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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Apr 26. 2019

수첩 씨 참 꼼꼼하시네요!

연필 때문에 생긴 장점(1)

"수첩 씨, 일 꼼꼼하니 잘했는데 아쉽네."

내가 첫 직장을 그만둘 때 들었던 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들이 말하는 꼼꼼하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인 듯했다. 첫째로 까먹거나 놓치는 부분이 없다는 의미. 주로 모두들 까먹거나 생각하지 못한 걸 확인했을 때다. 둘째로 작은 표정이나 말 한마디를 해도 알아서 열 가지를 챙긴다는 것. 어떤 사항에 대해 이런저런 방향에서 생각해 보고할 때도 이런 말을 듣는다.


어쩌다 나는 꼼꼼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책가방을 아예 매지 않고 간 적이 있다. 당시 책가방과 신발주머니(실내화를 넣어 가 갈아 신어야 함), 도시락 가방 이렇게 세 가지는 꼭 가지고 가야 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가방 메는 것을 까먹은 나는 신발주머니와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갔다. 학교 교문 앞에서 친구가 "도시락 놓고 와서 다시 집 갔다 오는 거야?"라고 물어볼 때서야 가방 없이 학교를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밖에 소소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많았다. 엄마가 가져다준 적이 있긴 하지만, 자주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가 동생 연필이를 데리고 '조기 교실'이라는 데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별수 없이 나는 노력했다. 준비물을 잘 챙기고 숙제를 잊지 않으며, 학교 가기 전 현관에서 그것들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읊으며 확인했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그냥 덜렁대는 성격을 고친 정도로 끝났을 일이었다.


중요한 것을 잘 지키자.


어린 연필이는 내 교과서에 펜으로 낙서를 하거나(주로 동그라미를 회오리 치듯 그렸다) 책의 표지를 훌렁 벗기거나(표지만 훌렁 까 놓는다) 종이를 찢거나, 다른 곳에 두는 등의 행동을 종종 했다. 부모님은 연필이를 혼내셨지만 이 아이가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화 나 있는 것 같다는 걸 느끼고 눈치를 볼뿐이었다. 결국 그것을 오롯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였다. 중요한 것은 연필이가 보지 못할 곳에 잘 넣어뒀다. 서랍 같은 곳은 쉽게 열 수 있으므로 연필이가 관심 없어할 곳들-옷장 속 항상 걸려있는 코트 안주머니, 잘 안 쓰는 가방 속 지퍼 안 등이 단골 장소였다. 다행히 내가 가지고 다니는 학교 가방도 잘 열지 않아 학교에 가져갈 것은 학교 가방에 넣어두면 됐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문제가 또 생겼다. 어디에 잘 넣어뒀는지 나 자신이 자꾸 까먹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감이나 필기구 같은 것들은 못 찾아도 새로 사면 됐지만, 종이로 된 서류들은 못 찾을 경우 더 난감했다. 얇은 종잇장 하나 어디에 끼워뒀는지 찾는 것은 다른 물건보다 더 힘들기도 했다. 별 수 없지.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연필이가 말하지 못하는 걸 알아채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연필이와 이를 닦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었다. 바람이 불었나? 들어가자마자 욕실 문이 쿵 하고 닫혔는데 연필이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문이 닫히는 소리가 커서 놀랐나? 아니면 욕실에 못마땅한 것이 있어서 그러나?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을 때라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겠지. 그렇게 몇 초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욕실 문부터 열고 엄마를 불러야겠다 싶어 보니 연필이 새끼손가락이 문에 껴 있었다. 문을 여닫는 쪽이 아니라 경첩 쪽 면에 껴 있어서 생각도 못 했다. 난 왜 놀라거나 못마땅한 것부터 생각 한 거지? 연필이 몸을 살폈으면 더 빨리 알았을 텐데. 경첩 옆 틈새로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해.

나는 나만 아는 아이인데 잘할 수 있을까. 다짐을 하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복이 양말에서 삐져나와 배기진 않는지, 갈증이 나는데 물을 마시지 않고 있는지, 더운데 겉옷을 껴입고 있는지를 살폈다.


우리는 서로 서서히 적응했다. 나는 꼼꼼해졌다. 연필이는 스스로 필요한 걸 간단히 말할 수 있게 됐고, 내 물건에 점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도 조금 늘었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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