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nd now
어제도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어쩜 이렇게 변하지 않는 벼락치기의 인생인가.
얼마 전 전화로 받은 별자리 상담에서 나는 태생적으로 '염소자리'이기 때문에 약속이나 기한을 철저히 지키고, 남들에게 민폐를 절대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인내력이 모든 별자리 중 가장 강하다고 들었다. 다른 것은 맞는데 '기한을 지킨다고?'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인생이 벼락치기였는데! 그러자 본인도 염소자리이신 상담사님께서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기한을 지키시는 거 아닌가요? 정말 안 지키는 사람은 기한도 마음대로 미루거든요.'라고 말씀해주셨다. 유레카! 진정한 미루미라면 기한 따위 가볍게 미룰 것인데, 나는 '마감 기한'이 무조건 지켜야 할 정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가볍게 다룰 수가 없는 인간이다. 나는 찐 미루미라기 보다는 게으른 지키미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의 밤을 새우고 또 새고, 어제도 새고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
근래 새벽에 퇴근하고, 잠깐 잔 뒤에, 아침에 출근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1) 첫 버스는 만차다.
2) 버스에도 조조할인이 있다.
3) 새벽의 공원은 특히 노년층의 헬스'클럽'이다.
4) 새벽 3-4시를 넘으면 눈과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 온다.
5) 연이은 하품을 하며 감긴 눈으로 귀가를 했을 때 잠깐 자는 잠이 정말 꿀잠이다.
6) 사람은 생각보다 강해서 연속 철야가 가능하다. 전제 조건은 체력이다. 활자 노동자는 운동이 필수다.
7) 이 모든 것을 누구도 강제로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선택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불평할 것도 없고, 그저 감사할 일임을 깨달았다.
누구도 나에게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하지 않았고, 밤을 새워서 피드백을 몽땅 반영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선택해서 하고 있는 일인데, 쫓기는 마음이 들었었다. 누가 쫓는 것인가? 더 잘하고 싶고 완벽하게 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다.
새벽 6시쯤, 암흑의 하늘에서 천천히 포근하게 내리는 눈발을 받으며 귀가를 했다.
아침 9시쯤, 푸른 하늘 아래 학생들과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그냥 순간을 살자.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
라고 다짐했다. 천천히 떨어지는 눈발이 '소울'에서 주인공이 햇살이 비치는 나무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