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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Apr 10. 2020

북구의 풍경을 보며 콧물을 닦다

여행과 비염


+군걱정인가 싶지만, 그럼에도... 사람마다 몸 상태가 다르고 알레르기 반응하는 물질도 다르니 제 경험은 그저 참고만 하시고 병에 대한 상담은 의사와 하십시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과거 꽤 긴 여행을 하던 어느 날, 코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코피가 많이 나진 않는데. 며칠 전 여행 중반쯤 코가 막히면서 조금 피가 났었는데. 피 딱지가 자꾸 저절로 떨어지면서 점점 커지더니 콧구멍을 거의 막다시피 하게 됐습니다. 그게 저절로 떨어지더니 휴지로 꾹 눌러야 할 만큼 코피가 납니다. 코도 여전히 막히고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청정한 북구의 눈 덮인 4월 말, 비염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보통 여행을 가면 비염이 덜했습니다. 항히스타민제와 부드러운 휴지, 코 주변이 헐면 필요할 것 같아 기내에 챙겨 타는 작은 페트로늄젤리통을 별로 사용한 적 없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몇 번의 여행에서 돌아온 뒤 성급하게 이런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그래, 비염은 스트레스가 큰 이유인가 보군. 건조한 비행기내에서도 괜찮은 걸 보면 말이야. 공기가 깨끗한 편이 아닌 곳을 가도 괜찮고.’

 

비염 때문에 고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해 전에 열흘 정도 다녀왔던 나라를 한 번 더 가게 되었기에 더 방심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무사히 즐겁게 다녀왔고, 코를 비롯해 몸 컨디션도 양호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들르지 않았던 더 북쪽의 도시 두 군데를 들르지만, 더 사람도 없고 깨끗한 자연이 나를 맞이하겠지?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이토록 깨끗한 곳에서


실제로 북극권인 그 도시는 정말 상쾌한 곳이었습니다. 미세 먼지는커녕 아주아주 신선하고 쨍한 공기가 있었습니다. 인구 밀도도 낮았고, 곳곳에 숲이 있었고, 도로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비수기여서 더더욱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 건조하지도 않았습니다. 호수가 많은 곳이었고, 눈이 아직 곳곳에 쌓여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멋진 곳에서 코 킁킁거리고 코피와 콧물을 닦다가 일정이 끝나다니. 그렇게 청정 자연의 도시와 코 막힌 작별을 하고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열차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검은 창밖의 달을 보면서도 별로 낭만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 코는 왜 막히는가? 그럼 그동안 여행에서는 왜 괜찮았던 건가?


그러다 몇 년 전 다니던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찬 공기에 코가 반응하니까 찬바람을 안 쐬게 해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여행은 따뜻한 곳으로 갔었네요.  이 한적한 도시는 제가 사는 보다 많이 추웠습니다. 한국에서 꽃이 피기 시작한 4월 하순에 비행기를 탔는데, 여긴 아직 눈이 쌓여 있었으니까요. 한국보다 이 나라의 기온이 항상 좀 더 낮지만, 그 전 해 방문 때는 봄가을 정도의 날씨일 때만 다녀서, 그리고 남쪽 도시에만 있어서 몰랐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추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앞으로의 여행은 춥지 않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좀 나중의 일이겠지요. 그 전에 모두가 무사히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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