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운동하라

사랑 빼고 다 한 치앙마이에서 8박 9일

by 무하

나는 입학한 중학교와 졸업한 중학교가 다르고, 입학한 고등학교와 졸업한 고등학교도 다르다. 부모님을 따라 자주 이사 했다. 서울, 경기, 부산으로 이동하며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졌다. 사교적이지도 않아서 연락을 이어온 인연도 많지 않다. 토박이의 삶을 모른다. 내 고향을 물으면 어디로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를 갖는다.


고향 故鄕 (연고 고, 시골 향)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4.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태어나서 언제까지 자란 곳이 고향일까? 내게는 애매한 정의이다. 3의 정의에 따르자면, 아직 없다.


대신, 현재 상태에 대한 만족과 아늑함을 느끼는 장소가 ‘집(home)’이라고 한다면, 집에 대해서는 답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 루틴을 지키는 일상을 살 때 집이라고 느낀다.

30대 이후 이뤄진 세 번의 연고 없는 장소로의 이동을 통해 깨달았다.


시작은 대학원 파견 근무로 인한 경기도에서 서울로의 이동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내가 선택해서 혼자 살게 된 집은 나의 작은 우주가 되었다. 그곳에서 (거의) 매일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틈새 시간에는 취미를 즐겼다. 파견 근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서울의 다른 구로 이동했고, 해외 초빙 근무로 인해 서울에서 방콕으로 이동했다. 어디에 살든 내 삶은 비슷했다. 일하고,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먹고 문화생활을 즐겼다. 매일 아늑한 내 공간이 있고, 먹고살게 해주는 일이 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보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마음의 날씨가 정해졌다.


두 번째 찾은 2025년의 치앙마이, 방학이니 편도로 비행기 표를 끊어서 갔다. 8박 9일 동안 머물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을 가거나 야외 트랙을 뛰었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발이 닿는 곳에 전시관이 있다면 전시를 꼼꼼히 보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내면을 채웠다. 태국 답게 사원이 많아 지나칠 때도 많았지만 들어가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통밀빵과 샥슈카, 닭안심과 버섯 버거 세트, 사워도우 샌드위치, 덜짜고 덜달게 부탁한 닭튀김과 돼지고기 덮밥, 카오소이와 통밀 아보카도 마늘 토스트, 통밀 애플 팬케이크 등
8박 9일 중 돌아오는 날 빼고 치앙마이에서 운동한 사람


여행에서도 내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먹고, 운동하고, 기도했다.

방콕에서 머물 집을 찾으며 잠시 머문 호스텔과 치앙마이 여행지에서 엄마와 나눈 대화 일부


무교에 가까운 불교인으로서, ‘기도’를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라 친다면 여행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로 산다. 일상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다. 매일 내가 사는 장소를 여행할 수 있다. 이 글도 집 근처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쓰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여행은 필요하다. 일상이 깨질 정도로 우울할 때가 온다면, 떠나야 한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면이 안식의 장소가 아니라 못 견디게 만드는 재앙의 장소라면, 인간은 자기 바깥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 바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p.55


우울할 때 운동화로 피신하고, 그마저도 어려울 땐 떠나야 했다. 여행지에서의 안온한 마음은 루틴을 지키는 데서 왔다. 떠나서 느낀 것은 결국 여행과 일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상 여행자의 삶이 다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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