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들고 있는 깃발이 정말 나의 것인가?

당신의 '선의'가 이용당하지 않기 위하여

by 무히바




가식의 명분, 사익의 질서


세상은 정교하게 설계된 기만으로 유지된다.


누구나 광장에서는 '정의'와 '공익'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 목소리가 잦아든 이면의 밀실에서는 사익을 위한 복잡한 연산 장치가 쉼 없이 돌아간다. 나는 이것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원초적인 '구조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Study+after+F.Bacon,+Pope+Francis,Oil+on+canvas,+72”x+58”,+2017,+4500++(1)_(.jpg Study after F. Bacon,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OIL ON CANVAS, 72" x 58"




1. 어느 부장님의 '가족'이라는 가스라이팅 : 소모되고 버려진 자의 초상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에서 헌신하다가, 어느덧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퇴직을 앞둔 한 선배를 만났다. 그는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가족이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대표의 말을 신앙처럼 믿었던 이였다.


그 믿음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는 주말을 반납하는 것을 훈장처럼 여겼고, 아이의 입학식 날에도 카메라 대신 거래처와의 숨 막히는 미팅과 영업 현장을 선택했다. 그에게 '애사심'은 삶을 지탱하는 숭고한 명분이었고, 회사의 성장은 곧 자신이 세상에 증명해야 할 유일한 정의였다.

60-14 FB RGB.jpg Francis Bacon, Seated Figure / Oil on canvas, 60 x 47 in. (152.5 x 119.5 cm)




하지만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서 그 거창한 명분은 한 장의 휴지 조각보다 가벼웠다. 그가 믿었던 '가족'이라는 단어는 경영진의 사익을 위해 직원의 생생한 시간을 끌어다 쓰기 위한 가장 값싼 연료에 불과했다.


진짜 비극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회사는 그가 일군 토양 위에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신규 입사자들을 앉혔고, 정치질에 능한 이들은 그의 헌신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며 그를 외곽으로 밀어냈다. 평생을 바친 성벽 위에서 자신이 지킨 이들에 의해 성 밖으로 떠밀려 나가는 기분, 그는 차가운 인사고과 통지서와 싸늘한 후배들의 시선을 받고서야 깨달았다.


명분은 지배자의 언어이고, 희생은 피지배자의 몫이다. 그가 흘린 눈물은 정의를 향한 것이었으나, 그 눈물이 적신 토양에서 피어난 꽃은 오직 대주주의 배당금과 정치꾼들의 승진뿐이었다.

sdadaa.JPG Francis Bacon’s 1988 piece “Second Version of Triptych 1944” is part of an exhibition on Bacon’s lat




2. 디지털 콜로세움 : 당신의 분노는 누구의 통장으로 가는가


우리는 매일 아침 스마트폰을 켜며 디지털 콜로세움에 입장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가장 분노할 만한 뉴스를 골라 눈앞에 던져준다. 우리는 정의감에 불타 댓글을 달고, 특정 진영을 옹호하며 반대편을 향해 혐오의 언어를 쏟아낸다. "이것이 세상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자. 당신이 뜨겁게 분노하는 동안, 그 플랫폼의 트래픽은 치솟고 광고 수익은 극대화된다. 당신의 고결한 분노는 데이터 조각이 되어 알고리즘의 비료가 되고, 누군가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자산이 된다. 정작 당신의 삶은 그 분노 이후에 무엇이 남았는가? 당신의 정신적 대역폭(Mental Bandwidth)은 고갈되었고, 정작 돌봐야 할 당신의 일상은 소음 속에 방치되었다.


*御為ごかし(오타메고카시)—표면적으로는 타인을 위한 듯하나, 실상은 자신을 위한 가식.


image-asset.jpeg Francis Bacon’s Study after Velázquez’s Pope Innocent X




3. 깃발을 내리고 호미를 든 사람의 승리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몇 년 전 모든 정치적 논쟁과 조직 내 파벌 싸움에서 스스로 '퇴장'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를 '사회성이 결여된 이기주의자' 혹은 '현실 도피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에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며, 가족과 함께 작은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쪽의 깃발도 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이라는 영토에서는 완벽한 왕이 되었다. 세상이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저주할 때, 그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의 주권 회복'이자, 가장 고차원적인 협상 전략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광장의 횃불은 뜨겁지만, 내 집의 모닥불은 따뜻합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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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생의 BATNA : 나라는 존재의 주권 회복


협상 전문가로서 내가 제안하는 인생의 BATNA는 명확하다. 어느 깃발도 들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의 존엄이라는 깃발만을 들어라.


이것은 얄팍한 이기주의가 아니다. 타인의 목적을 위해 나의 생동하는 감각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존엄의 선언'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정하며, 갈등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소모전의 최전선에서 누군가의 소모품이 되기엔, 당신이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너무나 찬란하다.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조금 더 철저하게 당신 자신의 행복과 성장에 집중하라. 당신이 단단한 개인이 되어 스스로 빛을 낼 때, 역설적으로 세상의 기만은 당신 앞에서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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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소모품이 아니다


부동산의 몸테크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바로 '정서적 몸테크'다. 미래의 막연한 정의를 위해 오늘의 평온을 제물로 바치지 마라. 당신은 누군가의 정치적 자산이 아니며, 이념의 숫자를 채우는 통계 자료도 아니다.


가식의 명분과 사익의 질서가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당신만의 영토를 구축하라. 이념으로 소모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고 유일하다.








세상의 소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십시오. 그들이 정의를 말할 때 당신은 당신의 실력을 키우고, 그들이 혐오를 부추길 때 당신은 당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이 기만의 시대를 우아하게 돌파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이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중력을 갖기를 응원합니다.
-무스타파

다운로드.png 오 무스타파여! 진실로 그대는 고결한 품성을 지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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