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과 재반박 + 사회비판
# 1. 인생은 원래 고통이다.
유튜브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인생은 원래 고통이다 ㅋㅋㅋ 그냥 남자는 평생 인내와 고통 속에서 살고 흙 속의 진주처럼 가끔 행복? 이란 걸 찾아서 환기시키면 됨 ㅇㅇ 어쩔 수 없음"
이 말은 쇼펜하우어로 대표되는 ‘염세주의’ 철학과 연관이 있습니다. "삶은 고통이다. 고통 없는 상태는 일시적이고 지속적인 행복은 불가능하다." 보통 남초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고, '레드필 이론'이라는 미국에서 온 극단적 현실주의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미국 심리학자인 조던피터슨의 말로도 유명합니다.
근데 철학은 염세주의 이후에도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4원소설, "세상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있다." 이걸 가져와서 진리인 것처럼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염세주의는 여러 철학 중 한가지 주장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실증주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철학에는 끝 없이 새로운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장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왜냐면 저도 20대 초반에, 몇년 전에만 해도 이런 말들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반론을 한 번 해보면서 저만의 철학을 점검해봤습니다.
# 2. 반박 입장에서의 주장
인간은 고통을 참는 존재가 아니고 고통 속에서도 왜 사는지,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을 설명하려고 하는 존재인거죠. 인생이 고통이고, 그걸 줄이는 것만이 목표라면 마약을 하거나, 감정을 차단해버리고 살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합니다. 사랑하거나, 글을 쓰거나, 가족을 지키거나.. 그래서 의미는 삶의 진통제 역할을 넘어서 삶 자체를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잠깐이다, 그러니 기대하지 마라!"
행복은 물론 오래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행복하려고 하죠. 그 잠깐이 다음 고통을 견디게 해주니까요. 행복을 쫓는 게 어리석은 게 아니라, 너무 큰 행복만 바라고 쫓는 게 위험한 거겠죠. 작은 행복, 좋은 음악, 맛있는 밥,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건강한 몸.. 이런 것 하나하나가 여러 고통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게 해줍니다.
고통을 인정하고 묵묵히 걷는다는 것, 좋습니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걷기만 하는 것과 묵묵히 걷는다는 것은 다른 겁니다. 묵묵히 걷는 사람도 마음 속엔 어떤 방향이 있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일수도, 자기 신념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죠. 그게 결국은 삶의 의미인 것이고 의미가 없이 걷는 것은 결국 무너집니다. 고통을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그 안에서도 왜 걷고 있는가? 그 의미를 계속 확인하는 건 중요합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걸 인정하면 오히려 담담해지고 덜 괴롭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왜 사는지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의미나 기쁨을 발견하려는 태도는 고통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인간다운 방식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통해 고통을 견뎌내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 3. 반박의 반박
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의미라는 것도 결국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잖아요? 결국은 시간 지나면 다 죽고 없어지는 게 인생인데 그런 의미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덜 괴로우려고 하는 핑계 아닐까요? 그래서 뭐가 바꼈나요?
의미를 찾고 고통을 줄인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굶어죽는 사람은 있고, 범죄도 있고, 가난한 사람은 꼭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냥 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것도 굉장한 오지랖일 수 있습니다. 그냥 자기 고통은 각자 버티면서 사는 거니까요.
그런 식으로 약한 사람 도와주면, 언제까지 도와줄건가요? 인생은 원래 힘든거고 남자든 여자든, 혼자 버텨야 합니다. 공동체, 사회연대, 이런 건 그냥 무능한 사람한테 주는 면죄부일 뿐입니다.
# 4. 재반박
맞습니다. 의미가 그냥 머릿속의 허상일 수 있죠. 그치만 다시 생각해봅시다. 돈은 그냥 종이에 프린트한 건데도, 사람들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돈으로서 기능을 합니다. 국경은 그냥 지도 위의 선인데도, 아무도 그 선을 넘지 못합니다. 사랑, 그것도 그냥 머릿속의 개념인데, 엄청난 의미가 부여됩니다.
인간은 보이는 것 이상을 보고 느낍니다. 그래서 머릿속의 허상이 중요할 때도 있는 거죠. 그리고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범죄는 있고, 가난한 사람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했다면, 세상이 어땠을까요?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했으면 의미있는 거 아닐까요? 조금이라도 덜 불행한 사회가 되면 좋은 거 아닐까요?
고통은 각자 감당해야하고, 남 도와주는 건 오지랖이다. 좋습니다. 고통은 혼자 버텨야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혼자 버텨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책, 핸드폰, 노트북, 인터넷 다 누군가의 도움이죠. 병원, 약 없이 혼자 버티는 사람이 있나요?
고통은 스스로 감당해야한다. 이 말은 정말 그럴듯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도울 때, 그 고통은 분명히 줄어듭니다. 이미 우리는 그 고통을 많이 줄인채로 살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면 약해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은 능력을 뺏는게 아닙니다. 게으르게 만드는 것도 아니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시간을 주는 것 뿐입니다. 그 손길 하나로 일어서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의미가 있으니까요.
