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치앙마이

어쨌든 해피엔딩이니 되었다.

by 무하

2025년 7월 24일, 오늘이다. 일기를 안 쓸 수가 없는 날이다.


돈므앙 공항에서 새로 산 피지오겔 클렌징 젤을 뺏겼다. 눈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기내 수하물인데 100ml를 넘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다. 괜히 챙겼다. 수하물 조건을 매번 잊어버려서 항상 짐 싸기 직전에 검색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않았더니 이 꼴이 난 것. 뭐든 한 번 더 점검하는 습관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점검을 했음에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치앙마이 공항에서 그랩을 잡아 예약해 둔 숙소로 갔다. 기사님이 골목을 한 번 잘못 들긴 했지만 그래도 잘 찾아갔다. 숙소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아기자기했다. ‘이곳이 내가 3박을 머물 곳이구나.’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Welcome, you’re Juyoung, right? 과 같은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You booked here? Are you sure?라고 했다.


감이 좋지 않다. 설마.


설마가 맞았다. 아고다 탓인 것인지 호스트 탓인 것인지 어쨌든 결제까지 한 내 방은 없었다.

오늘은 내일부터 맞이할 손님을 위해서 청소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아고다 측에서 환불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예약하는 데 쓴 시간과 돈은?

여기까지 오는데 쓴 택시비는?

약간은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운다고 오늘 밤에 잘 곳이 구해지는 게 아니니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대기하는 곳에 앉아서 다음 숙소를 찾았다. 인터넷도 느렸다. 참을 인 세 번을 썼다.

숙소의 경치는 예뻤다. Once again hostel in Chiang Mai라는 숙소에서 나는 다시는 원스어게인 치앙마이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당장 머물 숙소를 워크인으로 구해볼까도 싶었지만 말았다. 발품을 팔다가 거절을 당하는 일까지 겪는다면 멘털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구글 맵을 열었다. 코 닿을 거리에 갈까 말까 고민했던 숙소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예약하는 사이트가 없었다. 워크인 했을 때 호스트도 없었다.


여기도 아니네.


주인 없는 숙소 데스크에 앉아서 다시 부킹닷컴, 트립닷컴을 뒤졌다(아고다는 이제 거름).

마음에 드는 숙소가 없었다. 주변 카페라도 가서 차분히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큰 길가로 나오니 머무는 기간 동안 가려고 했던 헬스장이 보였다.

‘역시 이 근처로 구해야 한다.’

게다가 헬스장 맞은편에 러닝트랙이 있는 공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는 없던 장소다.


방콕이 대도시긴 하구나.

한산하고 아담하고 고즈넉했다.

치앙마이.

우여곡절 중이지만 오길 잘했다.


근처에 문을 연 카페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이름도 기가 막히게 kanoon이었다(카눈은 콘도 계약해 준 에이전트 이름으로 내겐 은인).

너무 예쁜 장소였다. 지금은 당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 honey lemon americano를 시켰다. 꿀만 든 것 재차 확인했다. 태국은 아무 말 안 하면 설탕이 기본이니까.

가격도 75밧. 방콕이라면 140밧 정도였을 것인데!


숙소 당일 취소를 당했을 때는 내일 당장 방콕으로 돌아갈까 싶었는데 치앙마이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 일단 오늘 잘 숙소만 찾고 내일 일정과 머물 곳은 차차 정하자.‘

앉아서 검색을 시작했다. 오늘 예약 가능한 숙소는 정말 많았다.

나는 숙소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숙소보다는 카페에 머물고, 운동은 헬스장에서 한다.

조식도 필요 없다. 근처 맛집에서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할 때는 호텔에 머물지 않는다. 조용히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20대 때처럼 도미토리에 머물기는 싫었는데, 가장 평점이 높은 곳에 남은 방이 도미토리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도미토리를 가볼까?’ 평점뿐만 아니라 리뷰도 좋았다.

게다가 가격이 150.9밧이었다.카페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예약 가능한 도미토리도 줄어들고 있었다.

일단 결제 갈기자. 가보즈아.


새로 구한 숙소도 매우 가까웠다. 근데 웬걸? 아까 택시 기사님이 잘못 든 그 골목에 있는 숙소였다.

나는 오늘 이 숙소에 올 운명이었나 보다.


잘못 든 막다른 골목에 있던 그 숙소에 걸어서 다시 온 것.

진짜 원스어게인은 너였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준 직원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고 내 이름이 뭔지 한국어로 물어봤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와 빅뱅의 탑을 좋아하는 미얀마 청년이었다.

그래 이거지. 그의 안내로 방에 들어가 보았다. 10인 여성 도미토리인데 커튼이 쳐져 있는 이층 침대가 5개 있었다. 방은 시원했고, 누군가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조용했다.

마음이 놓였다.

아늑하고 조용하고 시원하다.


짐을 두고 짐으로 향했다. 나의 두 번째 치앙마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Pump Fitness는 역시 좋았다. 없는 기구 없고, 적당히 붐비지만 내가 쓸 기구는 비어 있는 인구 밀도.

워밍업, 근력, 유산소,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오니 개운했다.

여전히 깔끔하고 적당한 헬스장, 원데이 100밧에 수건은 60밧.


9시가 되지 않은 저녁, 방콕보다 기온이 낮아 선선한데 비는 오지 않는 날씨였다.

헬스장에서 나와 숙소를 지나 노스게이트 재즈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에는 험난하게 공사 중이던 창푸억 게이트가 깔끔해졌다.


다시 온 노스게이트 재즈바는 멀리서부터 서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전히 앉을자리도 없이 붐볐지만, 대신 작년에 방문했을 때와 달리 바로 옆에 기념품 샵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음악을 들으며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재즈바 16주년 티셔츠도 하나 사고 제로 콜라를 마시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라이브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오늘 하루를 이렇게 글로 써서, 두 번 사는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한다.


여차저차 오늘은 해피하게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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