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가을, 헬시디저트
흐드러지는 가을, 흐트러지는 마음. 헛헛한 마음엔 당이 최고지라는 당찬 마음과 달리 쿨하게 소화해내지 못하는 비련한 몸뚱이. 디저트하나 먹기 위해‘노력’말고‘노오오오력’이 필요했던가. 앞으로 닥칠 고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쿨’하게 먹었더니 몇 시간째 위장에‘쿵’하고 내려앉은 디저트 덩어리들.‘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시답잖은 문구로 위로했던 과거의 나는 안녕!‘Don't Worry, Be Happy, Be Free’를 속시원히 외치며 오랜 벗 활명수와도 안녕이다. 글루텐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한 디저트를 만났기 때문이다.
직원 추천을 받지 않고, 진열장에서 얼마 남지 않은 케이크들을 골랐다.
불티나게 팔린 메뉴들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근거로.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지만 28가지 품목 중 5가지 품목에는 로투스와 파에테 포요틴(쉽게 말해 버터향이 나는 후레이크)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량의 글루텐이 들어간다고 한다. 글루텐에 민감한 이들을 위해 네임텍에 표시를 해둔 페퍼의 따뜻한 마음은 안 비밀.
시계방향 순으로 피스타치오 체리 타르트, 바나나 파운드 케이크, 캐러멜 스콘, 로터스 캐러멜 케이크 그리고 그래놀라 요거트 볼. 참고로 케이크의 영어 이름은 필자의 느낌대로 작명해보았다.
LOVE&PEACE: 피스타치오 체리 타르트
식감과 풍미를 살린 쌀가루 파트 사브레에 진득한 피스타치오 아몬드 크림을 올려 구웠다. 그 위에 올린 피스타치오 가나슈와 향긋한 바닐라 크림은 앙증맞은 체리를 돋보이게 한다. 바삭한 식감으로 시작해서 혀끝에 전해지는 달달함이 마음에 사랑과 평화를 선사한다.
YELLOW HOLIDAY: 바나나 파운드 케이크
캘린더에 빨간색 말고 다른 색으로 휴일을 표시할 수 있다면 노란색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나. ‘상상 속에만 있던 노란색 휴일을 맛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이 맛이 아닐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게 만든 케이크다. 바나나칩과 캐러멜을 입힌 피칸을 듬뿍 올려 크림치즈 프로스팅으로 마무리했는데, 쌀가루 특유의 느릿한 식감 사이로 퍼져 나오는 귀여운 바나나 향에 휴일이 더 고파진다.
LAZY BUTTER: 캐러멜 스콘
매끈한 캐러멜 시럽 위에 반듯한 큐브 형태의 버터가 올려 있다. 녹아내리지 않는, 게으른 버터를 괴롭혀야 할 것 같다. 스콘에서 살포시 끌어내린 버터를 포크로 꾸욱 누른 뒤 스콘도 으깨어 버터를 표면에 휘감는다. ‘네가 녹아내리지 않는다면 내가 으깰 수밖에!’ 적당히 구워진 쌀 스콘에 버터와 캐러멜이 스며들며 완벽한 풍미와 촉감이 코와 혀로 느껴지는 게 포인트.
I'M SORRY, IT'S ME: 로터스 캐러멜 케이크
겹겹이 쌓인 얼 그레이 빛 크림 시트를 포크로 무너뜨리고 로터스 과자를 한입 베어 문다. 입안의 로터스 과자가 빼꼼히 인사한다. ‘안녕! 갑자기 등장해서 미안. 그래도 더 맛있잖아?’ 로터스 덕분에 로우 글루텐 케이크가 되어버린, 어쩌면 비운의 케이크. 그래도 어쩌겠어 포슬포슬한 쌀 시트지에 포도당 맛의 정점을 찍어주는 캐러멜소스&로터스 조합은 못 잃지.
PROTEIN GIFT SHOP: 그래놀라 요거트 볼
말랑말랑 탱글탱글. 탐스러운 노란 빛깔의 망고. 견과류 토핑이 섞인 그래놀라와 요거트를 한 보울에 담았다. 제철 과일로 구성되는 토핑이라니. 참으로 건강해지는 맛이다. 진정한 ‘마음 머쓸 퀸’이 되고 싶은 날 페퍼에 찾아가 단백질이 가득한 그래놀라 요거트 볼로 마음 머쓸업에 도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