 한다. 환자가 없으면, 가능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내가 봤던 재밌던 케이스는 한 할아버지 환자였는데, 역류성 식도염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이 되는 술담배도 안 하고, 자극적인 음식도 잘 안 드신다. 다만, 원래부터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고 하였다. 식도염이 있기 쉬운 개인적 특성과, 완벽주의로 인한 스트레스가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으로 보인다.
그 할아버지는 뒤에 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주르륵 꺼내셨다. 지금 아파트 미화원 일을 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주민들과의 관계도 좋지만 고용자 측에서 자꾸 민원이 들어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공장에서 일할 때도 꼼꼼한 성격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척척 해냈던 얘기를 들었다. 다음 환자 접수되는 소리가 띵동-! 하고 울렸다. 그 환자는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갔다.
가끔 환자들이 나와 얘기하면서 “그래도 선생님에게 이렇게라도 말하니 마음이 후련해요”라고 말한다.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마음에 쌓아놓고 있다가 나에게 말하고 나서 한 시름 덜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무언가의 치료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학은 완벽하지 않다. 질병은 하늘이 치유하는 것이며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학은 훨씬 발전하여 가끔 그 도움을 넘어설 때도 있는 듯 하지만, 의사로서 내가 보기에는 의사가 학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할 것들이 있다. 아프고 힘들 때, 나의 귀 기울임, 나의 위로, 같이 치료해 나가자는 격려가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자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지만, 환자에게는 의사가 지지대이다. 우리 의사는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이용하는 정보노동자가 아닌,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로서 계속 노력한다. 좀 더 정확하게 약처방을 할 수 있도록 약에 대한 정보를 계속 공부하기도 하고, 나의 온기를 잊지 않도록, 내가 단순히 진료하는 기계가 아닌 치료하는 사람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자꾸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