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JEJU by UTMB 2025 20k 참가기
2023년 가을 등산화를 사러 간 매장에 걸린 광고사진에 눈을 떼지 못했다. 건강한 여성이 러닝 베스트를 입고 숲길을 뛰고 있었다. 멋있다. 등산도 달리기도 힘든데 2가지를 한 번에 하다니.
당시 런데이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였다. 과연 30분을 쉬지 않고 뛴다는 것이 나에게 가능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며칠 후 아내와 함께 아차산을 다녀왔다. 그날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 눈에 들어왔다. 트레일러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달리기를 했다. 5Km 대회도 나가고 20Km 대회도 나갔다. 20Km를 달리고 나니 트레일러닝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장수에도 다녀오고, 동두천에도 다녀왔다. 2025년 10월 18일 제주에서 열린 트랜스 제주 바이 유티엠비(Trans Jeju by UTMB) 20K를 달렸다. 나는 20K, 아내는 70K.
20K의 전체 거리는 20.8km, 고도는 508미터, 최대 허용시간(컷오프)은 4시간. 이 정도면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트레일러닝 대회에 처음 참여한다면 거리만 고민하면 안 된다. 누적고도와 최대 허용시간도 살펴야 한다. 누적고도가 높거나 최대 허용시간이 길수록 당연하게도 어려운 코스이기 때문이다. 20K 코스는 가시리마을에서 출발해 대록산(큰사슴이오름), 말목장과 숲길을 지나 따라비오름을 오른 후, 가시리마을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출발 장소인 가시리마을에 도착했다. 억새가 펼쳐졌고,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제주마를 기르는 목장이 있다고 하는데 돌담도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눈이 호강을 한다.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출발 전에 사회자가 무지개가 떳다고 법석이다.
말목장을 지난다고 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달리다 보니 말 한 마리가 함께 뛴다. 사람들이 앞을 막으면 속도를 줄이고, 앞길이 열리거나 사람들이 속도를 내면 따라서 속도를 낸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이 친구는 어디까지 가려나. 풀밭이 모두 이 친구의 집인가.
능선을 올랐다. 내려와 풀밭을 달리다 보니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따라비오름이 아련히 펼쳐진다. 꽤나 달려서 다리는 털리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을 억새가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다는 따라비오름을 오르는 호사를 누리다니.
유홍준 선생은 제주를 다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에서 강요배 화백의 입을 빌려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오름은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표정’이라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 알것만 같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와 높은 나무가 빽빽한 숲 속을 달린다. 몇년 전에 봤던 광고사진 속의 멋진 주인공이 되어 달리는 기분이다.
오름을 오르고, 풀밭과 숲길을 달린다. 달리기를 마치고 먹을 삼겹살과 소맥은 얼마나 맛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