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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피자_독립시대와 와이키키

<독립시대>(1994),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by 힌무


피자는 팝콘 다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먹기 좋은 음식이다. 이미 정갈하게 잘린 조각을 한 손으로 들기만 하면 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잠시 치킨 조각을 고르거나 스파게티 면을 포크로 돌리는 동안 중요한 정보가 지나가서 가끔 곤란한 적이 있었다. 피자는 포크와 젓가락 없이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먹기 편리하다. 무엇보다 피자는 여러 사람과 먹기에 적합하다.


물론 영화란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어두운 방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볼 때의 은밀한 즐거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동시간을 공유하는 극장의 기능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함께 본다는 행위 자체가 영화 관람의 유희인 만큼 피자는 다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주말에는 현(도)피 모임에서 영화 두 편을 봤다. 친구들과 현피 뜬다는 의미는 아니고 '현실도피자' 모임의 줄임말이다.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같이 영화를 보면서 피자를 먹는다. 피자를 먹으려고 현실을 도피하고 영화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려고 피자를 먹으며 현실을 도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작은 해프닝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날 우리는 햄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모였다. 햄의 집에는 오랜만에 방문하는 거였는데 이전에도 몇 번 가본 적 있었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심하게 나서 당황했다. 나는 농담으로 “너 사귀는 사람 정말 없구나”하고 놀렸다. 아무리 혼자 사는 남자라지만 햄이가 이렇게까지 둔감한 애였나? 하는 사이, 다른 친구 쪼리가 말했다. 헐, 이거 쥐 오줌 냄새야.


알고 보니 햄이는 몇 달 전부터 집 천장에 쥐가 들어서서 골치였고 급기야 쥐 배설물이 천장에 물들었던 것이다. 소중한 전셋집 천장에 배설물이라니, 햄은 충격에 휩싸였다. 또 막막하고 불안해서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본 영화 두 편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방문을 꼭 닫았다. 냄새가 나지 않는 방 안에서 안전하게 영화를 보기로 했다. 씬도우로 변경한 피자헛 페퍼로니 피자는 아직 따끈따끈했다.


이번 상영작은 순전히 직감에 의한 투표로 이뤄졌다. 아무도 영화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냥 내용도 모르면서 끌리는 영화에 투표했다. 그래서 에드워드 양의 <독립시대>와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선정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미리 내용을 찾지 않았다. 다만 <독립시대>는 막연히 무게감이 필요할 듯하여 앞에 배치를 했고 강렬한 포스터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보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좀 더 가벼울 거라 생각해 뒤에 배치를 했다.


언뜻 보기에 훨씬 감성적으로 보이는 독립시대(좌) / 왠지 그냥 웃음이 나오는 네 남자의 표정, 와이키키 브라더스(우)


그리고 우리는 이 배치가 완전히 반대였다는 것을,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독립시대>를 보고 나서 우리는 각자의 의견을 마음대로 풀어놓고 서로 주워가기를 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나서는 당혹감과 숙연함이 맴돌았다. 포스터의 악동 같은 발랄함은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명백히 포스터의 배신이었다.


(놀랍게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독립시대>의 장르는 로맨스/코미디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뮤지컬/드라마로 명시되어 있다. 뮤지컬이라니. 누가 봐도 네 명의 남자가 의기투합해서 뮤지컬 밴드를 만드는 내용일 것만 같지 않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스타일은 지금 봐도 재치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인물 간 관계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만의 역사를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어서 그것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1940년대 당시 대만의 상황. 한 나라, 두 체제에 놓인 국가라는 거시적인 개념은 극 중 인물들 갈등을 통해 미시적으로 표현된다. <독립시대>라는 제목 자체가 막연한 느낌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단어의 질감이 다르게 다가왔다. 불안감이 커지면 타인에게 기대려는 욕망도 함께 커진다.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정했을 인물들 속에서 주인공 ‘치치’는 그럼에도 소신있게 서 있는 인물을 보여준다.


초반부터 많은 인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미 그들끼리의 관계는 성립되어 있어서 관객은 서둘러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그들 관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연극 예술인의 인터뷰처럼 영화는 짧은 막으로 구성되어 빠른 호흡으로 극을 이끈다.


<독립시대>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용이나 주제 의식 측면에서도 상당히 다른 작품이지만 그 안에서 예술의 자본과 개인의 불안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란히 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독립시대>의 감각이 더 좋았는데, 생각해 보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피자 맛이 생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먼저 봤다면 조금 달랐을까? 아무래도 이미 피자를 다 먹고 빈 접시를 쌓아둔 채 봤기 때문에, 인생의 애환이라 불리는 그 쓴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 배가 불렀기 때문에, 쥐 오줌 냄새 나는 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공간보다는 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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