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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Mar 22. 2024

가르치는 건 왜 즐거울까?

학생에게 물어봤다. 심전도는 왜 찍을까요? 

의원에서 진료를 보다가 인턴으로 들어온 지 삼 주가 지나간다. 

인턴으로서 나의 역할은 병원에서 온갖 술기(손으로 직접 환자에게 하는 처치), 즉 동맥 채혈, 심전도 찍기, 도뇨관 삽관 등을 하는 것이다. 처음 하는 일이라 낯설었지만, 하다 보니 조금은 일이 손에 익었다. 

어느 날 병실에서 한 환자의 심전도를 찍고 있었다. 간호 실습 학생 한 명이 내 옆으로 술기를 보러 왔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는데, 환자가 나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아니, 학생이 보러 왔으면 가르쳐 줘야죠.”


정신을 퍼뜩 차리고 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선생님, 심전도는 왜 찍는 걸까요?”

“심전도로 볼 수 있는 질환은 무엇일까요?”

학생은 어떤 건 대답하고, 어떤 건 고개를 갸웃했다.

“심전도는 심장의 전기 리듬을 통해 심장이 제대로 뛰는지 보는 거예요. 즉 심장 뛰는 박자가 정상인지, 심장 근육에 손상이 가지 않았는 지를 보는 거죠.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같은 심장 질환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제가 다 말씀드리지는 못해서, 짬날 때 제가 한 질문들의 답을 찾아보세요.”

알고 보니 내가 심전도를 찍었던 환자는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유독 학생을 신경 썼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일을 할 때 실습 학생이 옆에 오면 성심껏 물어보고 알려준다. 학생도 자신의 시간을 내서 배우려고 여기 온 건데, 내가 의료기관의 한 구성원인 만큼 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르치다 보니 재미있었다. 특히 내가 물어보고 알려줄 때 학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보통 옆에서 참관할 때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듯하다. 나 또한 내가 물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한번 찾아보며 내 지식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돌아보니, 나는 가르치는 걸 참 좋아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내가 남한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기쁨과 보람이 되었다. 가르치고 가르침 받으면서 잠깐 동안 생긴 관계에 즐거워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공부의 동기가 되었다. 혼자 하면 그렇게 귀찮고 잘 안 되는 공부도 남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눈에 불을 켜고 하게 된다. 그렇게 남을 위해 하는 노력이 나를 돕는 자산이 된 경우가 많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속담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칫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함께함’, 즉 사람관계를 좋아한다. 생각하면 가르침도 관계 형성의 한 과정이다. 선생과 제자, 선배와 후배, 또는 나처럼 잠시 지식을 주고받는 그 관계 속에 앎은 한 단계 성장한다. 가르치고 배움을 통해 맺어진 서로 간의 관계가 있기에, 그 사이의 연결점인 지식도 빛이 난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가르치기를 참 좋아했나 보다. 글을 쓰니 좀 더 명확해진다.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가르침을 통해 다른 이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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