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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

두갈 윌슨, 패딩턴 : 페루에 가다(2024)

by 힌무


<패딩턴:페루에 가다>를 보고 왔다.


패딩턴은 영국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브라운 가족에게 발견되면서 붙은 이름이고, 몹시 귀여운 아기 곰이다. 늘 예의 바르고 친절해지려고 애쓰지만 그만큼 사고뭉치인 곰. 상냥한 마음이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영국 신사 곰.


흔히 곰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짙은 밤색이 익숙한데 패딩턴은 옅은 오렌지 빛깔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마멀레이드(언제나 붉은 버킷햇 속에 있는 패딩턴의 애착 잼)처럼 환하고 반투명하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가진 패딩턴을 볼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선량함을 꺼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거친 질감이 상상되는 털은 또 어떤가, 패딩턴이 거절하지 않는다면 마음껏 포옹하고 보듬어주고 싶다! 그러니 패딩턴을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자가 바로 싸이코패스다…….


패딩턴 시리즈는 제작비에 비해 상당히 성공한 프랜차이즈라고 알려졌다. 특히 <패딩턴 2>의 경우 아쉬운 것 하나 없는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는 디즈니, 픽사 시리즈만큼 유명하지 않은 것 같고 나 역시 2편을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시청한 바 있다. 큰 기대 없이 재생했으나 영화가 끝난 후, 그렁그렁해진 눈으루 훗날 반드시 패딩턴 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폴 킹 감독은 동화 팝업북을 펼친 듯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뿐 아니라 유머와 감동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 애니메이션에 특히나 인색한 한국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한낱 아이들이나 보는 아동용으로, 그마저도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입으로 치부되는 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드디어 7년 만에! 공식 영국 시민 곰으로 인정받은 패딩턴이 이번에는 페루로 간다. 영국을 잠시 떠나서 패딩턴의 고향, 루시 숙모가 있는 페루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런던과 달리 페루는 정글과 야생의 공간이다. 네 발 달린 인간이라고는 브라운 가족 아니면 보석을 탐내는 도굴꾼이 전부인 이곳에서 패딩턴은 방향 감각만으로 루시 숙모를 찾아 나선다.


기대한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극장으로 향했다.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단짝과 나는 <패딩턴: 페루에 가다>를 좀 더 잘 즐기는 방법을 모색했다.



1. (준비물) 붉은 버킷햇과 마멀레이드 토스트


이번에 소니 픽쳐스에서 패딩턴 키링을 주는 콤보 이벤트를 진행했다. 내 백팩에 달고 다니는 해외 직구 패딩턴 인형이 다소 꼬질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키링을 받고 싶었다. 우리는 붉은 버킷햇을 머리에 쓴 채 영화 보는 상상을 했는데 꽤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쌍의 모자를 쿠팡에서 샀다.


단짝은 집에서 마멀레이드를 바른 토스트까지 가져왔고 모자 안에 그것을 넣어두기로 했다, 패딩턴처럼. 다만 키오스크에 우리가 찾는 콤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키링 품절 됐나요?” 물을 때는 우리 둘 다 모자를 꺼내지 않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키링은 품절되었으며 우리는 가판대의 종이곰 앞에서 인증 사진 찍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서는, 불편하여 모자를 벗었음. 하지만 인증 사진은 만족스러웠음. 마멀레이드 토스트도 맛이 좋았다.


2. (극장에서) 더빙판이 아니라 자막판


내레이션이 시작되는 순간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억양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이 순간만큼은 어딘가 이질적인……. 한국어.


아무래도 영국 곰이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것에 익숙한데 난데없이(?) 한국어가 들린 것이다. 어쩐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뒷좌석에서 “우리 뭐 보는 거야?”하고 묻는 어린이와 “패딩턴”이라고 답하는 엄마, 그리고 몇몇 가족 단위 관객들이 전부였다. 우리는 자막판이 아니라 더빙판으로 잘못 예매한 거였다. 이미 들어와 버린 이상 이대로 더빙판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앞 시리즈 모두 자막으로 본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더빙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좀처럼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다. 흑흑. 한국 성우들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난감한 기분이 들었고 결국 나와 단짝은 오프닝이 끝나자마자 극장 탈주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다시 자막판을 예매했다.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벤 위쇼의 목소리가 나오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거야.


3. (영화가 끝난 후) 지하철역 즉석 사진기


예고편에도 나오는 장면으로, 패딩턴이 혼자 여권 사진을 찍는 상황이 있다. 귓속에서 동전을 꺼내 즉석 사진기에 투입하고 우당탕탕 촬영을 하는 아기 곰. 영화를 다 본 뒤 페루 여정을 떠올리며 나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자 즉석 사진기가 보였다. 사진기 앞에서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카메라에 측면 얼굴을 들이미는 패딩턴을 따라 해 보았다.


왼쪽 뺨을 카메라에 가까이 한 채 플래시가 터졌다. 짙은 명암으로 대체 무슨 사진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방식의 기념사진은 보통 잘 찍지 않으니까 즐거웠다. 게다가 영화에 대한 기억을 더 보강해 주기도 했다. 좋은 쪽으로.



루시 숙모를 찾으려고 브라운 가족과 아마존 정글에 다녀온 패딩턴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 어떻게 보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전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2027년, 70주년을 기념하여 <패딩턴 4>가 개봉한다고 하던데 이 시리즈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우리 곁에 종종 맴돌았으면 좋겠다. 극장에서 관객들과 영국 아기 곰을 예찬하며 자연스럽게 마멀레이드 토스트를 꺼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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