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쓰기 (1)
2025년 1월-2월은 물건을 정리하고, 전셋집의 계약 관계를 정리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만나 작별 인사를 했다.
무료 나눔과 그에 가까운 급매로 당근의 온도는 급격히 올랐고, 잦은 술로 체중도 올랐다.
항상 약속 취소를 기대하는 인간이지만, 약속 장소에 가면 누구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잘 놀았고,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웠다.
2년은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작별인사는 통과의례처럼 필요한 의식이었다. 떠난다는 것이 차츰 실감 나기 시작했다.
2월 17일 저녁 동생의 차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저렴이 요금제로 한국 번호를 살려놓는 작업을 했고, 태국에서 임시로 쓸 e-sim도 작동시켰다.
한국에서 태국 학교로 붙여놓은 두 박스의 짐을 제외하고도, 무게를 살짝 초과한 이민 가방 하나, 30인치 캐리어 하나, 꽉 찬 손가방 하나와 배낭이 있었기 때문에 위탁수하물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탔다. 재외교사 카페에서도 대부분 이 방법을 추천하시기도 했기에 어쩌다 생애 첫 비즈니스를 타게 되었다.
라운지를 즐기고 싶어서 나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가족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들이 밥 먹는 것을 지켜보고, 밥을 다 먹었을 때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그동안 잘 참았던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출국 전날 이미 한바탕 함께 울었는데. 나는 좋은 날에 왜 우냐고 말하며 웃었다.
‘지금 울면 계속 울어. 안돼. 참아.’
그렇게 가족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라운지로 가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위스키 존으로 가서 하이볼을 말고 아이패드와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를 쓰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사연 있어 떠나는 사람처럼 라운지 구석에서 짐을 한가득 쌓아놓고 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내가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인 일기를 그대로 싣는다. 일기 속 일기이다.
바로 쓴 일기는 복기해서 쓰는 것과는 다른 신선함이 있다.
역시 바로바로 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3개월 묵힌 일기를 쓰는 중이다.
제목: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쓰는 일기
2025년 2월 17일, 그날이 왔다. 본격적으로 집을 정리하기 시작한 게 7일인데 15일에 모든 짐을 뺐으니 정확히 8일 동안 힘들게 정리를 했다. 미리 한다는 것이 결국 이렇게 되었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전기세, 가스비를 납부하고, 새로운 한국 유심을 장착해서 개통하고, 태국에서 쓸 e-sim을 설치했다.
어제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 공항에서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줄 서비스를 예약했다. 클룩에서 이런 것도 하는지 처음 알았다. 엄마는 딸이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했으면 하는 마음이시니 나도 편하고 어머니 마음도 편하라고 그렇게 했다. 마지막으로는 요아정을 시켜 먹었다. 나도 안 먹어 봤고 어머니도 안 드셔보셨다고 했으니, 꽤 괜찮은 피날레 음식이었다.
엄마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셨다. 유튜브로 태국 관련 영상만 보면 그러셔서 다른 채널로 돌렸다. 소리를 내시며 꺼이꺼이 우셨다. 나도 쏟아졌다. 분명 설레는 도전인데, 국내 파견 근무와는 또 다른 차원의 거리라서 그런지 엄마는 자주 우셨다.
한국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계획한 대로 현재는 방콕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아시아나 비즈니스석 라운지는 처음 와봤는데, 정말 좋다. 무엇보다 좌석도 좋고 콘센트도 많고, 술이 무제한이다. 일단은 현재 2잔의 하이볼을 살짝 말아서 마셨다. 탱커레이 진으로 한 잔, 잭다니엘 헤네시로 한 잔. 캐나다 드라이 클럽 소다(탄산수)와 레몬 슬라이스, 얼음과 함께 제조해서 먹었다.
지인들에게는 응원을 주로 받지만, 가족에게는 응원과 함께 슬픔을 받는다. 이 슬픔은 사랑이다. 모든 과정에서 물심양면 도움을 주면서도 6시간 비행거리로 떠나는 딸이 벌써 그리워지는 것이다. 나도 종종 눈물이 났다. 방콕의 땅을 딛지 않아서일 수 있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첫 발을 내딛으면 분명 설렘이 차오를 거라 믿는다. 지금도 눈물이 나는데 2월의 눈물은 오늘까지만 흘리는 걸로.
* 비행기 (아시아나) 위탁 수하물의 가로, 세로, 높이 합친 값은 158cm를 넘으면 안 된다 : 오늘은 아시아나 직원 분께서 내가 돌아오는 티켓도 없이 태국에 가게 된 다는 것을 아시고 ‘큰 짐’ 부치는 곳으로 이동시키되 초과 금액은 받지 않으셨다.
* 15일 우체국에서 선박 택배를 부치며 알게 된 사실: 5호 박스는 허리둘레 + 가장 긴 길이가 2m를 넘으면 안 된다.
비즈니스석에 탔다. 온라인 체크인을 할 때는 쳇이 추천해 준 2A, 2K석이 없어서 5C석을 예약했는데 공항에서 체크인 키오스크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보니 2A가 비어 있었다. 러키 유주! 창가이고 두 번째 줄이라서 화장실에서 적당히 멀다.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다. 20시 20분에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21시 5분에 이륙한다더니, 이제는 15분이 더 미뤄졌다. 공항 픽업 택시를 1시간 미루기를 잘했다. 방콕 시각으로 2시에는 도착하겠지. 그리고 2시간 더 무료 대기해 주는 조건이니 충분할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면 아침일 것 같다 :) 그래도 그때 들어갈 수 있으면 하루 숙박비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침내 비행기에 탑승했고 편안하게 방콕에 도착했다. 열심히 쳇을 돌려 어떤 술이 가장 비싼 술인지를 알아내서 한 잔 마시고 디저트는 맛만 봤다. 배가 부른데도 새벽에 돈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는 것은 이득이 아닌 손해였기 때문에. 영화 <바비>를 조금 보다가 잠들었다. 꿀잠을 잤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수하물을 찾았다. 비즈니스석은 수하물도 1등으로 나왔다. 카트에 100kg를 싣고 클룩 택시를 찾아 이동했다.
공항의 유리문을 열고 처음 들이킨 방콕의 바깥공기는 생각보다 후끈했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예약해 둔 벤을 타고 첫 숙소로 향했다. 방콕 첫 노래는 타케우치 마리아의 ‘Plastic love’. 태국에 일본어로 된 간판이 많고 일식집도 많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느낌상 레트로한 일본 노래가 어울리는 밤이었다. 벤에서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그리고 에어팟에서 흘러나온 plastic love는 방콕의 첫인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