# 5. 20대 초반 남성
근데 보통 이런 생각을 20대 초반 남성들이 많이 하시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아마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생각해보면 10대 내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출석 한 번 빼먹지 않고 학교를 나가고 매일매일 수행평가를 하면서 평가받고 시험기간엔 밤을 새가며 공부를 하고 운동도 미루고, 독서도 미루고, 대학만을 바라보며 살죠. 그래서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20살이 됩니다.
이 경쟁에서 성공하면 꽃길만 있을 줄 알았죠. 근데 갑자기 저성장시대라면서 너희는 부모보다 가난하답니다. 운전면허 하나만 있어도 취업했던 부모님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너희가 더 가난하답니다.
"이게 뭐지..? 이겨도 보상이 없는 레이스였다고?"
그래서 좀 냉소적이었던 거 같아요. 나 혼자 열심히 뛰어봐야 뭐하나.. 말해봤자 공감해주는 사람도 없고 찐따냐, 나약한 놈.. 거기에 정치인들은 20대 남성들은 생각이 없니.. 나약하니.. 그니까 철학적으로 염세주의가 된 게 아니고 정말 그냥 방어기제로써 냉소주의가 됐던 것 같습니다.
# 6. 경쟁사회
그럼에도 지금도 이런 경쟁사회의 피해자는 매년 사회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과 대학을 나와서는 그냥 계속 그런 틀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사회 부적응자니, 나약하니, 낙인을 찍어버리구요.
그나마 요새는 대화형 AI가 나와서 조금은 본인만의 철학을 좀 만들기에 쉬운 시대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AI 쓰는데는 또 달 2~3만원이 들죠.. 20살에는 그 돈도 정말 큰 돈이잖아요.. 참.. 그래서 정치권이나 어른들이 더 이런 사회구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들은 얘기 중에 대학을 서울대를 나와도 거기서 과를 따지고 판검사를 해도 서울법원이니 지방법원이니 따지고 정말 이 서열화와 경쟁이 너무나도 과열되고 만능처럼 되어버린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따져봤습니다.
# 7. 성과는 효율적인가?
성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는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잘될 수 있다." "그걸 없애자는 건, 실력이 있어도 올라가지 못하는 사다리를 없애는 꼴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 출발점이 같을 수가 없죠. 대학교수 부모님 사이에서 자란 아이와 알코올 중독 부모님 사이에서 자란 아이가 출발점이 같을 수 없을 듯이요. (이건 제가 다른 글에서도 많이 이야기했으니 패쓰..)
"경쟁을 해야 발전이 빠르다." 하지만 발전은 경쟁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비트코인, 위키피디아, 리눅스 그리고 논문 학계, 예술계.. 대부분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발전되죠. 경쟁은 발전보다는 '파괴'가 먼저 일어납니다. 경쟁에서 탈락한 다수는 경쟁에 기여할 수도 없죠. 그렇다고 경쟁의 승자가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경쟁보다는 지속가능한 협력적 발전이 훨씬 나은 거죠.
"경쟁이 없으면 동기부여가 안된다." 인간은 보상이 없어도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성과 중심의 동기는 내적동기를 저하시킵니다. 의미 있는 일, 자율성,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오히려 몰입할 수 있습니다. 직선제 투표를 두고 "우리 국민은 아직 직접 투표할 수준이 안된다" 라고 했던 주장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경쟁을 시켜야 잘한다"
"그럼 대안이 있는가?" 많죠. 경쟁을 적대시하고, 협력하고 함께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구글, 넷플릭스, 나라로는 북유럽, 독일 등이 있겠죠. 그러면 누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구글? 넷플릭스? 미국 기업들이 해고가 정말 쉬워, 걔네가 진짜 성과주의야."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고가 쉬울 뿐이지, 성과주의라는 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실패를 오히려 장려하죠. 그냥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서 해고가 쉬울 뿐입니다.
# 8. 우리나라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 제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노벨상도 제일 많이 받고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 제일이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제일인가요? 이런 경쟁마인드가 군사독재시절에 생겨났다는 그런 진부한 얘기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경쟁주의, 성과주의가 얼마나 유명부실한지는 다들 실감하고 계실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미적분을 배워야 했을까? 우리가 그렇게까지 영어시험 준비를 했어야 했을까? 이제는 그냥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거 같아요. 경쟁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학원에 다니기 위해 경쟁을 하고 부모님끼리 정보 경쟁을 하고..
정말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서열화시키는 마인드부터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자랐으니까, 그렇게 하면 본전은 간다는 전통과 규범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그리고 그 영향으로 우리 자식들은 또 불행한 학창시절을 반복합니다.
게다가 이미 그런 경쟁으로 빨리 앞으로 달려나가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잠시 멈추고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을 겁니다. 결국엔 경쟁이 경쟁을 낳고 이제는 목적이 없어져버린 그냥 경쟁을 위한 경쟁을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서로 먼저 달려 나가고 밀치고.. 이런 사회가 같이 뛰고 협력하는 사회로 변해나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먼저 생각이 변한 사람들은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려줘야할 거구요.. 저 개인적으로는 당장 자식을 낳으면 한국에서 키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난 아이가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나처럼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도, 천천히 바뀌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부모도 행복한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로 여러분들 생각도 부탁드리구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