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쓰는 사과문
# 1. 응원 보이콧
KBO에서 자주 보기 힘든 응원 보이콧, 기아 타이거즈 홍종표 선수가 나오는 시간인데요. 시즌 초에는 아예 조용했는데 요새는 응원단장님 민망하지 마라고 하는건지 조금씩 목소리가 들리긴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작년 9월 쯤 사생활 문제와 동시에 광주 비하, 팬 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3월에 홍종표 선수가 기사를 통해 공식 사과를 했지만 왜 팬들은 아직도 응원을 보이콧을 하고 있을까요? 홍종표 선수가 아직 용서받지 못한 이유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대신 사과문을 써봤습니다.
# 2. 논란
논란은 작년 9월, 한 커뮤니티에 익명의 폭로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습니다. 본인을 포함해 2~3명을 홍종표 선수가 동시에 만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홍종표 선수가 지역 구단을 비하하고, 연고지인 광주를 비하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광주는 노잼이다, 평생 싫어할 것, 이런 내용이었구요. 응원도 안하면서 싸인만 받으려 한다는 팬 비하 내용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트위터에서도 익명으로 폭로가 터졌습니다. ‘광주 들어오자마자 기운이 안 좋다’ ‘광주에는 OO, OOO 밖에 없다.’ 이렇게 욕설과 특정 사람들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사용됐다는 폭로였습니다.
트위터 부분에 대해서는 신빙성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광주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건 사실로 보이고, 작년, 구단도 엔트리에서 이 선수를 제외시켰습니다.
# 3. 사과
계속 잠잠하다가 올해 3월, 시범경기가 개막하는 날, 홍종표 선수와 구단주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 사과를 했습니다. 사생활은 인정하지만, 지역 비하는 부인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지냈던 곳이 수도권이라서 생활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는 했지만, 광주가 싫다는 등의 지역 비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시즌 말미였던 만큼 사과할 기회가 없었다." 라고 하며 폭로 여성에게도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심재학 단장은 구단 자체 징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벌금을 내렸고, 엔트리 제외를 시켰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비하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선수도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선수를 믿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네..
팬들은 대부분 여전히 선수를 용서하지 않고 응원 보이콧을 하고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우리 팬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너무 용서가 어렵다’는 일부 팬들과 선수와 단장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 4. 용서받지 못한 이유
일단 1번. 타이밍 문제입니다. 작년 9월에 문제가 있었고, 올해 3월에 사과했습니다. 6개월 간의 공백이 있었고 팬들 입장에서는 ‘야구 복귀하려고 이제 나와서 사과하네’ 이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 늦은 사과가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2번. 비하 발언 부인. 커뮤니티 폭로글에서 이미 광주가 재미 없고 광주가 싫다는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게 제일 아쉽습니다. 트위터 글에서의 욕설과 비하 발언은 실제 없었다고 치더라도 비슷한 내용을 해왔다는 건 사실 같거든요.
아마 선수 입장에서 인정하자니 용서받지 못할 것 같고 부인하면서 사과하자니.. 애매해서 아예 부인을 해버린 것 같긴 하지만.. 비겁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기억은 분명히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기억했다면, 그건 제 평소 언행과 태도가 부족했던 탓이고,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과를 했어야 하지 않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3번. 광주의 특성. 광주는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집단적 상처를 가진 곳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국가 폭력에 희생되면서 까지 민주주의를 지킨 곳이죠. 아직도 그 희생자들과 희생자의 가족들이 아픔을 이겨내며 지탱하고 있는 곳이 광주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베나 극우 정치인들의 지역 비하 발언을 들어야 하는 곳이 광주입니다.
그러니 홍종표 선수가 단순 지방이라 수도권과 인프라를 비교했더라도 광주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고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거죠. 다른 지역이면 좀 덜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에 대한 지역 비하는 단순한 비하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4번. 사과의 부족. 홍종표 선수의 사과에는 사과의 6요소 중 많은 요소가 빠져있습니다.
1) 사과 표현
2) 상황 설명
3) 책임 인정
4) 후회 반성
5) 추후 개선
6) 용서 요청
사과 표현만 있었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했으며, 추후 개선 방안이 없었고, 용서를 요청하지 않고 일방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그럼 홍종표 선수 회생방안으로 이런 사과문은 어떨까 한 번 써봤습니다.
# 5. 홍종표 회생방안
[대신 써본 사과문]
작년 9월 온라인을 통해 저의 과거 사적인 언행과
사생활에 대한 폭로가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해당 내용은 작년 시즌 중
개인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었고,
많은 팬분들과 광주 시민 여러분께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제 기억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기억했다면
그건 제 평소 언행과 태도가 부족했던 탓이고,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맥락이었든,
저의 말과 태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제 언행과 태도의 책임이며
선수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수많은 시민의 헌신과 아픔이 깃든 의미 있는 도시입니다.
제가 그런 도시를 향해 무지하고 무감각한 언사를 했다면,
그것은 절대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며
저의 부족한 인식과 태도의 결과였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말의 무게,
그리고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무지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1) 광주의 역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기념관에 방문해 배우겠습니다.
2) 장애인 인권단체와 광주 지역 사회에 봉사 활동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실천과 변화로
언젠가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행동과 태도로 증명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 6. 이렇게까지 해야돼?
"야구선수가 뭐 연봉 3500, 6500 받으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해?" "그냥 직장인이야, 정치인도 아니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냥 광주 지방이라 재미없고 싫다고 한거지" "20대 초반 선수야, 다들 그러지 않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라는 지역의 특성, 아픔, 그리고 지속되어온 비하발언들까지 모른 척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야구 선수는 야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야구가 본질이긴 하지만 팬들과 함께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거든요. 단순 기술자가 아니잖아요? 팬들과 감정, 기억, 추억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지역과 팬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이거즈 팬일 뿐,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저조차도 광주의 정신을 100% 알지 못하지만.. "사과했는데도 왜 용서를 안해?" "야구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지, 야구 선수니까" "이제 그만 해, 사과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있을 수 있어서, 왜 팬 입장에서 용서가 안됐는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용서를 구하면 좋을지, 왜 그렇게 용서를 구해야하는지 한 번 적어봤습니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저도 다시 한 번, 제 언행이나 속마음이 혹시나 문제가 있지 않았나 되돌아봤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실수를 어떻게 대하고 책임지느냐도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